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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입구 임산부 “접종 안한 게 죄냐, 아이 우유 어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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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방역패스 적용 첫날인 10일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입장 확인을 하고 있다. 백화점 등 대규모 상점의 방역패스 의무화는 오는 16일까지 계도기간으로 운영된다. [연합뉴스]

방역패스 적용 첫날인 10일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입장 확인을 하고 있다. 백화점 등 대규모 상점의 방역패스 의무화는 오는 16일까지 계도기간으로 운영된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의 한 대형마트 입구에서 만난 최나래(37)씨는 임신 8개월이다. 최씨는 이날 첫째인 다섯 살 아들에게 먹일 우유와 딸기 등을 사러 마트를 찾았다가 마음이 상했다. 방역패스 시행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 마트에 들어갈 수 없어서다. 최씨는 “임신이나 수유 중에는 아무리 아파도 아기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돼 감기약 한 알 먹지 않고 끙끙 앓으며 버틴다”며 “백신을 맞지 않은 게 아니라 못 맞는 것인데 갑자기 장도 볼 수 없는 죄인이 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 압구정동의 한 백화점 입구에선 70대 노인 고객이 보안요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QR코드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객이 인쇄한 접종확인서까지 꺼내 보여줬지만 2차 접종 후 6개월이 지나서다.

대형마트·백화점 등 대형 점포에 방역패스 의무 적용을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임신이나 기저질환, 백신 부작용 등으로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하면 아예 이런 시설에 출입할 수 없어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0일부터 방역패스 의무 적용 대상에 면적 3000㎡ 이상 마트, 농수산물유통센터, 백화점, 쇼핑몰, 서점 등 대규모 상점이 추가된다.

방역패스 적용 시설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방역패스 적용 시설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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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을 줄이기 위한 일주일의 계도기간을 거쳐 17일부터는 해당 시설은 물론 개인에게도 과태료가 부과된다. 개인은 위반 횟수별로 10만원, 시설은 횟수에 따라 150만원(1회)에서 300만원(2회 이상)의 과태료와 운영 중단 10일(1회)에서 3개월(3회), 폐쇄(4회) 조치까지 받을 수 있다. 대형마트 등을 이용하려면 백신 2차 접종 완료(6개월 이내) 사실을 QR코드나 접종확인서로 인증해야 한다. 혹은 보건소에서 받은 PCR음성확인서(48시간 이내)를 보여줘야 한다.

2차 접종 후 6개월이 지났거나 임신·기저질환·백신 부작용 등으로 인한 미접종자를 중심으로 “기본권 침해”라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사는 박경순(57)씨는 “미국에선 도시 전체를 봉쇄할 때도 거리두기를 지켜가며 마트 문은 연다”며 “생필품을 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임산부(지난달 9일 기준)는 1175명에 불과하다. 전체 임신부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방역패스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방역패스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서다. 고용 불안 우려 때문이다. 만 18세 이하도 예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방역 때문이라면서 마트에서 일해도 되고 쇼핑은 하면 안 된다니 무슨 호랑이 풀 뜯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글이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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