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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 코앞까지 왔다…선거 앞둔 한·미 허점 파고드는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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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며 대선을 앞둔 한국과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북한이 2017년 5월 지대지 중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시험발사 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2017년 5월 지대지 중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시험발사 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30일 오전 IRBM급 미사일 1발을 동해상으로 쐈다. 군 당국은 북한의 이날 미사일이 2000㎞ 고도로 약 800㎞ 날아간 것으로 파악했다. 합동참모본부는 한·미 군 당국의 탐지자료를 바탕으로 북한이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IRBM을 고각으로 발사한 것으로 판단하고, 세부 제원을 분석 중이다.

북한의 이날 미사일 발사는 올해 들어 일곱 번째로, 총 11발이다.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섞어 쏘던 북한이 이번엔 미군의 인도ㆍ태평양 전력의 핵심인 괌을 타격할 수 있는 IRBM급 미사일 카드를 꺼내며 도발 수위를 높인 것이다.

북한이 올들어 발사한 미사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북한이 올들어 발사한 미사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미 국내정치 일정 노리는 北

북한이 새해 들어 거침없이 미사일 도발을 이어가는 건 한국과 한반도 핵심 주변국들의 굵직한 국내 정치 일정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 3월 9일 대선을 앞두고 있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올 가을 중간선거를 치르게 된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바이든 행정부의 중반을 평가하는 것은 물론 2024년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도 베이징 겨울 올림픽 개최 후 3월에 양회(전국인민대표회의·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개막한다. 중국은 이번 양회를 거쳐 10월 열릴 20차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당 총서기 3연임 결정을 앞두고 내부 단속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이 국내정치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올해가 북한에는 도발을 통해 긴장을 조성하고 국방력 강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공간'이 된 셈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중국은 지난 5일 첫 발사 때부터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미국도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면서도 유엔 안보리에 북한 미사일 문제를 가져가고 있다"며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로 북한의 핵 완성을 방치한 것과 유사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명분 찾기? 기싸움? 美 겨냥 노림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9일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회의를 열어 미국을 향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움) 조치를 철회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바이든 행정부 들어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방이나 위협을 삼갔던 북한이 대놓고 미국을 겨냥해 보다 과감하게 양보하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19일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스1

지난 19일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뉴스1

특히 괌 타격이 가능한 IRBM 발사까지 감행한 것은 '실제 모라토리움 파기까지 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멈출 명분을 내놓으라'는 신호일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했을 때도 별다른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가기 직전 단계들을 지속적으로 현실화하며 모라토리움 파기가 엄포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직접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고도화는 지속된 발사에도 미국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데 대한 관심끌기 및 기싸움의 성격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모라토리엄 파기 전 '간 보기' 성격도

이번 IRBM급 미사일 시험발사가 핵실험·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움 폐기를 앞두고 국제사회의 대응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간 보기' 성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무진 교수는 "북한이 IRBM 발사를 통해 모라토리움 파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을 테스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을 보면서 향후 ICBM 공개 및 모라토리움 폐기 여부를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일각에선 '핵무력 완성'을 목표로 무차별 핵·미사일 도발을 이어갔던 2017년의 데자뷰같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은 2017년에 24차례의 미사일 도발과 함께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제는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해 역내 핵타격 능력 확보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 의도는 명확하다"며 "북한은 전술핵 완성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부는 이날 북한의 IRBM 발사와 관련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안정을 위한 우리와 국제사회의 노력을 훼손하고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것에 대해 규탄한다"며 "북한이 이러한 행동을 즉각 중단하고 스스로 국제사회와 약속한 모라토리움을 유지하며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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