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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도공 실무자 2명 “빨간펜 수정에…유동규에 '총' 맞았다”[法ON]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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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에서 내려온 '대장동 개발사업 공모지침서'를 본 2명의 직원은 각각 빨간 펜과 포스트잇을 듭니다. 당시 개발사업1팀 차장이던 주모 씨와 이현철 개발사업2팀장(현 개발사업2처장)입니다.

추가 수익이 발생해 민간에 이익이 쏠릴 수 있는 상황도 염두에 두자는 이들의 우려에도, 사업은 유동규(53·구속기소)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의 입맛대로 흘러갔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오히려 "왜 그런 걸 작성했느냐"며 실무자들을 질책했다고 합니다.

공모지침서 지적하자 "총 맞았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사진 우상조 기자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사진 우상조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양철한 부장판사)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 5명, 유동규 전 본부장, 회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 정영학 회계사, 남욱 변호사, 정민용 변호사에 대한 네 번째 공판을 24일 열었습니다. 이날 재판에는 성남도시개발공사개발사업1팀에서 일했던 실무자 박모씨와 이현철 처장이 증인으로 나왔습니다.

박씨는 정민용 변호사가 있는 전략사업실에서 작성한 공모지침서를 당시 개발사업1팀 차장 주모씨가 검토했고, 이로 인해 유 전 본부장에게 질책을 받았던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당시 주씨는 "사업수익이 많이 생길 경우 민간사업자에게 많은 수익이 들어가는 구조가 위험하니, 이익을 다시 분배할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는 취지로 공모지침서를 검토했다고 합니다. 이후 주 씨가 공모지침서 10여 군데에 빨간색으로 표시해 정민용 변호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유 전 본부장이 주씨를 불러 질책했다는 것입니다. 박씨는 "주씨가 ‘총 맞았다’는 식의 표현을 했다"며 "정서 상태가 많이 '다운'돼 있었다"고 떠올렸습니다. “그런 질책은 이례적이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공모지침서에 우려를 표한 직원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이현철 처장(당시 개발사업1팀장) 역시 "경기가 좋아졌을 때를 대비해 '플러스 알파' 이익을 환수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포스트잇 메모지를 붙여 보고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은 이 처장이 성남시의회 등에 출석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의견은 공모지침서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검토한 지 얼마 안 돼 공고가 되는 등 시간적인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주씨가 이미 한 차례 질책을 받은 뒤라, 공모사업의 남은 절차에서 더는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다는 취지로 박씨는 증언했습니다.

"부동산 가격 오를지 몰랐다"

22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성남도시개발공사 전경. 김서원 기자

22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성남도시개발공사 전경. 김서원 기자

유 전 본부장 측은 이들의 우려는 ‘결과론’적인 주장이었다고 반박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몰랐던 만큼, 공사 이익을 고정이익으로 설계한 건 위험을 최소화한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남욱 변호사 측도 민간사업자가 가져가는 이익이 많을 것이라는 건 당시 '가정'일 뿐이었다며 배임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또 실무자들이 요구했던 대로 사업 조건이 수정될 경우, 공사가 리스크나 비용을 더 부담하는 상황을 생각해본 적은 없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에 이 처장은 "공사 입장에서 수익을 최대한 받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김만배씨 측은 "토건세력 비리로 인해 성남시가 이익을 얻지 못하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 먼저 시의 이익을 확정한 것"이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토건세력 비리를 고려한 공사 내부 지침이나 공지가 있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박씨는 "정확한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동규 산하 아닌데도 팀 이관 지시"

이날 재판에서는 2015년 2월 대장동 관련 업무가 개발사업2팀에서 개발사업1팀으로 갑자기 이관된 이유에 대한 질문도 오갔습니다. 앞서 유 전 본부장이 자신의 측근인이자 지난달 21일 숨진 김문기 처장이 있던 개발사업1팀에 일을 맡긴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습니다.

박씨는 "업무가 이관된 정확한 경위는 알 수가 없고, 어느 날 바뀌었다고 해서 급하게 공모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습니다. 당시 1팀으로 업무를 넘긴 이 처장은 "1팀이 개발 관련 업무 경험이 많아 옮긴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개발사업팀을 관장하는 유한기 개발본부장이 아닌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이 지시했고, 이 때문에 유한기 본부장에게 다시금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2월 4일에 예정된 다음 기일에는 대장동 개발사업 공모에 참여했던 메리츠 증권 관계자 등이 증인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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