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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포럼

다시 불러보는 '껍데기는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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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중략…)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저항시인 신동엽이 1967년 발표한 시다. 군사정권 시절인 80년대 대학가에선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운동권이든 비운동권이든 상관없었다. 일체의 기득권과 위선을 비웃는'껍데기'라는 표현은 그 얼마나 통쾌하고 후련했던지….

신동엽의 시와 함께 80년대 386 대학생들의 필독서가 있었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의 '우상과 이성'이다. 서슬 퍼렇던 시절에 "우상을 깨버리고 이성으로 돌아오라"는 리 교수의 일갈은 대학 신입생들에겐 천둥소리 같았다. 책을 읽고 토론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거 봐,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반공 이데올로기에 세뇌돼 살아왔던 거냐고" "공산당이 뿔난 도깨비가 아니잖아."

그로부터 적잖은 세월이 흘렀다. 시간은 숨겨져 있던 많은 것들의 진실을 알게 해줬다. 중국 공산당이 자유를 외치는 대학생들을 탱크로 깔아뭉갠 천안문 사태가 터졌고, 노동자들의 낙원이라던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는 붕괴했다. 리 교수의 말은 일부 맞았다. 그의 지적대로 공산주의자들은 결코 뿔난 도깨비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어떻게 해서든 좀 더 잘 먹고 잘살려고 발버둥 치는 보통 사람에 불과했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에서 그들은 "자유를 달라" "빵을 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벌거벗은 맨몸을 드러낸 사회주의의 현실은 리 교수의 주장과는 딴판인 게 너무 많았다.

리 교수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인류의 위대한 실험인 것처럼 찬미했다. 하지만 중국이 외부에 개방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중국인들이 그 시절을 얼마나 끔찍해하는지를. 리 교수가 많은 저서에서 일관되게 암시했던 '당장은 힘들어도 인류의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사회주의'라는 희망의 메시지는 결국 진실이 아니었다.

나는 리 교수가 사과해 주길 바랐다. 나처럼 그의 글을 읽고 떨리는 가슴으로 반공주의의 우상을 깼고, 한때 사회주의를 껴안았던 수많은 386들에게 "내가 당신들을 오도한 점이 있다. 나도 몰랐고 미안하다"라고 말해줬으면 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2006년 가을, 이제 우리는 80년대 반공주의의 정반대 쪽에 도사리고 있던 또 다른 우상을 마주하고 있다. 이 괴물은 '골통 보수'와 반공주의에 질려버린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순식간에 파고들었다. 이 우상은 이름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북한에 대한 환상과 미화'고 다른 하나는 '낭만적 민족주의'다.

골수 우파들처럼 "전쟁 불사"를 외치며 호들갑을 떨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반공주의 건너편의 우상과 환상으로부터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위해 다음 질문에 답해 보자.

①인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국민 전체를 총체적 노예로 만든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관대한 마음이 든다 ②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육사 동창들끼리 해먹었다"고 비난하지만 김일성-김정일의 부자세습은 "그건 나쁘지만…"이라고 말한다 ③신동엽의 시는 가슴에 와 닿지만 북한이 '모오든 쇠붙이'의 왕초 격인 핵폭탄을 개발한 건 별걱정이 안 된다. 만일 이 중 하나에라도 '그렇다'는 대답을 하게 되면 한 번쯤은 "혹시 나는 우상에 사로잡혀 있진 않은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80년대의 많은 386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리영희 교수의 정신적 제자였다. 20여 년 전, 휴전선 철책에서 밤새 보초 근무를 선 뒤 먼동이 터올 때면 김지하의 시 구절처럼 '신새벽에 남몰래, 타는 목마름으로' 신동엽의 시를 외곤 했다.

40대가 된 지금도 당시에 가졌던 정의감과 열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이제 한 소절을 더해 다시 시인의 노래를 불러본다. '껍데기는 가라/우상도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김종혁 정책사회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