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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공급력, 반개방성…경제이론으론 설명 못하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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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중 수교 30년, 다시 보는 중국경제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가까운 톈진 항의 모습. 중국은 2022년 경제 운영 방침을 안정 속 전진으로 확정했다. [신화사=연합뉴스]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가까운 톈진 항의 모습. 중국은 2022년 경제 운영 방침을 안정 속 전진으로 확정했다. [신화사=연합뉴스]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았다. 강산이 세 번 바뀔만한 시간에 중국경제와 양국 경제교류가 이루어낸 성과는 놀랍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 경제규모가 1992년 세계 13위였으나 2010년 일본을 제쳤다. 미국을 넘어 세계 1위가 되는 게 시간문제로 다가온다. 같은 기간 1인당 GDP 세계 순위는 133위에서 64위로 뛰어올랐다. 한·중 경제교류는 매년 가파른 성장을 거듭했다. 30년간 우리나라 전체 수출 규모가 약 8배 늘어난 것도 대단한데, 대중국 수출액은 60배 이상 팽창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세다. 해외 직접투자와 인적 교류도 최근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중국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수교 30주년에 돌이켜보는 지난 장면과 지금의 현상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앞만 보고 달리다 멈추면 주변이 보인다고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과거와 현재의 흐름을 결정지은 일들이 있었다. 미래 방향을 암시하는 일들도 오버랩된다.

중국은 양적 성장의 대명사로 통했다. 우리도, 세계도 모두 중국을 그렇게 보았다. 경제가 발전하면 서구식 정치적 민주화로 이어진다는 게 서방의 단정적 예상이기도 했다. 중국이 한동안 성장하면, 병목에 걸리거나 중진국 함정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어떻게 전개됐나. 중국은 양적인 성장을 하면서도 여러 차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끊임없이 질적 성장을 모색해왔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파고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후 ‘제10차 5개년 계획(10·5 계획, 2001~2005)’ 시기부터 질적 성장으로 전환했다. 내수 확대와 구조조정에 나섰고, 제12차 5개년 규획(12·5 규획) 시기부터는 균형과 조화, 지속 가능한 발전을 표방했다. 지난해 시작된 14·5 규획은 경제산업의 자주화, 디지털 경제, 녹색경제, 쌍순환 전략에 방점을 찍었다. 이런 사이에 GDP 수치 위주의 경제성장률은 해마다 낮춰왔다. 경제가 추락하리라는 ‘경착륙’ 예측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구조조정과 개혁, 성장방식의 전환으로 지금 중국은 충격 없는 ‘롱 랜딩(long landing)’에 가까운 모습이다.

자본주의면서 사회주의인 경제
성장률 하락 ‘경착륙’ 예측에도
성장방식 전환 통해 빠른 복원
이젠 중산층 확대로 혁신 꾀해

앞으로는 첨단기술 기반의 미래 신산업을 핵심으로 한 신(新)경제 요소로 유효수요를 자극하고, 전체 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추진 중이다. 중국이 경제발전 후에는 정치적 민주화로 갈 것이라는 서방의 예측은 하나의 가설로 끝나고 말았다. 중국은 더욱 자본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더욱 사회주의적인 색채도 띠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국가 구조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한 것은 중국 경쟁력의 실체다. 중국은 세계적 규모의 위기 국면에서 늘 빠르고 강한 복원력을 보였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 그랬고,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 그랬다. 최근엔 코로나 19의 충격에서도 가장 빠르게 회복했다. 중국은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면서 역설적으로 세계가 어려울 때 나 홀로 성장하는 모습이었다. 그 이면에는 중국 경제의 특성이 자리 잡고 있다. 무한한 공급능력, 글로벌 시장수요에 대한 긴급 대체 가능성, 그리고 반(半)개방성 등이다. 무한한 공급능력은 전 세계가 중저급 상품에 관한 한 중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중국산 없이 살아보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인류는 중국이 생산한 제품을 사용하며 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이 내다 팔면 값이 떨어지고, 중국이 사면 값이 오른다. 중국이 사지 않으면 팔 데가 마땅치 않고 중국이 팔지 않으면 공급망 대란이 일어나는 상황이 됐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일반 법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반 개방성은 많은 외국 기업들의 원성을 샀지만, 중국 스스로는 외풍에 강한 경제 체질을 다지는데 유효했다. 중국경제와 한·중 경제교류의 양적인 성과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잘 보이지 않는 중요한 흐름이다.

이렇게 중국은 우리가 ‘알 듯 말 듯 한’ 나라가 되어갔다. 이런 모든 변화상은 서방의 경제이론만으로는 더는 설명하기 어렵게 됐다. 중국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만남은 무엇을 남겼는가? 정부의 시장개입이 과도하거나 변덕스러울 경우 발생하는 역효과를 말하는 ‘샤워실의 바보’ 현상은 중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던가? 중국의 제도적 모호성 때문에 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한다는 시각이 있지만, 그 모호성이 과거 오랜 기간에 걸쳐 경영 현장에서는 시장 규모를 키우고 혁신 창업 기업의 성장 동력이 된 측면도 있다.

제도적 차원의 혁신 움직임을 보자. 중국은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해 과거엔 개인과 기업에 보조금을 나눠줬으나 지금은 중산층 확대로 가고 있다. 그 방법론이 이른바 ‘공동부유’다. 모든 사람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사교육과 부동산, 인터넷 기업에 대해 잇따라 고강도 규제정책을 내놓은 건 국민생활과 인구문제에 부담을 주는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차원으로 읽힌다.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은 뿌리기술전문 다국적기업 육성이다. 레노보와 알리바바 같은 기업들이 후보군이다. 과거 세계화의 추종자이자 학습자 역할에 그쳤던 자국 기업들을 발언권과 가격결정권을 가진 규칙 제정자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중국 명문대학들이 창업 요람으로 탈바꿈하는 추세는 칭화대학에서 시작해 이제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문과 중점인 베이징대학은 스타트업 대학기업을 만들어 연간 매출액 14조 원의 수익을 올린다. 경제·경영학이 강한 상하이 푸단대학은 다국적기업과의 관계를 다지고 있다.

서방의 주류 경제학을 학습하면서 개혁개방 시대를 맞았던 중국 학계가 꾸준하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 증권사 연구소들은 서방의 거시경제와 미시경제의 중간 지점 즉 국가와 개인의 연결 부분인 기업 영역을 대상으로 ‘중시(中視, meso)’라는 경제 개념을 활용하고 있다. 학계는 사회주의 이념의 특수성으로서 정치경제학적 연구에 집중해왔는데 ‘동방경제학’이란 새로운 연구 영역도 자리 잡아가고 있다. 공자와 맹자의 경제사상에서 출발해 마르크스 이론과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의 개혁과 시진핑 시대를 연결하는 이론화 작업이다. 최근엔 중국이 균형발전을 위한 도시군 육성 전략에 나서면서 ‘공간정치경제학(spatial political economics)’이라는 세부 분야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정치경제학과 기업관리학을 공부한 필자의 눈에는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쓰려는 채비로 해석된다.

앞으로 30년 협력 틀은 ‘다름과 어울림’의 구조돼야

교류와 협력은 상대가 있는 만큼 어느 한쪽의 희망 사항만을 반영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세계적인 조류와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 수교 당시와 비교할 때 지금의 중국은 체급이 달라졌다. 더 큰 변화는 경제 성장모델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바꿔왔다는 점이다.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은 이제 교류 협력의 틀을 새롭게 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30년의 특징은 일본을 선두로 하고 한국과 아시아 신흥강국-중국-동남아 순으로 발전하는 동아시아 ‘기러기 대형’ 이었다. 중국은 한국의 기술과 투자·상품이 필요했다. 이제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고 새로운 해외 협력수요가 절실한 시점이 됐다. 한국은 세계 경제의 재편과 공급망 위기, 중국의 급부상, 미·중 장기적 갈등에 놓여있다. 다가올 30년 협력의 기본 틀로 ‘다름과 어울림’의 구조가 필요하다.

‘다름과 어울림’은 세계 경제의 추세적 변화인 다자간 관계 강화에 기반을 둔 양자 교류 확대다. 한국과 중국은 이제까지의 교류 경험을 통해 서로 무엇이 다른지 알게 됐다. 각기 내수시장 규모가 작거나 구조가 취약해 해외 협력의 범위를 최대한 넓혀야 하는 공동의 과제도 안고 있다. 중국의 경우엔 자유무역협정 체결 때 양자 협정보다는 다자 협정에 더 관심을 두기도 한다. 앞으로 양국은 다자 구조의 틀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강화하는 게 마찰을 줄이고 시장 기회를 확대하는 길이다.

안전판도 든든하게 정비해야 한다. 대중에게는 생소하기까지 한 화공 약품이 전체 산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국도 중국도 겪은 바 있다. “목에 걸리는 것은 소뼈가 아니고 생선 가시”라고 한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중국은 2010년부터 11년 연속 제조업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한다. 지난해 전 세계 철광석의 59%, 석탄의 54%를 중국이 소모했다. 대두와 석유는 각각 33%와 16%다. GDP 규모는 세계의 17.4%인데, 탄소 배출량은 30%를 넘어선다. 이 모든 요소는 언제라도 중국 경제에 부메랑이 될 수 있고, 한국에는 공급망 충격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양국 간 대화 채널을 확대하고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한·중 경제교류 협력은 더는 성장 속도와 규모를 척도로 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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