[호랑이 이야기①] 100년 만에 호랑이 97%가 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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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호랑이가 서로 다투는 모습. 세계자연기금(WWF)

야생 호랑이가 서로 다투는 모습. 세계자연기금(WWF)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육십 간지 가운데 39번째인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입니다. 임(壬)은 흑색을, 인(寅)은 호랑이를 의미합니다.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산신령 혹은 산군자(山君子)로 신앙의 대상이었습니다. 중국의 용(龍), 인도의 코끼리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동물입니다.
실제로 호랑이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입니다. 2017년 국립생물자원관이 국민을 상대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생물’을 설문 조사한 결과, 포유류 중에서는 호랑이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습니다.

호랑이 해를 맞아 살펴보는 #백두산호랑이의 이모저모

호랑이는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최근 보호 노력 덕분에 숫자가 회복되고 있지만, 사람과 잦은 충돌이 발생합니다. 사람과 호랑이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아 보입니다.
2022년 호랑이해를 맞아 분포와 생태 등 호랑이의 이모저모를 살펴봅니다.

아시아 지역에 4000마리가량 분포

호랑이 분포지역의 변화. 노란색은 과거 분포지역, 녹색으로 표시된 곳은 현재 호랑이 분포 지역.

호랑이 분포지역의 변화. 노란색은 과거 분포지역, 녹색으로 표시된 곳은 현재 호랑이 분포 지역.

호랑이 분포

호랑이 분포

호랑이는 현재 살아있는 고양잇과(科) 동물 중에서 가장 큰 종(種)으로, 학명은 판테라 티그리스(Panthera tigris)입니다.
주황색 털에 짙은 줄무늬가 있고, 배를 비롯한 몸 안쪽은 흰색을 띱니다.
약 200만~300만 년 전에 동아시아에서 처음 출현, 아시아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전 세계 야생에는 4000마리 정도의 호랑이가 살고 있습니다.
세계자연기금(WWF)은 2016년 말 현재 전 세계 야생호랑이 숫자가 3890마리인 것으로 집계한 바 있습니다.
이 숫자는 2010년에 조사된 3200마리보다는 다소 증가한 것이지만 100여 년 전 10만 마리가 넘던 것과 비교하면 그 사이 97%가량이 줄어든 것입니다.

국가별로는 방글라데시에 106마리, 부탄 103마리, 중국 최소 7마리, 인도 2226마리, 인도네시아 371마리, 라오스 2마리, 말레이시아 250마리, 네팔 198마리, 러시아 433마리, 태국 189마리, 베트남 4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WWF는 집계했습니다.

호랑이는 분포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과거에는 호랑이가 여덟 혹은 아홉 아종(亞種, subspecies)으로, 혹은 단순히 2개 아종으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유전자 분석이 이뤄진 끝에 2018년 모두 여섯 아종이 남아있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먼저 백두산호랑이, 한국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로도 불리는 아무르호랑이(P. tigris altaica)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 등지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백두산호랑이가 실제로 사는 곳은 아무르 강 유역, 연주해와 만주, 한반도입니다. 러시아 시베리아 깊은 내륙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습니다.

아종 가운데 남중국호랑이(P. tigris amoyensis)는 동물원에만 존재하고, 최근 25년 동안 야생에서 발견되지 않은 탓에 거의 멸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벵골호랑이로도 불리는 인도호랑이(P. tigris tigris)는 주로 인도에, 인도차이나호랑이(P. tigris corbtti)는 동남아시아 미얀마에, 수마트라호랑이(P. tigris sumatrae)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만 살고 있습니다.
말레이호랑이(P. tigris jacksoni)는 2004년 인도차이나호랑이와 구분되는 아종으로 밝혀졌는데, 역시 동남아시아에만 서식하는 아종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세 아종은 20세기에 이미 멸종했습니다.
아시아 대륙의 서쪽에 살던 카스피호랑이(P. tigris virgata)는 1970년에,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발리호랑이(P. tigris balica)는 1940년에, 자바 섬의 자바호랑이(P. tigris sondaica)는 1980년대 초에 멸종했습니다.

600마리 정도 남은 백두산호랑이

백두산호랑이. 중앙포토

백두산호랑이. 중앙포토

남한에서는 이미 멸종된 백두산호랑이(아무르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는 2016년 말 현재 러시아 연해주와 하바롭스크 주, 중국 동북, 북한 등지에 440여 마리만 남아있는 것으로 WWF는 집계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밀렵을 방지하는 등 호랑이 보호 노력을 펼친 끝에 최근에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최대 서식지인 러시아 동아시아 지역 등에는 백두산호랑이가 560~580마리가 사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 사육되는 호랑이는 5000~6000마리에 이르지만, 중국 야생에 살고 있는 호랑이는 지린(吉林) 성과 헤이룽장(黑龍江) 성 등을 중심으로 50마리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백두산에는 백두산호랑이가 11~13마리 정도, 북한에도 최대 20마리 정도의 호랑이가 사는 것으로 러시아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북한 측 자료에서도 북한에는 10여 마리의 호랑이가 남아있다고 돼 있습니다.

호랑이 밀렵은 가죽과 함께 뼈 등을 약재로 사용하기 위해 이뤄진다. [세계자연기금(WWF)]

호랑이 밀렵은 가죽과 함께 뼈 등을 약재로 사용하기 위해 이뤄진다. [세계자연기금(WWF)]

북한이 유네스코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호랑이(조선범)는 양강도 삼지연군·운흥군, 함경북도 무산군·부령군, 자강도 초산군·용림군·화평군, 함경남도 부전·허천·광천 일대, 강원도 고산군·법동군·금강군 등에서 관찰됐습니다.

북한 내에서는 백두산에서 금강산까지 호랑이가 오가는 셈입니다.

1987년 12월 24일 자강도 화평군 양계리에서 조사한 호랑이(조선범)는 꼬리를 포함한 길이가 325㎝, 어깨까지 높이가 102㎝, 몸무게가 176.8㎏이었습니다.
2000년 12월 함경남도 부전군 여운리 일대에서는 눈 위에 난 호랑이 발자국이 발견됐는데, 길이는 170㎜, 너비는 140㎜였습니다. 1995년 여름 양강도 운흥군에서는 새끼 2마리를 데리고 가는 호랑이 가족이 목격되기도 했습니다.

북한 측 자료에 따르면 백두산호랑이는 양 볼에 긴 수염(126㎜ 이상)이 있고 꼬리도 긴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몸길이는 보통 150~180㎝, 꼬리 길이는 97㎝입니다.
몸무게는 142~176.5㎏이며 200㎏까지 나가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호랑이는 주로 높은 산림 속 바위굴에서 살면서 주로 밤에 활동합니다.
하룻밤에 80~90㎞를 이동할 정도로 넓은 활동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루나 산양, 사향노루, 산토끼 등을 잡아먹는데, 한번 푸짐히 먹은 다음에는 2~3일 동안, 혹은 일주일까지도 먹지 않고 휴식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백두산호랑이는 4년이 지나야 성적으로 성숙하는데, 교미는 13월부터 이듬해 3월 사이에 이뤄지고, 2~3년에 한 번씩 번식합니다. 임신 기간은 105~112일. 한배에 2~4마리의 새끼를 바위굴이나 덤불 속에 낳습니다. 젖 먹이는 기간은 45일 정도, 수명은 17년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국내 자료에서는 백두산호랑이의 몸길이는 240∼300㎝, 몸무게는 200∼300㎏이며, 수명은 야생에서 13∼15년, 사육 환경에서는 17∼20년 정도인 것으로 돼 있습니다.

호랑이 피해 많았던 조선시대

에버랜드 동물원의 백두산호랑이. 중앙포토.

에버랜드 동물원의 백두산호랑이. 중앙포토.

호랑이는 곰과 함께 단군신화에도 등장합니다. 불교가 번성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는 살생을 삼가는 분위기 때문에 인간과 호랑이가 서로 영역을 존중하며 평화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유교가 기본 이념이 된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사람과 호랑이의 충돌이 잦았습니다.
인구 증가하면서 더 많은 경작지가 필요해졌고, 사람들은 호랑이가 살던 터전을 잠식하게 됐습니다. 호랑이 사냥이 빈번해지고, 호환(虎患)도 급증했습니다.

태종 13년(1379년) 경상도 안동에서는 남편을 물고 달아나는 호랑이를 아내가 목궁(木弓)으로 때려 쫓았고, 세종 2년(1398년)에는 역시 안동에서 호랑이에게 물린 남편을 아내와 두 딸이 몽둥이를 들고 쫓아가 살려낸 기록이 있습니다.
단종 1년(1441년) 함길도에서는 신경례가 아내와 함께 읍성으로 가던 길에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신경례는 아내를 물려 하는 호랑이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인 끝에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호랑이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조선 순조 24년(1824년) 6월에 함경도 안변 관아에서 군관으로 일하는 김광재의 집에 사나운 호랑이가 들어왔습니다. 호랑이가 김광재를 물고 나가려 하자 예순이 넘은 그의 아내 조(趙)씨가 남편의 몸을 붙잡고는 놓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남편 대신 나를 물고 가라’며 스스로 호랑이 주둥이 앞에 몸을 던졌지요. 호랑이는 남편 대신 아내를 물고 가버렸습니다.
함경감사가 이 같은 사실을 조정에 알렸고, 예조에서는 조 씨를 위해 열녀문을 세웠습니다.

영조 때는 호랑이 피해가 더 심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영조 10년(1734년) 여름·가을 호랑이로 인해 14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듬해 봄에도 강원 영동지방에서 40여 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영조 28년(1752년)에는 호랑이가 서울 도성 안은 물론 경복궁 뒤뜰에까지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일성록(日省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에 따르면 조선시대 울산의 목장에는 호랑이 피해가 극심해 호랑이를 사냥하는 산행장(山行將)이 배치되고, 포수와 창군(創軍)도 있었습니다.
조정에서는 호랑이 포획을 전문으로 하는 군사조직인 착호군(捉虎軍)을 편성하는 등 체계적인 포효 정책을 펼치면서 한반도의 호랑이는 급격히 줄었습니다.

김동진의 《조선의 생태환경사》에 따르면 호랑이와 표범을 사냥하는 전문 군인인 ‘착호갑사'(捉虎甲士)’는 성종 16년(1485) 440명이나 있었습니다.
평안도에서 별도로 운영하던 착호군(捉虎軍)은 현종 15년(1674) 5000명에서 숙종 22년(1696) 1만1000명가량으로 늘었습니다.
저자는 “영조가 즉위한 1724년 호랑이 가죽과 표범 가죽을 바치게 하는 제도가 영구히 폐지됐다는 사실은 이들 동물의 개체 수가 극적으로 줄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1996년 남한 호랑이 멸종 공식 선언

전남 목포유달초등학교에 전시된 국내 유일의 한국산 호랑이 박제 표본. 연합뉴스

전남 목포유달초등학교에 전시된 국내 유일의 한국산 호랑이 박제 표본. 연합뉴스

줄어든 호랑이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것이 20세기 초 일제의 해수(害獸) 구제 정책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의 광물자원 등을 수탈하기 위해 산간오지까지 개발하려 했고, 주민을 동원해 방해되는 호랑이 등 맹수를 사냥했습니다.

조선총독부 자료에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호랑이 97마리와 표범 624마리를 포획했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통계에 빠진 것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그 두 배에 해당하는 호랑이와 표범이 잡혔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영국인이나 미국인들도 한국에서 호랑이 사냥을 벌였습니다. 미국인 의사 윌리엄 스미스가 1902, 1903년경 전남 목포 인근에서 잡은 호랑이를 모교인 하버드대에 기증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하버드대 동물학박물관에 보관돼 있습니다.
영국의 포드 바클리 일행은 1903년 전라도를 찾아 해남과 진도 일원에서 호랑이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미국인인 커밋 루스벨트 일행은 1922년 함경도에서 호랑이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는 1933∼1940년 한반도에서 모두 8마리의 호랑이가 포획된 것으로 돼 있습니다.
1940년 1마리가 포획된 이후로 공식 기록상 호랑이가 한반도에서 잡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남한 지역만 따지면 1922년(혹은 1921년 10월)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 일본인에 의해 사살된 것이 국내에서는 마지막 잡힌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일본인 미야케 순사가 몰이꾼 수백 명을 동원한 끝에 호랑이를 사살하고, 그 가죽을 일본 황족에게 헌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24년 강원도 횡성에서 호랑이가 포획된 것이 마지막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1996년 국제사회에 “남한에서 호랑이가 멸종됐다”고 공식 보고했습니다. 환경부가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국제협약(CITES)’ 사무국에 제출한 ‘호랑이 보호를 위한 국가보고서’에서 밝힌 것이죠.
환경부는 보고서에서 호랑이는 1900년 무렵 한반도 전역에 서식했으나, 남획과 서식지 파괴로 1943년 이후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 자연보호연맹(IUCN)에서는 한 생물 종이 50년 이상 관찰되지 않을 경우 이를 ‘멸종’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여전히 국내에서 호랑이가 발견됐다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지난 2001년 경북 청송지방에서 방송사 TV 카메라에 촬영된 동물이 호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환경부가 직접 조사에 나선 결과, 호랑이가 아니라 살쾡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당초 120㎝로 알려진 동물의 크기도 정밀분석 결과 90㎝ 이하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88올림픽 앞두고 백두산호랑이 도입

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2005년 한국에 기증한 백두산 호랑이 수놈 `두만`. 중앙포토

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2005년 한국에 기증한 백두산 호랑이 수놈 `두만`. 중앙포토

국내 최초 동물원인 창경원은 1909년 11월 문을 열었고,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까지 호랑이를 사육하고 있었습니다.
남아있던 호랑이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모두 살상 처분했습니다. 폭격으로 혼란한 틈에 탈출해 사람을 해칠 것을 우려한 동물원 측이 호랑이를 포함한 맹수를 모두 죽인 것입니다.

한국 전쟁 이후 재건된 창경원 동물원에는 1955년 태국에서 들여온 벵골호랑이가 전시됐습니다.
해방 직전부터 1955년까지 10년 동안 남한에는 야생에서든, 동물원에서든 호랑이가 전혀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국내에 공식적으로 백두산호랑이가 다시 들어온 것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6년입니다.
올림픽의 마스코트가 호랑이(호돌이)로 결정되면서 정작 우리 땅에는 고유종인 백두산호랑이가 없다는 게 문제가 됐습니다.

결국 미국 미네소타 주 정부 교정국 수석행정관이었던 이희관 박사와 미네소타 한인회의 노력으로 1986년 6월 미네소타 세인트폴 동물원과 미네소타 동물원으로부터 백두산호랑이 암수 한 쌍을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롯데그룹의 신격호 회장도 뉴욕 브롱크스(Bronx) 동물원 등으로부터 백두산호랑이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를 들여와 동물원에 기증했습니다. 이들 다섯 마리로부터 국내 백두산호랑이 혈통이 이어지게 됐습니다.

하지만 동물원의 호랑이들은 근친교배로 인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국·러시아 등지에서 호랑이를 들여와 유전자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계속됐습니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것이 계기가 돼 중국에서 백두산호랑이 한 쌍을 들여왔지만, 암컷이 수컷과의 관계를 거부한 탓에 후손을 얻지 못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등 남북한 교류가 확대되면서 1999년부터 2004년 사이 서울동물원과 평양 중앙동물원은 백두산호랑이를 세 차례 맞교환했습니다.

2005년 11월 중국에서 다시 백두산 호랑이 한 쌍을 들여왔지만, 암컷이 이듬해 3월 세균성 신장염으로 죽어 번식에 실패했습니다. 2011년 5월에는 다시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기증한 백두산호랑이 한 쌍을 들여왔습니다.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백두산호랑이. 전민규 기자

경북 봉화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백두산호랑이. 전민규 기자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사육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호랑이 같은 맹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가 낳은 새끼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지난 2006년 10월 광주 우치동물원에서는 어미 호랑이가 생후 40일 된 새끼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아먹었습니다. 2015년에도 부산의 더파크 동물원에서 호랑이 새끼가 태어난 지 20여 일만에 어미에게 잡혀먹히기도 했습니다.

서울동물원에서는 2013년 11월 우리를 탈출하려던 호랑이에게 사육사가 물려 14일 만에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호랑이는 2011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당시 총리가 기증한 호랑이 한 쌍 중 수컷이었습니다.

2017년에는 경북 봉화 백두대간수목원의 비교적 넓은 공간에 백두산호랑이를 사육하게 됐다. 축구장 7개에 해당하는 4.8㏊ 면적에 여섯 마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의 동물원에는 50여 마리의 백두산호랑이가 살고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 박제를 남긴다

서울대공원이 자연사한 백두산호랑이 두 마리를 박제했다. 박제된 호랑이는 각 2018년 12월, 2016년 10월 자연사한 '한울이'와 '코아'다. 연합뉴스

서울대공원이 자연사한 백두산호랑이 두 마리를 박제했다. 박제된 호랑이는 각 2018년 12월, 2016년 10월 자연사한 '한울이'와 '코아'다. 연합뉴스

1908년 전남 영광의 불갑산에서는 덫에 걸린 호랑이가 농민들의 창에 찔려 마지막 숨을 거뒀습니다.
몸길이 160㎝, 어깨까지 높이는 95㎝ 정도, 몸무게 180㎏ 정도 되는 호랑이였습니다.

이 호랑이는 경매를 통해 일본이 실업가 하라구치 쇼지로(原口庄次郞)에게 넘겨졌고, 하라구치는 박제로 만들어 이듬해 일본인 학교였던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했습니다.
이 유달초등학교에 남은 호랑이 박제는 남한 지역에서 잡힌 호랑이 박제로는 유일한 것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이 박제에서 DNA를 채취해 아무르(시베리아)호랑이와 비교한 결과, 같은 종이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남한의 호랑이가 아무르호랑이와 같은 종이라는 게 다시 한번 확인된 것입니다.

동물원에서 사육되다 죽으면 박제로 보관하는데, 국내에도 20여 점이 넘는 호랑이 박제가 있습니다.
털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는 뼈대만 남긴 골격 표본으로 보존하기도 합니다.
2005년 11월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기증한 백두산호랑이 한 쌍 가운데 하나인 '압록'이도, 서울대공원에서 살다가 자연사한 백두산호랑이도 박제가 됐습니다.

인천 국립생물자원관에는 꼬리 잘린 호랑이 박제가 있습니다. 러시아산 수컷인 이 호랑이는 지방의 어느 호텔 1층 로비에서 전시·사육되던 것입니다. 호랑이가 보이는 곳에서 맞선을 보면 결혼 성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이 호랑이는 울타리 철문에 끼는 바람에 꼬리를 잃었습니다. 그 뒤 일곱 살 되던 2006년 8월에 죽었고 박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한편, 지난 2008년에는 북한에서 잡힌 호랑이의 박제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지난 2016년에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라는 단체에서 일본에 있는 백두산호랑이 박제 표본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난 1917년 일본 기업가 야마모토 타다사부로(山本唯三郎)가 야마모토 정호군(征虎軍)을 구성,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을 벌여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두 마리는 모두 표본으로 만들어졌고, 하나는 황태자에게,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모교인 교토 도지샤(同志社) 대학에 기증했는데, 도지샤 중학교에서 그 표본이 확인된 것입니다.

사람을 공격하고, 차에 치여 죽고

중국 북동부 헤이룽장성 미산의 한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백두산호랑이의 모습. 2021년 4월 23일 촬영됐다. 중국과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호랑이는 차량을 공격하기도 했다. AFP=연합뉴스

중국 북동부 헤이룽장성 미산의 한 마을을 향해 걸어가는 백두산호랑이의 모습. 2021년 4월 23일 촬영됐다. 중국과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호랑이는 차량을 공격하기도 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18년 11월 인도 서부 마하슈트라주(州)에서는 대대적인 포획 작전 끝에 6살짜리 암컷 호랑이(공식명 'T-1')가 사살됐습니다.
호랑이는 죽기에 앞서 2년 동안 야마트말 지역의 랄레가온 숲 인근 마을 주민 13명의 사람을 물어 죽여 ‘식인 호랑이’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 호랑이를 잡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이 나섰고, 원격조종 카메라 수백 대, 열 감지 드론과 행글라이더까지 동원됐습니다.
포획팀은 호랑이를 유인하기 위해 사향고양이의 페로몬을 함유한 캘빈 클라인 향수 '옵세션'을 사용했습니다.
모습을 드러낸 T-1은 마취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고, 사람에게 달려드는 바람에 결국 총에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인도에는 과거 1947년 독립 당시 4만 마리의 호랑이가 있었지만, 2006년에는 1411마리로 줄었습니다.
보호 노력 덕분에 2018년 2967마리로 늘어났지만, 사람과의 충돌이 잦아졌습니다.
2014~2019년 225명의 사람이 호랑이의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물론 사람들도 반격합니다. 2021년 한 해 인도에서는 호랑이 126마리가 희생됐습니다. 지난 2016년에도 121마리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백두산호랑이도 러시아 민가 인근에 출몰해 가축을 습격하는 일이 잦습니다.
2020년 12월 연해주 북부 달레네친스크 지역의 마을 민가에서 호랑이가 개 한 마리를 습격해 죽였습니다.
2020년 여름 연해주 북부에 있는 포자르스키 지역 목초지에 호랑이가 나타나 암소 2마리를 습격했고, 하바롭스크 주 아뉴이스키 국립공원 인근 지역에서는 망아지 1마리를 물어 죽였습니다.
2019년 9월에는 하바롭스크 주 서부 베르크네부레인스크 마을 외곽에서 개 3마리를 물어 죽이기도 했습니다.

자동차에 희생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2021년 1월 저녁 러시아 하바롭스크 주 나나이스키 지역의 한 도로에서 4~5년 된 호랑이 수컷이 도로를 가로지르다 승용차와 충돌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2020년 8월에도 나나이스키 지역 도로에서는 암컷 호랑이 한 마리가 운행 중이던 승용차와 충돌, 머리를 심하게 다쳐 사고 현장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2020년 2월에는 연해주 크라스노아르메이스키 지역 도로에서도 생후 4∼5개월 된 호랑이 한 마리가 운행 중이던 버스와 충돌, 현장에서 그대로 숨졌습니다.

중국에서는 호랑이 숫자가 늘어나면서 마을에 야생 호랑이가 나타나 주민과 차량을 공격하기도 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2021년 4월 중국 동북부 헤이룽장 성 미산(密山)의 한 시골 마을에서는 길이 2m 정도 되는 호랑이 한 마리가 들판에서 주민을 향해 달려들었고, 주민이 호랑이에 물려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호랑이를 추적하던 차량은 호랑이의 공격을 받아 유리창이 파손되기도 했습니다.
2021년 12월 20일에는 지린 성 훈춘(琿春)의 한 산길에서 대낮에 출현한 백두산 호랑이의 선명한 모습이 휴대폰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호랑이 보호 노력은 이어져야

2021년 6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백두산호랑이 오둥이. 생후 100일 무렵인 9월 30일 공개됐다. 오둥이의 이름은 '아름'·'다운'·'우리'·'나라'·'강산'이다. 연합뉴스

2021년 6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백두산호랑이 오둥이. 생후 100일 무렵인 9월 30일 공개됐다. 오둥이의 이름은 '아름'·'다운'·'우리'·'나라'·'강산'이다. 연합뉴스

생태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호랑이. 다양한 생물 종이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생태계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12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러시아·중국 등 13개 국가 대표단이 참가한 가운데 ‘호랑이 정상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를 계기로 각국은 글로벌 호랑이 보호 캠페인 'TX2'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10년부터 2022년 사이에 전 세계 야생 호랑이 개체 수를 두 배로 늘리자는 캠페인입니다.

러시아는 2012년 연해주 29만6000㎢ 땅에 아무르 호랑이와 아무르 표범을 보호하기 위한 '표범의 땅' 국립공원이 조성했고, 2013년에는 보호 전문기관인 아무르 호랑이 센터도 설치했습니다.
덕분에 아무르 호랑이는 600마리까지 늘어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2021년 10월 유엔 생물다양성협약(UNCBD) 제15차 당사국총회를 윈난(雲南) 성 쿤밍(昆明)에서 개최한 것을 계기로 지린·헤이룽장의 1만4100㎢(서울 면적 605.21㎢의 약 23배)를 백두산호랑이 및 표범 국가공원으로 지정했습니다.
중국 당국은 2017년 이후 4년간 동안 서식지 보호조치를 실시한 결과, 백두산호랑이 숫자가 27마리에서 50마리로, 백두산 표범은 42마리에서 60마리로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중국 정부는 2050년까지 중국 야생 호랑이 개체 수를 100마리로 늘리기로 하고, 인공번식 호랑이를 훈련해 야생에 돌려보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2019년 11월 러시아 연해주의 '표범의 땅' 국립공원과 중국의 '동북 호랑이·표범' 국립공원은 백두산호랑이와 동아시아 표범의 보호를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양 국립공원은 2021년까지 3년간 국경을 넘나드는 호랑이·표범에 대한 특별조사, 자료공유, 자연보호 체험 교류 등 14개 분야에서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한편, 국내에서는 지난 2004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한국 범 보전기금’(대표 서울대 이항 교수)이 러시아·중국 등과 교류, 협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두만강 접경지역 호랑이 보전 캠페인, 중국 대학과 공동연구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서울대 황우석 교수가 호랑이를 복제해 숫자를 늘리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가 살아갈 서식지는 확보하지 않고,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호랑이 숫자만 늘려서는 '살아있는 화석'에 불과할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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