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만난 닉슨 “연임 땐 중·미 관계 정상화 문제 해결할 것”

중앙선데이

입력 2022.01.15 00:21

지면보기

771호 29면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711〉 

중국 방문 마지막 날, 닉슨은 저우언라이와 상하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72년 2월 28일 오전, 홍차오 공항에서 저우와 작별인사 나누는 닉슨. [사진 김명호]

중국 방문 마지막 날, 닉슨은 저우언라이와 상하이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72년 2월 28일 오전, 홍차오 공항에서 저우와 작별인사 나누는 닉슨. [사진 김명호]

1972년 2월 21일 마오쩌둥은 태평양을 건너온 닉슨과 70분간 대화했다. 닉슨의 한마디가 마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연임에 성공하면, 중·미 관계 정상화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겠다.” 4개월 후, 6월 17일 밤, 남자 5명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 소재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잠입했다. 도청장치 설치하고 문건 절취하다 체포됐다. 온 미국이 들썩거렸다. 닉슨의 승리에는 영향이 없었다. 압도적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워터게이트사건은 계속 닉슨의 발목을 잡았다. 1974년 8월, 하원이 탄핵을 의결하자 사임했다. 당시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였다. 닉슨은 변호사 자격도 박탈당한 채, 새크라멘토의 사저에 은둔했다. 비난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마오, 퇴임한 닉슨 수차례 방중 요청

중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포드를 영접하는 덩샤오핑. 왼쪽 첫째가 미국의 베이징연락사무소 소장 부시. 1975년 12월 1일, 베이징. [사진 김명호]

중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포드를 영접하는 덩샤오핑. 왼쪽 첫째가 미국의 베이징연락사무소 소장 부시. 1975년 12월 1일, 베이징. [사진 김명호]

대통령직을 승계한 포드는 닉슨의 외교정책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중국과의 국교수립도 지지부진했다. 마오쩌둥은 워터게이트사건에 개의치 않았다. 실의에 빠진 닉슨에게 중국 방문을 수차례 청했다. 여의치 않자 워싱턴 주재 중국연락사무소 소장 황쩐(黃鎭·황진)을 통해 닉슨의 딸과 사위를 베이징으로 초청했다. 1975년 12월 31일 밤, 마오쩌둥의 서재에 젊은 방문객이 나타났다. 한 명은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손자 데이비드, 다른 한 명은 닉슨의 딸 쥴리였다. 80이 넘은 사회주의 대국의 통치자와 미국적 가치관에 충실한 20대 신혼부부의 만남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덕담 외에는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사실은 달랐다.

데이비드가 구술한 마오쩌둥의 첫인상을 소개한다. “보는 순간 심란했다. 머리를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헝클어진 두발에 늘어진 입술 사이로 힘들게 공기를 삼키는 모습이었다. 앉은 채 내미는 손을 잡다 보니 높은 각도에서 마오를 관찰할 수 있었다. 넓게 퍼진 얼굴과 귀를 보며 신이 출현한 줄 알았다.” 데이비드의 태도가 마오의 주의를 끌었다. “뭘 뚫어지게 보느냐?” “방금 주석의 얼굴을 봤습니다. 상반부가 특이합니다.” 마오가 답했다. “나는 중국인의 얼굴을 갖고 태어났다. 연기에 적합하기는 중국인의 얼굴이 세계 제일이다. 코가 퍼져있기 때문이다. 분장만 하면 미국이나 소련, 프랑스 무대에 세워놔도 손색이 없다. 서구인은 코가 높다. 무대에서 중국인 역 하려면 코를 조금 잘라내야 한다.” 데이비드가 웃음 터뜨리며 마오의 옆자리에 앉자 쥴리가 편지를 꺼냈다. “아버지가 주석에게 전달하라 했습니다.”

쥴리와 데이비드를 배웅하는 마오쩌둥. 마오의 오른쪽이 왕하이룽. 1975년 12월 31일 밤 중난하이(中南海). [사진 김명호]

쥴리와 데이비드를 배웅하는 마오쩌둥. 마오의 오른쪽이 왕하이룽. 1975년 12월 31일 밤 중난하이(中南海). [사진 김명호]

입술 우물거리며 편지 읽는 마오쩌둥을 본 쥴리는 마오의 영문 독해력에 놀랐다. 데이비드 향해 혀를 살짝 내밀자 데이비드도 두 눈을 끔벅했다. 통역으로 참석한 외교부 부부장 왕하이룽(王海容·왕해용)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자 쥴리와 데이비드도 왕을 바라보며 따라 했다. 읽기를 마친 마오가 쥴리에게 재차 악수 청하며 입을 열었다. “대통령의 다리가 어떤지 궁금하다. 빨리 중국에 왔으면 좋겠다. 염라대왕이 내게 초청장을 보냈다. 대통령 만나기 전까지는 초청에 응하지 않겠다.  얼마 전 포드 대통령이 서울을 거쳐 중국에 다녀갔다.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에게 영접하라고 했다. 나는 습관을 바꾸기 힘들다. 내게는 아직도 네 부친이 미국 대통령이다. 중국에 오면 내가 직접 영접하겠다.” 워터게이트사건도 거론했다. “녹음테이프 두 개에 무슨 대단한 내용이 들어있겠느냐? 서구의 정치는 별것도 아닌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허위투성이다.”

데이비드가 말머리를 돌렸다. “미국인들이 주석의 시를 좋아합니다. 독자들이 많습니다. 저작물을 수십억 부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마오쩌둥은 기분이 좋았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 책들은 읽기에 불편한 내용이 많다. 교육적으로도 별 의미가 없다.” 데이비드는 닉슨의 말을 상기시켰다. “장인은 주석의 저작물이 한 민족을 이끌고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했습니다.” 마오는 겸손으로 응대했다. “지구는 넓다. 거대한 지구를 개조하고 변화시킬 사람은 없다. 나는 베이징 부근의 몇 개 지역만 변화시켰을 뿐이다.”

닉슨 딸 부부, 마오 영어 실력에 감탄

이어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중국 음식에 습관이 됐느냐?” 데이비드가 웃으며 대답했다. “익숙하지 못합니다. 키신저도 미국인이 중국 음식 먹으면 위장이 비정상이 된다고 했습니다.” 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위장 기능도 가끔 비정상일 때가 있다. 베이징에 온 후부터 특히 그랬다. 위장이 가장 정상일 때는 전쟁 시절이었다.” 데이비드가 “중국에 전쟁 일어날 일 없으니 애석하다”고 하자 마오가 큰 소리로 이유를 물었다. “중국인이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대답에 마오의 목청이 더 높아졌다.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더냐? 중국인은 싸움을 좋아한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전쟁이 없어도 적은 있다. 각양각색의 적들이 도처에 있다. 적과 싸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평화를 주장할 자격이 없는 무능한 사람들이다. 나는 무능한 사람보다 유능한 배신자가 좋다. 유능한 배신자는 잘못을 고칠 줄 안다. 한동안 놔뒀다가 다시 기용하면 착오를 반복하지 않는다. 더 큰 역할을 충분히 소화한다.” “적은 우파를 의미하느냐”는 데이비드 질문에도 답을 줬다. “그 반대다. 나는 우파를 좋아한다. 네 장인은 우파다. 드골과 영국 수상 히스도 우파다. 우파에겐 얻을 것이 많다. 나는 조금만 줘도 된다.”

1976년 2월 6일, 국영 신화(新華)통신이 세계를 향해 공고(公告)나 다름없는 뉴스를 배포했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모비온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