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만 남았던 곳에 38만명 몰렸다…'BTS 성지' 꿈꾸는 퍼플섬

중앙일보

입력 2022.01.20 05:00

신안 퍼플섬 퍼플교. 관광객이 가장 많이 기념사진을 남기고 가는 장소다. 보라색 의상이나 우산, 모자 등을 착용하면 퍼플섬 입장료가 면제다. 백종현 기자

신안 퍼플섬 퍼플교. 관광객이 가장 많이 기념사진을 남기고 가는 장소다. 보라색 의상이나 우산, 모자 등을 착용하면 퍼플섬 입장료가 면제다. 백종현 기자

“보라색에 올인해 인스타그램 명소로 탈바꿈했다. 사진작가에게는 꿈같은 섬.(미국 CNN, 2021)”

이제는 국내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전남 신안 최대 명물로 거듭난 ‘퍼플섬(반월‧박지도)’ 이야기다. 반월‧박지도는 신안 안좌면 남쪽 끝자락에 마주하고 있는 형제섬이다. 불과 3~4년 전만해도 신안 사람도 잘 모르던 외딴섬이다. 섬마을 곳곳에 보라색을 입히고, 퍼플섬이란 새 이름을 단 뒤 반월‧박지도의 명성은 달라졌다. 노인들만 남았던 쓸쓸한 섬이, 가고 싶은 섬으로 탈바꿈했다.

국가대표 섬마을

반월도 마을식당 뒤편 언덕에서 내려다본 반월도 마을 전경. 백종현 기자

반월도 마을식당 뒤편 언덕에서 내려다본 반월도 마을 전경. 백종현 기자

‘2021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한국의 100대 관광지’ ‘2021 한국 관광의 별’….

퍼플섬이 보유한 공식 타이틀이다. 퍼플섬은 지난달 ‘2021년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Best Tourism Village)’에 선정됐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가 인구 1만5000명 미만의 전 세계 농어촌마을을 대상으로 문화‧자연 자원, 경제‧사회‧환경적 지속가능성, 안전성 등을 따져 32개국 44개 마을을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로 선정했다. 퍼플섬도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받아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섬마을의 독특한 문화와 자연, 관광 잠재성 등을 두루 인정받은 셈이다.

퍼플섬 곳곳에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백종현 기자

퍼플섬 곳곳에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을 기념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백종현 기자

최근에는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 수원화성 야간 관광 등과 함께 ‘2021 한국 관광의 별’에도 올랐다. 문체부·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한국의 100대 관광지’이기도 하다. 이만하면 국가대표 관광 섬이나 다름없다.

퍼플섬은 이른바 컬러마케팅을 통해 섬 부활을 일군 첫 사례다. 반월도와 박지도 두 섬 인구를 다 합해 봐야 135명 남짓이다. 한때 700명 이상이 거주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80년대 도시화·산업화를 거치며 인구의 80% 가까이가 뭍으로 빠져나갔다. 현재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 어르신이다.

잠잠하던 섬마을에 2015년 변화가 시작했다.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사업에 선정된 후 4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다리와 길을 닦고, 식당‧카페‧숙박시설 등을 지었다.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을 전역에 보라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보라색 꽃을 피우는 청도라지·꿀풀 등이 섬에 많은 데에서 힌트를 얻었다. 다리와 마을 지붕 등을 보라색으로 칠하고, 보랏빛 유채를 비롯해 라벤더‧아스타국화‧자목련 등을 해안 산책로를 따라 심었다. 정창균(68) 박지도 마을 해설사는 “사계절 보랏빛 꽃피는 섬으로 만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손수 꽃을 심고 가꿨다”고 회상했다.

다리도 숙소도 공깃밥도 보라색

보라색으로 맞춰 입은 박지도 마을 할머니들. 마스크도 신발도 보라색이다. 백종현 기자

보라색으로 맞춰 입은 박지도 마을 할머니들. 마스크도 신발도 보라색이다. 백종현 기자

퍼플섬은 멀다. 그나마 2019년 천사대교(압해도~암태도)의 개통으로 교통 사정이 나아졌다. 목포에서 출발해도 자동차로 꼬박 1시간을 달려야 섬 입구에 닿는다. 퍼플섬으로 드는 방법은 두 가지. 안좌도 두리선착장에서 배를 타거나, ‘퍼플교(547m)’로 불리는 보랏빛 다리를 건너야 박지도에 닿는다. 박지도와 반월도 역시 퍼플교로 연결돼 있다. 이태 전 안좌도와 반월도를 잇는 문브릿지(380m)까지 생기면서 섬 일주가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먼 길을 달리고 또 돌아가야 한다. 퍼플섬 안쪽에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다.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퍼플섬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2020년 8월 정식 개장 이후 38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았다. 코로나 확산 여파에도 관광객이 꾸준한 편이다. 요즘도 주말이면 2000명 가까운 사람이 퍼플섬을 찾는다. 1월 1일 하루만 대략 5000명이 들었단다. 퍼플섬 이전에는 반월‧박지도 모두 관광객이 제로에 가까웠다. 모든 숫자가 섬마을 사람에게 기적이다. 박지도 최연장자 정순심(89) 할머니는 “스무살에 시집와 70년 가까이 섬에 살았는데 관광객이 몰려오는 건 처음 보는 일”이라고 전했다.

퍼플섬은 식당과 음식도 보랏빛이다. 앞치마부터 그릇까지 모두 보라색으로 꾸민 박지도 마을식당(왼쪽 사진). 반월도 마을식당에서는 꽃과 약재를 달여 지은 보라색 '퍼플밥'을 맛볼 수 있다. 백종현 기자

퍼플섬은 식당과 음식도 보랏빛이다. 앞치마부터 그릇까지 모두 보라색으로 꾸민 박지도 마을식당(왼쪽 사진). 반월도 마을식당에서는 꽃과 약재를 달여 지은 보라색 '퍼플밥'을 맛볼 수 있다. 백종현 기자

다리 건너편, 섬마을은 그야말로 보랏빛 세상이다. 살림집 지붕을 비롯해 정자‧공중전화부스‧펜션‧카페 등등 모든 것이 보라색이다. 마을 교통수단인 전기자전거와 전동차도 보라색, 도로와 푯말도 보라색, 심지어 동네 개집도 보라색이다.

이 대대적인 ‘깔맞춤’에 마을 어르신들이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라색으로 꽃단장해 방문객을 맞는다. 동네 마실 갈 때도 목도리‧털모자‧마스크‧꽃신 등의 보라색 소품을 빼놓지 않는다. 패딩 점퍼와 마스크를 제외하면 대부분 시장에서 손수 산 물건이다.

두 섬에는 마을 식당이 하나씩 있다. 섬 인근 바다에서 잡아 올린 뻘낙지를 재료로 한 낙지탕탕이‧연포탕‧초무침 등이 대표 메뉴다. 무엇을 시키든 보라색 그릇에 음식이 담겨 나온다. 반월도 마을식당에서는 공깃밥도 보라색이다. 지난해 일명 ‘퍼플밥’을 개발하는 데만 쌀 60㎏를 쏟아부었단다. 장원삼(43) 요리사는 “국화‧버섯‧치자‧비트 등을 우려낸 물로 밥을 짓는데, 어머님들의 관심이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박지도 마을호텔에서 하룻밤을 청했다. 보라색 비누와 타올로 씻고, 보라색 커튼을 친 다음, 보라색 이불을 덮고 잤다. 모든 게 보랏빛이었다.

BTS 성지를 꿈꾸며

반월도에 있는 '아이 퍼플 유' 조형물. 백종현 기자

반월도에 있는 '아이 퍼플 유' 조형물. 백종현 기자

여행자를 위한 팁 하나. 옷장에 숨은 보라색 옷이나 소품을 반드시 챙기시라. 퍼플섬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여행자들의 필수 아이템이다. 퍼플교와 공중전화 부스, 마을 조형물 앞이 사진이 잘 나오는 명당이다. 보라색 옷이나 신발·모자 등을 착용하면 입장료(5000원)도 면제받을 수 있다. 매표소 앞에서 온갖 보라색 기념품을 판매한다. 최고 인기 상품은 보라색 우산(1만2000원)이다.

방탄소년단(BTS)은 퍼플섬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유명 인사다. 주민들은 퍼플섬이 전 세계 아미(BTS 팬덤)의 성지가 되길 고대하고 있다. BTS의 상징색이 보라색이어서다. 최근에는 뷔가 만든 신조어이자, 유행어인 ‘I PURPLE YOU’를 새긴 조형물을 섬 곳곳에 두었다.

가구 수는 박지도보다 반월도가 훨씬 많다. 하여 보랏빛 지붕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 전경을 담으려면 반월도로 가는 게 유리하다. 반월도 마을 식당 뒤편 언덕에서 마을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퍼플교는 저녁에도 건너봐야 한다. 해 질 녘부터 오후 10시까지 오색 빛 조명이 들어온다.

퍼플섬 여행자의 필수품은 보라빛 의상과 소품이다. 퍼플섬에서 만난 강아지 역시 보랏색 옷을 입고 있었다. 백종현 기자

퍼플섬 여행자의 필수품은 보라빛 의상과 소품이다. 퍼플섬에서 만난 강아지 역시 보랏색 옷을 입고 있었다. 백종현 기자

퍼플섬을 누비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해안을 따라 박지도(2.1㎞)과 반월도(4㎞)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조성돼 있는데, 걸어서 일주하려면 4시간은 잡아야 한다. 전기자전거(1시간 5000원)를 빌려 타는 방법도 있지만, 이맘때는 강바람을 피할 수 있는 전동차(9인승, 3000원)가 여러모로 낫다. 섬 주민이 함께 타 생생한 마을 이야기도 들려준다. 박지도에서는 5인승 전동차(1만5000원)를 렌트해 섬 드라이브도 할 수 있다.

컬러 마케팅 우리도 있다

신안 곳곳에서 컬러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퍼플섬 반월도, 선도, 병풍도. 도초도. 사진 신안군

신안 곳곳에서 컬러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퍼플섬 반월도, 선도, 병풍도. 도초도. 사진 신안군

퍼플섬의 컬러마케팅은 신안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제2, 제3의 퍼플섬을 꿈꾸는 곳들이 늘면서, 섬마을마다 고유의 색을 입히는 경관 사업이 한창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의 항공사진을 보면 그 컬러풀한 변화가 여실히 보인다.

깔맞춤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이를테면 안좌도와 흑산도 사이의 도초도는 코발트블루로 색깔을 맞췄다. 섬에 푸른빛의 수국이 많이 자라는 데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도초도 수국공원 언덕에서 코발트블루빛으로 지붕 색을 맞춘 지남리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다. 마을 바깥의 염전 소금 창고도 화사한 색을 뒤집어썼다. 수국이 만개하는 6월이면 섬 전체가 블루 톤이 된다. 도초도와 이웃한 비금도 용소마을, 우이도 진리마을에도 코발트블루가 물결친다.

수선화가 많은 지도읍 선도에는 밝은 노란빛 지붕이 흔하다. 이태 전 약 4000만원을 들여 마을 지붕과 부두를 노랗게 칠하고, 곳곳에 수선화 벽화를 그렸다. 선도에서는 매년 4월 수선화축제가 열린다.

병풍도는 순례자의 섬으로 유명한 기점·소악도의 길목이다. 이 곳의 핫플레이스는 섬 동쪽 해안가의 맨드라미공원이다. 최근 공원 뒤편의 마을도 맨드라미 색을 닮은 주홍색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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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교는 저녁에도 건너 봐야 한다. 해가 진 뒤 보랏빛 조명이 다리를 비춘다. 백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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