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무 자르며 ‘닥공’ 새싹 보며 ‘식멍’…코로나 블루 잊은 사람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73호 02면

팬데믹 우울감 막는 실내 ‘~ing’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올리브나무사이로' 목공방의 남경희 공방장이 목재를 자르기 전 전동톱의 높이를 가늠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올리브나무사이로' 목공방의 남경희 공방장이 목재를 자르기 전 전동톱의 높이를 가늠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자르고 켠다. 심고 기른다. 그리고 칠한다. 이렇게 계속 무엇인가를 한다. “옆에 폭탄이 떨어져도 모른다”는 삼매경 초집중 상태가 되고 “건강한 새싹을 보니 나도 튼튼해졌다”는 물아일체, “계속 그리다 보니 마음이 비워지더라”는 무념무상 득도의 경지까지 말한다. 이 사람들, 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부른 나락. 검푸른 마음의 멍. 일명 ‘코로나 블루’다. 오미크론 변이까지 걷잡을 수 없는 지금, 중앙SUNDAY는 마음을 다독이면서도 코로나와, 누군가와 공존을 위한 방법으로 ‘~ing’를 제안한다. 무엇이든지 하자는 의미다. ‘야외 ing’(2021년 12월 18일자 10면)에 이은 ‘실내 ing’다.

관련기사

자르고 켠다, 목공예(carpentering)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가디언하우스 작은목공방’에서 목심(나무못)을 만드는 장면. 김홍준 기자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가디언하우스 작은목공방’에서 목심(나무못)을 만드는 장면. 김홍준 기자

“회원 아내 분께서 먹을 걸 들고 찾아왔더라고요. 남편 우울증 고쳐 줘서 감사하다고요.”

지난 18일 인천대 평생교육원 창업보육센터. 박승훈(51) (주)목인 대표는 의자를 사포로 문대고 있었다. 목공 18년차인 그는 이곳에서 목공예를 가르친다. “수강생이 코로나 초기에는 잠깐 떨어지더니,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출강하는 다른 목공학교에서는 16명 정원에 120~130명이 몰려 면접을 봐야할 정도”라고 밝혔다.

왜 그럴까. 박 대표는 “목공예는 자기 손으로 세상 유일의 작품을 만든다는 성취감, 옆에 폭탄이 떨어져도 모를 집중력이 엄청나다”며 “코로나로 인한 산업, 특히 자영업의 재편을 염두에 둔 창업 준비도 있고, 무엇보다 코로나 피로감을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목공방 체인점을 운영하는 (주)목인 박승훈 대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공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박 대표는 아이들이 반제품 키트를 조립(사진)하면 평생의 장난감으로 쓴다고 밝혔다. 반제품 키트를 비롯한 교육 콘텐트와 교육 시스템은 (주)목인에서 개발한다. 김홍준 기자

목공방 체인점을 운영하는 (주)목인 박승훈 대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목공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박 대표는 아이들이 반제품 키트를 조립(사진)하면 평생의 장난감으로 쓴다고 밝혔다. 반제품 키트를 비롯한 교육 콘텐트와 교육 시스템은 (주)목인에서 개발한다. 김홍준 기자

그의 수강생 중 한 명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순결과 엇결을 가늠하고, 자르고, 켜고, 맞추다 보니 어느 틈에 그는 우울증을 잊어버렸단다. 또 다른 한 명은 코로나 초기 직격탄을 맞은 뷔페 체인점에서 일하다가 정리해고됐다. 목공을 제2의 인생으로 삼았다. 지금은 실직 전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목공 강의를 받는 초·중·고 학생들은 동영상 촬영을 하면서 코로나 이전보다 열성이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목공방은 소통과 연대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목공방 '올리브나무사이로'의 남경희 대표가 목재 절단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장갑에 쓰인 '천하무적 올리브' 중 '천하무적'은 남 대표가 목공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쓴 장갑의 브랜드이고 '올리브'는 자신의 별명이다. 공방 이름 '올리브나무사이로'도 자신의 별명과 공방의 핵심인 나무를 조합한 것이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목공방 '올리브나무사이로'의 남경희 대표가 목재 절단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장갑에 쓰인 '천하무적 올리브' 중 '천하무적'은 남 대표가 목공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쓴 장갑의 브랜드이고 '올리브'는 자신의 별명이다. 공방 이름 '올리브나무사이로'도 자신의 별명과 공방의 핵심인 나무를 조합한 것이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자리잡고 있는 목공방 '올리브나무사이로' 내부.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자리잡고 있는 목공방 '올리브나무사이로' 내부.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목공방 '올리브나무사이로'의 남경희 공방장의 도안 스케치북. 건축가 출신인 남 공방장은 "공간 감각이 좋으면 목공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있는 목공방 '올리브나무사이로'의 남경희 공방장의 도안 스케치북. 건축가 출신인 남 공방장은 "공간 감각이 좋으면 목공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김홍준 기자

그래서일까.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의 ‘올리브나무사이로’ 목공방에는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이곳의 남경희(49) 공방장은 “갈고, 치고, 때리는 작업이 많다 보니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린다”며 “공방마다 특성이 있는데, 우리처럼 알콩달콩 가르치고 배우는 ‘동아리형’이 있는가하면 철두철미한 ‘직업형’도 있다”고 말했다.

남 공방장은 건축가였다. 육아휴직 중 목공을 배우면서 성취감과 몰입도에 그만 빠져버렸단다. 나무의 ‘결’이 자신의 결과 맞다고 생각하니, 11년째 ‘닥공(닥치고 목공)’ 중이다. 이 목공방 회원인 한은진(52)씨는 “코로나가 날 괴롭힐 틈이 없을 것 같다. 뭘 어떻게 만들까, 그 생각만으로 머리가 가득 차니까”라며 웃었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가디언하우스 작은목공방’ 내의 각종 도구. 김홍준 기자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가디언하우스 작은목공방’ 내의 각종 도구. 김홍준 기자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가디언하우스 작은목공방'의 임동균 공방장(왼쪽)과 이윤서씨가 목재를 자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의 '가디언하우스 작은목공방'의 임동균 공방장(왼쪽)과 이윤서씨가 목재를 자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난 집을 만들겠다.” 경기도 성남 중원구의 ‘가디언하우스 작은목공방’에 다니는 이윤서(50)씨는 지난달 14일 스핀들 벨트센더로 목재 모서리를 다듬더니 5년 뒤의 꿈을 얘기했다. 근처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미용실도 목공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이 목공방의 임동균(51) 공방장은 “대부분 이미 몇 년 전부터 ‘목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분들이 찾아오신다”며 “코로나가 오히려 기폭제가 돼 실행으로 옮기게 됐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가디언하우스 작은목공방' 내부 전경. 김홍준 기자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있는 '가디언하우스 작은목공방' 내부 전경. 김홍준 기자

기초반의 이재호(25)씨가 삼단서랍장을 만들면서 무엇인가에 막힌 듯 머뭇거리자 임 공방장이 그제야 한마디 조언을 했다. “자신이, 자신의 무언가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너무 많은 걸 가르쳐 주려다가는 교육생이 거리감을 둘 수 있다”며 “코로나 시대에 자신감과 자부심은 삶을 이을 원동력 아니겠느냐”고 털어놨다.

지난 18일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 창업교육센터에서 박승훈 (주) 목인 대표가 250만원에 팔리는 윈저 체어 마무리 작업 중이다. 김홍준 기자

지난 18일 인천대학교 평생교육원 창업교육센터에서 박승훈 (주) 목인 대표가 250만원에 팔리는 윈저 체어 마무리 작업 중이다. 김홍준 기자

다시 지난 18일. 박 대표가 의자 마무리 작업을 마쳤다. 속물처럼 얼마냐고 물어봤다. “아, 250만원이요. 400만원 들여 이 기술을 배워 이런 250만원 짜리를 계속 만들죠. 자신의 꿈만큼, 능력만큼이요.” 이곳저곳의 목공방에는 저마다 꿈을 키우고 있었고, 험난한 시대를 헤쳐 나갈 힘을 기르고 있었다.

심고 기른다, 가정원예(home gardening)

6개월 째 홈 가드닝 중인 김소희씨가 집에서 키우는 제주애기모람. [사진 김소희]

6개월 째 홈 가드닝 중인 김소희씨가 집에서 키우는 제주애기모람. [사진 김소희]

“새잎이 나거나, 꽃이 피면 기분이 좋아져요. 식물들과 함께 지내면 그 친구들의 말도 들릴 정도죠.”

돌본답시고 몸이 얽매이거나,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심플하다. 6개월 차 ‘식집사’(식물+집사)인 김소희(23)씨가 식물에 투자하는 시간은 매일 아침 10분. 리톱스, 코노피튬 계열의 다육식물과 열대 관엽식물을 기르는 그는 ‘집콕 취미’로 식물 가꾸기를 선택했다. 김씨는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핸드폰만 만지작댔는데, 집안에서 식물을 돌보니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직장인 이모(25)씨는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년 전 플랜테리어(plant+interior)에 도전했다. 그는 재택근무를 하며 ‘식멍(식물을 멍하게 보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에 푹 빠졌다.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이씨는 자신이 기르는 식물을 자랑하기 위해 SNS를 개설하고, 전국의 식집사들과 소통했다. 식물이 또 다른 소통창구가 되어준 셈. 몸에 밴 귀차니즘(만사를 귀찮게 느끼는 습관)이 코로나로 더 심각해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살아있는 식물이 우리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돼요. 나도  활기가 돌죠.”

그리고 칠한다, 드로잉(drawing)

‘2시간에 2만원’을 내건 서울 종로구의 드로잉 카페. 자리 여유가 있을 때는 그림 완성 때까지 머무르게 해주는 드로잉 카페도 있다. 윤혜인 기자

‘2시간에 2만원’을 내건 서울 종로구의 드로잉 카페. 자리 여유가 있을 때는 그림 완성 때까지 머무르게 해주는 드로잉 카페도 있다. 윤혜인 기자

“반복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활력이 늘었고, 무엇보다 그리면 그릴수록 잡념이 사라졌어요” 지난 25일 이기현(41)씨가 세상사 통달한 듯 웃으며 말했다. 이씨는 일주일에 하루는 퇴근 후 화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지난해 10월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았는데 직장과 가까운 미술 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화폭은 잡념의 배출구였다. 마음이 안정됐다. 어느새 직접 그린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픈 작은 목표가 생겼다.

이씨와 함께 미술 학원에 다니고 있는 직장 동료 신희재(28)씨에게도 그림은 ‘또 다른 삶의 원동력’이다. 신씨는 “특히 작품을 완성했을 때 기분은…음, 세상 모든 걸 가진?”이라며 이씨를 따라 함께 웃었다.

직장 근처 미술학원에서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신희재씨(왼쪽)와 이기현씨. [사진 신희재]

직장 근처 미술학원에서 직접 그린 그림을 들고 있는 신희재씨(왼쪽)와 이기현씨. [사진 신희재]

지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 한데 도화지·물감·붓 등 미술 도구를 갖추고 있다. 최근 도심 곳곳에 생겨나는 ‘드로잉 카페’다. 대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과 물통에 붓 헹구는 소리가 정적을 채웠다. 최근 일주일 동안 드로잉 카페 두 곳을 방문했다는 김하영(36)씨는 “2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풀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정적. 슥슥, 붓이 도화지에 닿는 소리뿐.

자신의 취향에 맞춰 ‘향수 만들기’에 나선 한 여성. 향수 공방도 곳곳에 생기고 있다. [사진 ISDH 조향스쿨 충청센터]

자신의 취향에 맞춰 ‘향수 만들기’에 나선 한 여성. 향수 공방도 곳곳에 생기고 있다. [사진 ISDH 조향스쿨 충청센터]

대구시 서문시장 내 '한땀핸즈'에서 뜨개질 중인 수강생. 이곳의 주혜경 대표는 "뜨개질은 취미는 물론 코로나 이후의 창업 아이템으로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한땀핸즈]

대구시 서문시장 내 '한땀핸즈'에서 뜨개질 중인 수강생. 이곳의 주혜경 대표는 "뜨개질은 취미는 물론 코로나 이후의 창업 아이템으로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한땀핸즈]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움츠리면 뇌도 덜 활동하게 되면서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며 “취미 활동을 계속하면서 뇌를 써야 한다”고 밝혔다. 이경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정적인 취미와 동적인 취미를 하나씩 가지는 것도 상호보완 측면에서 좋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향수 만들기(perfume making)도 인기다. 곳곳에 향수 공방이 생기고 있다. 뜨개질(knitting), 가죽공예(leather crafting) 등은 어떨까.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한 대로, ‘막걸리 만들기(makgeolli brewing)’도 좋은 ‘실내 ing’다. 단 과음(overdrinking)은 금물.

서울 금천구의 이비그 가죽공방에서 가죽지갑을 만들고 있다. [사진 이비그 가죽공방]

서울 금천구의 이비그 가죽공방에서 가죽지갑을 만들고 있다. [사진 이비그 가죽공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