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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반대에도…대선 앞두고 노동이사제 입법 ‘급가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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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노동이사제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을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지난 8일 안건조정위원회 신청, 여당 위원 추천에 나서는 등 급가속 중이다.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노동기본권 강화와 연내 노동입법 관철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한국노총 조합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노동기본권 강화와 연내 노동입법 관철을 위한 결의대회'에서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2일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현실적으로 야당이 반대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을 통해서라도 신속하게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선대위에서 최우선 과제로 삼아 처리해주시면 고맙겠다”고 발언한 이후 관련 입법 절차에 속도가 붙었다. “이재명표 하명법”(박형수 국민의힘 의원)이란 야당 비판, “즉시 중단하라”는 경제계 반발에도 거침이 없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 1~2명이 경영과 관련한 의사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제도다. 독일에서 시작해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다. 노동이사제 국내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여당ㆍ노동계와 야당ㆍ재계 입장은 찬반으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여당과 노동계는 기획재정부에 쏠려있는 공공기관 운영 권한의 분산, 방만 경영 위험 감시, 독립성과 공공성 강화 등을 위해서라도 노동이사제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14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서울 여의도에서 결의 대회를 열고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즉각 실시, 연내 입법”에 힘을 실었다.

반면 야당과 재계는 여당이 제대로 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노동단체 표를 의식해 입법 독주에 나선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8일 대한상공회의소ㆍ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5개 경제단체는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 도입을 위한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 의결 추진을 즉시 중단하고, 노동이사제의 도입이 초래할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게 재검토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공동 입장문을 냈다. 노동이사제로 ▶노사관계 힘의 불균형 심화 ▶이사회 기능의 왜곡 및 경영상 의사 결정의 신속성 저하 ▶공공기관의 방만 운영과 도덕적 해이 조장 등이 우려된다는 내용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가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한국노총-이재명 후보 정책간담회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오른쪽)가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서 열린 한국노총-이재명 후보 정책간담회에서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선 노동이사제가 기업 내 노동자 권익, 공공성, 경영 투명성 향상을 위한 장치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국영기업, 유한회사, 공공조직 비중이 큰 이들 국가와 달리 주식회사가 대부분인 한국에 단순히 적용하긴 어렵다고 경제단체는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여당은 “민간기업이 아닌 공공기관에만 적용되는 법안”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재계 시각은 다르다. 공공기관 도입이 민간기업 적용을 위한 첫 단추라고 보고 있다. 이렇게 판단하는 이유가 있다.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들고 나왔던 공약이다. 당시 민주당 대선정책 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를 보면 “공공부문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후 민간기업으로 확산”한다고 돼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단체교섭권을 가진 노동조합의 대표가 이사진과 같은 발언권을 갖게 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과잉 권한 문제, 영업 비밀 누설의 위험, 민간으로 확대 시행 시 발생할 수 있는 주주 불만 등 여러 부작용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형 노동이사제는 어떤 형태가 맞을지에 대한 다각도의 해외 사례 연구, 이해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폭넓은 의견 수렴이 우선이란 지적이다. 노동이사로 선임될 노동자 대표에 대한 경영ㆍ법률 교육 진행, 비밀 준수 의무에 규정 명확화, 이사회가 노사 투쟁의 장으로 변질하지 않도록 할 이해 충돌 방지 등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한국 공기업은 ‘신의 직장’이라 불릴 정도로 특권을 갖고 있다 평가받고 있고, 급여도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공공부문과 비교했을 때 최상위 수준”이라며 “이런 부분에 대해 더 혜택을 주는 입법을 이해 관계자 의견 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고 서두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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