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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흑호'는 근친교배종?...호랑이, 어디까지 알고있니[호랑이 이야기②]

중앙일보

입력

검은 호랑이. [인도 오디샤TV]

검은 호랑이. [인도 오디샤TV]

호랑이 이야기 ①

2022년 임인년(壬寅年)은 ‘검은 호랑이의 해’라고 합니다. 육십 간지에서 임(壬)은 흑색을, 인(寅)은 호랑이를 의미한다는 거죠.
호랑이는 보통 주황색 털에 짙은 줄무늬를 갖고 있지만, 검은 호랑이, 흰 호랑이도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인도 오리사 주(州) 동부에서는 검은 호랑이가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새와 원숭이를 관찰하던 아마추어 사진작가 수멘 바지파에가 검은 호랑이를 발견하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입니다.
검은 호랑이는 벵골호랑이의 일종입니다. 유전적 변이로 인해 검은 색소가 특히 많아 줄무늬가 더 촘촘하고 넓어 주황색 털이 잘 보이지 않아 검게 보이는 것입니다.

검은 호랑이는 포획돼 사육 중인 것도 5~6마리 있지만, 야생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인도의 정글에만, 그것도 7~8마리 정도만 사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리사 지역에서는 1990년과 2007년에도 검은 호랑이가 목격됐습니다.

검은 호랑이, 고립된 작은 무리에서 명맥 유지

일반 벵골호랑이와 검은 호랑이(아래). [PNAS, 2021]

일반 벵골호랑이와 검은 호랑이(아래). [PNAS, 2021]

인도 타타 기초연구소 국립생물과학센터와 미국 스탠퍼드 대학 등의 연구팀은 지난 9월 국제 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인도 동부의 시밀리팔 호랑이 보호구역에 사는 호랑이의 3분의 1이 '유사 흑색(pseudo-melanistic)' 상태를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유사 흑색 상태라는 건 몸 전체가 검은 것은 아니고 줄무늬가 넓고 겹치는 바람에 검게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연구팀은 사육 중인 유사 흑색 호랑이의 유전자를 조사했습니다.
점이나 줄, 얼룩 같은 무늬의 패턴을 결정하는 타크펩(Taqpep)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했고, 여기서 생산되는 효소 단백질의 아미노산 하나가 히스티딘에서 타이로신으로 바뀐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유사 흑색 형질은 열성이어서 호랑이가 되려면 부모 양쪽 모두로부터 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아야 합니다.

연구팀은 보호지역에서 호랑이 대변 등의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했습니다.
시료를 통해 12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4마리는 돌연변이 열성 형질만 갖고 있어 검은 호랑이일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다른 6마리는 우성인 일반 형질과 열성 형질 두 가지 유전자를 함께, 두 마리는 일반 형질 유전자만 갖고 있어 겉으로는 보통 호랑이처럼 보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에 따라 이 지역 호랑이가 이 유전자를 가진 확률은 58.3%로 계산됐습니다.

반면 시밀리팔 보호지역 밖의 호랑이 395마리에서는 이 돌연변이 유전자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다른 무리와 떨어진 작고 고립된 시밀리팔의 호랑이 개체군에서 돌연변이가 우연히 발생했고, 이 돌연변이가 근친 교배를 통해 유지됐다”고 해석했습니다.
연구팀은 “검은 호랑이의 어두운 색상은 울창한 숲에서 사냥하는 데 유리한 점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의 작고 고립된 개체군 내에서 일어난 비정상적인 진화 궤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근친교배 통해 만들어지는 흰 호랑이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 있는 백호 한 쌍이 추위를 견디고 있다. 김경빈 기자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 있는 백호 한 쌍이 추위를 견디고 있다. 김경빈 기자

동물원에서는 ‘백호’라고 불리는 흰 호랑이도 볼 수 있습니다. 백호는 별도의 아종(亞種, subspecies)이 아닌 단순히 흰색 털을 가진 벵골호랑이입니다.

흰 참새나 흰 고라니, 흰 사슴처럼 검은색을 만드는 멜라닌 색소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백색증(albinism)과는 달리 백호는 검은 줄무늬, 검은 눈동자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루시즘(leucism)이란 현상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루시즘은 척추동물의 발달 과정에서 신경릉(神經陵, neural crest)으로부터 색소 세포가 피부·모발·깃털 등으로 이동하거나 분화할 때 문제가 생긴 경우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곳에 색소 세포가 없는 경우, 즉 몸 표면의 전체 혹은 일부에 색소 세포가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루시즘의 경우 눈동자 색깔은 대부분 정상입니다. 눈동자 색소와 피부 색소는 발달 경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백호에서는 색소 유전자가 아니라 만들어진 색소가 모피에서 발현되는 것을 막는 수송 단백질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입니다.
야생에서는 이런 돌연변이가 1만 마리 중 한 마리 정도의 확률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이 돌연변이는 열성 유전자이기 때문에 야생에서는 백호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2019년 4월 멕시코 몬테레이에 위치한 ‘라 파스토라’(La Pastora) 동물원에서 3주 전 태어난 새끼 호랑이가 어미와 함께 우리 밖을 바라보고 있다. 사냥에 불리하고 유전병에도 약한 열성 인자를 지닌 ‘백호(白虎)’가 야생에서 태어날 확률은 벵골호랑이의 경우 1만분의 1, 시베리아호랑이는 10만분의 1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9년 4월 멕시코 몬테레이에 위치한 ‘라 파스토라’(La Pastora) 동물원에서 3주 전 태어난 새끼 호랑이가 어미와 함께 우리 밖을 바라보고 있다. 사냥에 불리하고 유전병에도 약한 열성 인자를 지닌 ‘백호(白虎)’가 야생에서 태어날 확률은 벵골호랑이의 경우 1만분의 1, 시베리아호랑이는 10만분의 1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동물원에서는 흰 털 색깔을 가진 호랑이 두 마리를 교배시켜 백호를 얻습니다. 열성 유전자에 의해 나타나는 흰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물원에서는 근친 교배를 계속합니다.

문제는 이런 근친 교배를 계속할 경우 기형이나 유전병이 자주 발생합니다. 시력이 떨어지거나 사시(斜視)를 가진 경우도 있고, 신장(腎臟)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물원에서는 태어난 새끼 백호 가운데 기형이 있는 개체는 키우지 않고 대부분 ‘처분’합니다. 기형이 아닌 백호 뒤에는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가 처분되는 나머지 새끼들의 희생이 있습니다.

호랑이와 사자를 교배시키면

에버랜드 수사자와 암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거. 중앙포토

에버랜드 수사자와 암호랑이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거. 중앙포토

동물원에서는 호랑이와 사자를 교배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라이거(Liger)는 수컷 사자와 암컷 호랑이)의 교배종입니다. 라이거는 암사자처럼 황갈색 바탕에 호랑이 같은 희미한 줄무늬를 갖고 있습니다.
라이거는 호랑이처럼 수영을 즐기고,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사자처럼 사교성이 있습니다. 라이거의 수컷은 몸길이가 300~360㎝ 정도로 큰 수컷 사자나 호랑이와 맞먹습니다.
수컷 라이거는 불임이지만, 암컷 라이거는 수컷 사자와 교배를 통해 라이리거(liliger)라고 하는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수컷 호랑이와 암컷 사자 사이에 태어난 잡종 자손은 타이곤(tigon) 혹은 타이글론(tiglon)이라고 합니다. 어미 사자의 반점과 수컷 호랑이의 줄무늬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수컷 호랑이와 암컷 타이곤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난 것으로 보고됐는데, 이 경우는 타이타이곤(titigon)이라고 합니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운다면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9월 5일 "평양 중앙동물원에서 올해도 많은 동물들이 새끼를 쳐 식구들이 늘어났다"며 "그 중엔 조선범도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 3월 두 마리의 새끼 범이 늘어난 데 이어 4월에 세 마리의 새끼 범이 더 늘어난 것은 중앙동물원의 일꾼들과 종업원들에게 있어 경사가 아닐 수 없다"고 전했다. 뉴스1

북한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9월 5일 "평양 중앙동물원에서 올해도 많은 동물들이 새끼를 쳐 식구들이 늘어났다"며 "그 중엔 조선범도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 3월 두 마리의 새끼 범이 늘어난 데 이어 4월에 세 마리의 새끼 범이 더 늘어난 것은 중앙동물원의 일꾼들과 종업원들에게 있어 경사가 아닐 수 없다"고 전했다. 뉴스1

2011년 5월 미국의 환경 뉴스 사이트인 ‘마더 네이처 네트워크(MNN)’는 북한 평양 교외에 있는 중앙동물원을 세계에서 ‘가장 슬픈 동물원’ 6곳 중 하나로 뽑았습니다. 평양 중앙동물원이 선정된 것은 동물을 학대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중앙동물원에서는 호랑이·사자·곰 같은 멸종위기종을 몇 시간씩 서로 거의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하고 누가 이기는지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는데, 2006년 ‘아시아 타임스’는 평양 중앙동물원의 '야수 대결' 다큐멘터리 제작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북한의 맹수 싸움 동영상에서는 동물원 직원들이 의도적으로 싸움을 붙인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호랑이와 사자가 싸울 경우 누가 이길까요? 사실 인도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야생에서 호랑이와 사자가 만날 기회는 없습니다. 호랑이와 사자의 충돌은 대부분 포획된 상태에서 발생했습니다.

2010년 터키 앙카라 동물원에서는 호랑이가 사자 우리에 들어갔고, 호랑이가 한 번의 강타로 사자의 경정맥이 절단하면서 싸움은 금방 끝이 났습니다. 1914년 미국 뉴욕의 브롱크스 동물원에서는 호랑이가 사자의 등을 부러뜨리면서 싸움이 끝났습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8년 12월 전주동물원에서 암컷 호랑이가 수컷 사자에게 목을 물려 숨지기도 했습니다.
방사장과 관람객 사이에 파 놓은 함정에 사자가 빠졌고, 이에 호랑이가 함정에 뛰어들었는데 오히려 호랑이가 사자에게 급소를 먼저 제압당했습니다.

야생에서는 보통 호랑이는 단독으로 행동하고, 사자는 무리를 지어 행동하기 때문에 결과가 크게 다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호랑이로 불렸지만 호랑이가 아니다 

태즈메이니아호랑이

태즈메이니아호랑이

한때 호주에는 태즈메이니아호랑이(Tasmanian Tiger)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에 '호랑이'라는 단어가 붙었지만 태즈메이니아호랑이의 학명은 'Thylacinus cynocephalus'로 호랑이의 학명 'Panthera tigris'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줄무늬 때문에 호랑이라고 불렸지만, 실은 육아 주머니를 가진 육식동물이고, 크기도 코요테만 한 정도였습니다.

호주 본섬의 태즈메이니아 호랑이는 3000년 전에 가뭄을 겪으면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전적 다양성이 낮은 상태에서 기후변화를 겪으면서 살아남지 못한 것입니다.

반면 태즈메이니아 섬에서는 20세기까지 살아남았지만, 양과 가축을 해친다는 오해를 받았고, 사람들이 지속해서 사냥하는 바람에 숫자가 계속 줄었습니다.
태즈메이니아 섬의 야생에서는 1900년대 초에 사라졌고, 동물원에 잡혀있던 것도 1936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면서 완전히 멸종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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