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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맨' 잊어라…애플카 이어 소니카, 전자회사 이유있는 변신[강병철의 CA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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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켄이치로 소니 회장이 이달 초 열린 CES에서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소니모빌리티를 설립한다고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요시다 켄이치로 소니 회장이 이달 초 열린 CES에서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소니모빌리티를 설립한다고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CES→ECS. 미국 소비자가전쇼(CES, Consumer Electronic Show)가 전기자동차쇼(ECS, Electric Car Show)로 변모한 지 오래다. 이런 흐름 속에 이달 5~7일(현지시간) 열린 CES 2022에서는 꽤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의 세계적인 전자회사 소니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든다고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소니, 전기차 시장 진출 공식 선언

요시다 켄이치로(吉田憲一郎) 소니 회장은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올봄 소니모빌리티를 설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2년 전 CES에서 전기 콘셉트카 ‘비전-S01’을 공개했지만 다른 자동차회사와 협력에 초점을 뒀다. 이처럼 시장 진출에 선을 그었던 소니가 불과 2년 만에 180도 달라진 입장을 발표하자 CES 전시장 전체가 술렁거렸다.

소니의 전기 콘셉트카 ‘비전-S01’(오른쪽)과 ‘비전-S02’. [사진 소니]

소니의 전기 콘셉트카 ‘비전-S01’(오른쪽)과 ‘비전-S02’. [사진 소니]

소니는 ‘비전-S01’에 이어 전기 콘셉트카 ‘비전-S02’를 선보였다. 출시 일정은 밝히지 않았다. 요시다 회장은 “비전-S 시리즈에 5세대 통신(5G)에 걸맞은 소니의 카메라와 센서, 오디오 시스템이 장착돼 있다”고 설명했다.

5G·센서 앞세운 자율주행 자신감

전자회사답게 소니는 5G 환경에서 안정적인 자율주행 능력을 강조했다. 기존의 자율주행차보다 원격 통신의 대기·지체 시간이 적고, 차량 제어가 원활한 것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간의 시야를 초월하는 센서 감지 기술로 차량 주변을 360도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동시에 승객의 상태 등 실내 상황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 차량용 이미지 센서 부문에서 현재 소니는 세계 1위다.

소니는 전기차 콘셉트로 5G 통신을 기반으로 실시간 성장하고 진화하는 자동차를 꿈꾼다. [사진 소니]

소니는 전기차 콘셉트로 5G 통신을 기반으로 실시간 성장하고 진화하는 자동차를 꿈꾼다. [사진 소니]

소니는 차세대 전기차 콘셉트로 실시간 성장하고 진화하는 자동차를 꿈꾼다. 모든 데이터가 연결된 상황에서 전기차 자체가 네트워크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동기화가 이뤄지고, 소프트웨어는 네트워크를 통해 반복적으로 업데이트된다. ‘워크맨’의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리듯, 시트에 탑재된 360 리얼 오디오 시스템과 스피커도 이목을 끈다.

세계 시장 석권한 화려한 경력

소니는 1960년대 트리니트론(컬러TV), 70년대 워크맨(휴대용 오디오 플레이어), 80년대 핸디캠(캠코더), 90년대 바이오(초박형 노트북), 2000년대 브라비아(고화질TV) 등을 앞세우며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그러나 소니와 일본 전자 산업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더딘 디지털 전환(DT)과 스마트폰 사업 패착으로 인해 고전하고 있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소니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일본 전자회사 소니의 연대별 주력 상품.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일본 전자회사 소니의 연대별 주력 상품.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소니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전기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배터리 기술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소니에게 배터리는 ‘아픈 손가락’이다. 소니는 원래 재충전 가능한 배터리를 뜻하는 2차전지 분야의 선구자였다. 핸디캠과 바이오를 통해 기술력을 뽐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1위 배터리 회사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세계 최초 상용화했다.

소니의 아픈 손가락…배터리 매각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소니 배터리가 탑재된 타사 노트북과 정보기술(IT) 기기에서 발화 논란이 생기면서 내리막을 걷게 된다. 이어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소니 배터리가 탑재된 제품에 대해 리콜 조치를 했다. 소니 배터리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고, 불과 5년 전인 2017년 배터리사업부를 무라타제작소에 매각했다. 이후 한국 배터리 3사와 중국 업체가 배터리 시장의 강자로 앞서나갔다. 그 사이 미국 테슬라의 선전에 힘입어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앞당겨지며 배터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소니 배터리사업부를 인수한 일본 무라타의 연구시설. [사진 무라타]

소니 배터리사업부를 인수한 일본 무라타의 연구시설. [사진 무라타]

소니 배터리사업부를 인수한 무라타는 차세대 2차전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으면서도 안전한 게 특징이다. 무라타는 오는 3월 세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의 상업적 생산에 들어간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 분야에서 경쟁하던 히타치 등과 비슷한 시기에 상용화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전고체 배터리 탑재한다면 ‘게임 체인저’

미나미데 마사노리(南出雅範) 무라타 수석부사장은 닛케이와 인터뷰에서 “(차량용에 앞서) 웨어러블 기기에 맞는 소용량 전고체 배터리를 우선 내놓을 예정”이라며 “한 달에 10만 셀 분량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소니카에 무라타의 전고체 배터리가 실린다면 전기차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조심스럽게 나오는 이유다.

 애플 관련 정보가 올라오는 ‘맥루머스’에서 예상한 애플카의 모습. [사진 맥루머스]

애플 관련 정보가 올라오는 ‘맥루머스’에서 예상한 애플카의 모습. [사진 맥루머스]

소니의 자동차 산업 진출은 미국 애플의 행보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진출을 공식 선언한 소니와 달리 애플카 프로젝트는 여전히 첩보 영화처럼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애플카의 상용화 시기를 2025년으로 보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글로벌 투자회사 얼라이언스번스타인은 보고서를 통해 애플이 2025년에 전기차를 출시하고, 2030년까지 150만 대를 판매할 것으로 내다봤다.

첩보 영화 같은 애플카 프로젝트 

애플은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자율주행 기능을 중심으로 애플카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자체적으로 배터리도 개발했다. 당시 테슬라 직원을 많이 데려가 테슬라와 불편한 관계에 놓인 적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트위터에 “테슬라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애플에서 일한다. 애플은 우리가 해고한 사람을 고용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019년 사이버트럭을 공개하던 모습. 사이버트럭은 인도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019년 사이버트럭을 공개하던 모습. 사이버트럭은 인도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애플카에 이어 소니카의 출시가 현실로 다가오자 전 세계 자동차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전자회사의 자동차 산업 진출은 이미 선례가 있다. 자동차가 전기차 등 전장 위주의 산업으로 바뀔 거란 흐름을 보였기 때문이다. 30년 전 전자산업이 주축이던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은 현시점에서 볼수록 의미심장하다.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 모호해져

고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은 97년 취임 10주년을 맞아 출간한 에세이『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와 출판 기념회를 통해 “오늘날 자동차는 부품 가격 중 전자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 물론 누구도 자동차를 전자제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며 “그러나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그때 가면 아마 전자·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7년 취임 10주년을 맞아 출간한 에세이『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와 출판 기념회를 통해 자동차의 전자제품화 가능성을 예견했다. [중앙포토]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7년 취임 10주년을 맞아 출간한 에세이『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와 출판 기념회를 통해 자동차의 전자제품화 가능성을 예견했다. [중앙포토]

이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결국 르노에 매각했다. 삼성차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삼성 전직 임원은 수년 전 기자에게 “지금이야 자율주행차와 전기차가 현실로 다가와 자동차를 하나의 전자제품으로 당연히 여긴다”며 “당시(삼성차 출범)만 하더라도 아무나 생각할 수 없었던 혜안”이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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