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흥' 로고까지 등장…구찌·프라다는 왜 '음력 설'에 꽂혔나

중앙일보

입력 2022.01.14 05:00

업데이트 2022.01.1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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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호랑이해를 맞은 패션 브랜드들의 행보가 분주하다. 구찌·프라다·발렌시아가·펜디·디올 등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는 ‘음력 설(Luna new year)’ 컬렉션을 출시했다. 호랑이 그림을 넣은 가방부터, 호피 무늬 의류까지 ‘임인(壬寅)년’을 기념한 한정판 제품들이다.

광고에 등장한 진짜 호랑이, ‘어흥’ 로고도

5일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구찌’가 2022년 신년을 맞아 호랑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한 ‘타이거 컬렉션’을 선보였다. 은은한 색감의 화초 일러스트 배경 위로 호랑이가 수 놓인 맨투맨 티셔츠와 드레스, 가방 등이 주요 제품이다. 실제 호랑이가 등장하는 광고도 눈길을 끈다. 레트로풍 호텔에서 차를 마시는 모델 옆으로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는 그야말로 강렬하다.

구찌가 음력 설을 맞아 출시한 호랑이 컬렉션 광고. [사진 구찌]

구찌가 음력 설을 맞아 출시한 호랑이 컬렉션 광고. [사진 구찌]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프라다’도 설 명절을 맞아 ‘호랑이해의 행동’ 캠페인을 선보였다. 붉은색과 검은색, 흰색을 주조로 화려한 무늬가 더해진 의상들에는 호랑이 심볼을 넣은 프라다 로고가 더해졌다. 프랑스 ‘발렌시아가’는 호피 무늬를 활용한 재치 있는 컬렉션을 발표했다. 주황색 호피 줄무늬가 들어간 재킷과 스웨터, 드레스부터 발렌시아가 로고 위에 포효하는 호랑이 실루엣이 더해진 가방과 모자까지 다양하다. 과감한 호피 무늬 옷을 입고 즐거운 설 연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한 광고는 유쾌하다. 이 밖에도 디올·베르사체·마르니·발렌티노·버버리·멀버리 등 호랑이에서 영감 받은 한정판 제품들을 출시했다.

명품 브랜드는 아니지만 스페인 ‘자라’는 음력설을 맞아 설빔을 발매했다. 한국만을 위해서 전개되는 생활 한복 컬렉션으로 아이들을 위한 조끼와 한복 치마, 복주머니 같은 액세서리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설빔을 연상시키는 자라의 '해피 뉴 이어' 키즈 컬렉션. [사진 자라]

설빔을 연상시키는 자라의 '해피 뉴 이어' 키즈 컬렉션. [사진 자라]

십이 간지 챙기는 명품 브랜드, 왜?

지난해 흰 소부터 올해의 검은 호랑이까지. 열두 해를 기준으로 돌아가는 상징적 동물들로 새로운 해를 기념하는 동양적 풍습이 왜 서구 명품 브랜드에 영향을 준 것일까. 그것도 구색 맞추기 식이 아니라, 아주 성대하게 기념하면서까지 말이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는 11일 음력설을 기념하는 캡슐 컬렉션을 내면서 중국 만리장성에 대형 디지털 화면을 설치했다. 거대한 옥외 광고인 셈이다.

만리장성에 깔린 대형 디지털 화면에 브랜드의 이름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이 교차한다. [사진 보테가 베네타]

만리장성에 깔린 대형 디지털 화면에 브랜드의 이름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이 교차한다. [사진 보테가 베네타]

글로벌 브랜드가 구정 컬렉션을 내는 배경엔 무시할 수 없는 아시아 명품 시장의 규모가 있다. 글로벌 경영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에 따르면 중국 등 아시아 소비자는 전 세계 명품 소비 성장의 원동력이다. 특히 중국은 2025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명품 시장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명품 시장이 축소됐던 지난해에도 2020년 대비 무려 36%로 플러스 성장을 이룬 유일한 지역이다. 2021년 추정치 기준 중국 명품 시장 규모는 600억 유로(약 81조 6480억원)로 미국(890억 유로)·유럽(710억 유로)에 이어 3위다. 음력 설 문화를 공유하는 한국·일본 및 아시아권 시장을 모두 합하면 전 세계 명품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가 된다.

호피 무늬를 다양하게 변주한 호랑이 컬렉션을 출시한 발렌시아가. [사진 발렌시아가]

호피 무늬를 다양하게 변주한 호랑이 컬렉션을 출시한 발렌시아가. [사진 발렌시아가]

행여 논란 생길라, ‘착한’ 행보는 덤

다만 그동안 명품 브랜드의 중국 광고 잔혹사를 경험삼아 서양 브랜드의 동양 문화 활용 이벤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쌍꺼풀 없는 길고 가는 눈매의 여성 모델을 내세워 중국 비하에 휩싸인 ‘디올’이나, 젓가락으로 피자를 먹는 광고로 브랜드 퇴출 위기에까지 몰렸던 ‘돌체앤가바나’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국 ‘버버리’는 지난 2019년 중국에서 설맞이 대가족 화보를 선보였다가 모델들의 표정이 우울해 보인다는 이유로 온라인에서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버버리는 중국에서 설 맞이 화보를 공개했다가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됐다. [사진 핀터레스트 캡처]

버버리는 중국에서 설 맞이 화보를 공개했다가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됐다. [사진 핀터레스트 캡처]

그래서일까, 올해는 유난히 조심스럽고도 착한 행보가 눈에 띈다. 프라다는 음력설 캡슐 컬렉션보다 ‘호랑이해의 행동’이라는 캠페인에 더 방점을 찍었다. 멸종 위기종인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 재단에 기부하고, 전 세계 30세 미만의 예술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호랑이를 주제로 작품을 공모하는 특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보테가베네타도 만리장성에 설치물을 만들면서 만리장성 동쪽 끝 산하이(Shanhai) 고개의 보수 및 유지를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주로 서양 모델보다는 아시아 모델을 활용하는 것도 특징이다.

중국의 배우 춘 샤가 모델로 등장한 프라다의 루나 뉴 이어 컬렉션. [사진 프라다]

중국의 배우 춘 샤가 모델로 등장한 프라다의 루나 뉴 이어 컬렉션. [사진 프라다]

‘보그 비즈니스’는 최근 아시아 지역의 마케팅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어 위험을 피하기 위해 관리 주체를 중국 혹은 APAC(아시아 태평양) 팀으로 옮기는 럭셔리 브랜드가 많다고 보도했다. 국내 한 명품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명품 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만큼 현지 상황에 맞는 마케팅 활동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며 “글로벌 브랜드지만 현지 셀럽을 홍보대사로 활용하고 지역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등의 시도가 일반화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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