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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수탁위로 대표소송 일원화에 재계 “기업 벌주기. 전면 재검토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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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열린 제7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위원들이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열린 제7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위원들이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이 주주 대표소송의 결정을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로 일원화하고, 소송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방안에 대해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등 재계 7개 단체는 10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추진하는 ‘수탁자책임 활동지침’ 개정안은 주주가치와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등을 명분으로 ‘기업 벌주기’에 몰두하는 행태”라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성명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소기업중앙회·코스닥협회 등이 참여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대표소송 추진과 관련한 수탁자책임 활동지침 개정안을 상정했다.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결정 주체를 수탁위로 하고, 올해부터 대표소송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방침에서다. 그동안 대표소송 결정은 원칙적으로 기금운용본부가 맡고, 예외적 사안에 대해서만 수탁위가 판단해 왔다. 개정안은 다음 달 운용위 회의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단체들은 대표소송이 국민과 기업, 주주 모두에게 불이익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전체 연금보험료의 42%를 순수 부담하고 있는 기업들은 당장 국민연금 대표소송의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되는데도 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경제계의 의견 수렴조차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표소송은 그 결과와 무관하게 기업의 신뢰도와 평판에 큰 타격을 주며, 기업이 승소해도 기업 가치의 원상회복이 불가하다”며 “결국 기금 수익률이 하락해 가입자인 국민·주주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기업은 약 300곳이다. 재계 관계자는 “상장사의 경우 주식의 0.01% 이상, 일반 법인은 1% 이상만 갖고 있으면 대표소송이 가능하다”며 “기업의 모든 판단이 소송 대상이 될 수 있어 경영진은 소송의 공포 속에서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민의 노후 자금을 책임지는 국부펀드가 자국 기업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선례를 찾기 힘들다”며 “수탁위의 전문성과 중립성을 신뢰할 수 없는데도 이들을 견제할 수단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제단체들은 기본적으로 수익률 등 기금운용에 대해 최종 책임을 지는 기금운용본부가 대표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이다.

이어 국민연금 대표소송에 대한 법적 근거와 절차·결정 권한 등 주요사항을 ‘국민연금법’ 등 관련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민연금이 국내 기업의 상당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정치·사회적 압박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고의적인 불법 행위처럼 소송 대상이 제한되고, 실익을 검증할 장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주주 가치를 내세워 주요 기업에 소송을 남발하는 것은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데 역행하는 행위”라며 “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경제계·유관부처 등과 충분히 협의해 신중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탁위는 추천기관이 달라도 결국 정부가 위촉한 위원들”이라며 “대한항공 등의 사례를 볼 때 이들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국민 정서 등 ‘외부 요인’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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