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3월 27일 이탈리아 밀라노, 명품 브랜드 구찌 회장 마우리치오의 출근길에 네발의 총성이 울립니다. 괴한의 총격에 구찌 회장은 숨지고 말았죠. 2년 뒤 청부살인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 29년형을 선고받은 범인, 바로 전부인 파트리치아 레지아니였죠.
가난한 세탁소집 딸 파트리치아는 법대생이던 마우리치오와 한눈에 빠져 결혼하며 ‘현대판 신데렐라’로 불렸습니다. 구찌 가문의 반대에도 결혼해 13년을 살았지만 1991년 이혼했습니다. 한때 불같이 사랑한 연인이자 자신이 낳은 딸의 아버지를 살해한 여인. 그 희대의 악처가 가수 겸 배우 레이디 가가의 연기로 부활했습니다. ‘글레디에이터’ ‘에이리언’을 만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12일 개봉)입니다.
중앙일보 팟캐스트 ‘배우 언니’ 22일 방송(https://www.joongang.co.kr/jpod/episode/765)에선 미국 팝음악계 파격의 아이콘 가가가 ‘하우스 오브 구찌’에서 펼친 명품 연기 비결을 파헤쳤습니다. 구찌가 며느리는 왜 전남편을 살해했을까요. 그에 대한 가가의 해석도 흥미롭습니다.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그 이름”. 이 한 줄 카피처럼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에서 구찌가를 향한 파트리치아의 욕망은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실제로도 그는 “자전거를 타고 웃느니 롤스로이스를 타고 울겠다”는 말로 유명해질 만큼 사치와 허영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가가는 “연기하기 위해서 전 그(파트리치아)를 사랑해야 했다”고 영화사와 사전 인터뷰에서 말했죠. “가장 별로인 사람조차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들여다봤으면 한다”면서 “큰 상처를 입은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깨닫게 됐다”고 고백했죠. “이 영화는 통제력을 상실한 여성, 계급 차별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계급적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는데 구찌 가문만큼 빛나지 못했다. 늘 아웃사이더였고 인정받은 적이 없었다. 돈과 특권, 권력이란 독약에 집착하는 구찌 일가의 내력 때문에 그들은 ‘구찌’를 두고 싸우느라 진짜 재앙이 오는 것을, 파트리치아가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요.
[배우 언니]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주연 가가 #패션 명가 구찌가 청부살해 실화 그려 #스콧 감독 "가가, 창조력의 슈퍼 엔진" #2번째 주연작으로 여우주연 후보 휩쓸어
알 파치노 "파트리치아는 레이디 가가로 기억될 것"
가가는 범죄자인 파트리치아를 결코 미화하진 않습니다. 대신 자신감 넘치던 세탁소집(영화에선 파트리치아의 친정이 트럭사업을 하는 것으로 각색됐다) 딸이 이탈리아 패션계의 귀족 가문에서 어떻게 수치심을 견뎌내는지를 빛이 꺼져가는 눈빛부터 표독과 광기를 넘나들며 섬세하게 조율해 연기해냅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창조력의 슈퍼 엔진”이라 표현했을 정돕니다. 60년간 영화를 만들어온 이 영국 노장은 가가가 무명 가수로 출연한 첫 스크린 주연작 ‘스타 이즈 본’(2018)을 보고 배우로서 가가의 “어마어마한 재능”에 반했다고 하죠. 안젤리나 졸리, 마고 로비 등 숱한 할리우드 스타가 물망에 오른 배역을 배우로선 신인급인 가가로 낙점한 이유입니다. 마우리치오 구찌의 숙부 역으로 호흡 맞춘 명배우 알 파치노는 “파트리치아는 레이디 가가로 기억될 것”이라고 칭찬했죠.
스스로도 성폭력 피해, 약물중독을 극복하고 괴짜들을 품어안는 노래와 행보로 ‘몬스터들의 엄마’로 불려온 가가. ‘스타 이즈 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호명됐고 주연으론 단 두 편째인 이번 영화도 영국 아카데미 1차 후보, 미국 배우조합상(SAG) 여우주연상‧앙상블상 후보, 뉴욕‧라스베이거스 등 미국 각 지역 비평가협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두 번째 오스카(아카데미 트로피 애칭) 후보 지명도 점쳐집니다. 그를 기존 팝스타 출신 배우 휘트니 휴스턴, 비욘세와 차별화하는 강점은 무엇일까요. 팟캐스트 ‘배우 언니’가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와 함께 분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