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평화상 받은 고르바초프의 업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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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사고」 외교로 동서냉전 종식/85년 집권이래 개혁ㆍ화해 추구/통독ㆍ동구민주화 결정적 역할/국내선 연방붕괴ㆍ경제위기로 곤경에
85년 집권이래 일관되게 추구해온 그의 대내 개혁정책과 대외화해 자세로 인해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올해 노벨평화상은 이미 예상돼온 일이다.
그는 ▲소련사회에 획기적인 정치변혁을 몰고왔으며 ▲동유럽의 개혁을 주도했고 ▲냉전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사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실시하지 않았다면,그리고 외교에 있어 「신사고」를 강조하지 않았다면 ▲독일의 통일이나 ▲바출라프 하벨의 체코 대통령 당선으로 상징되는 동유럽의 민주화 ▲이념의 장벽을 뛰어넘는 경제개혁 ▲체제를 달리하는 한국과 소련간의 외교관계 수립 등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들어 노벨상위원회는 『고르바초프가 급박한 세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말하고 『그가 소련사회에 도입한 개방성은 국제적 신뢰촉진에 기여했다』고 노벨상 수여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세계가 이와 같은 고르바초프의 업적들을 칭송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현재 경제적 붕괴와 정치적 혼돈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스탈린과 브레즈네프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정치적 자유를 소련 사회에 도입시켰지만 그의 인기도는 소련 내부에서는 식량부족,민족분규,경제현대화를 향한 진통 등으로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은 『고르바초프의 노벨상 수상은 좋은 일이나 우유를 마실 수 없는 상황에서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냉담한 반응이 나오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 85년 3월 집권한 이래 그는 여덟 차례에 걸쳐 미소 정상회담을 갖고 ▲중거리핵전력(INF) 폐기협정의 체결을 비롯한 군축 ▲아프간 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통한 아프간 내전의 종식 ▲페르시아만사태에서 전통적인 우방인 이라크를 비난하는 국제여론에의 동승 등 일관된 평화의 이미지를 보여왔고 이를 통해 20세기를 대결의 세기에서 평화의 세기로 전환시키는데 중요한 기여를 해왔다.
89년 헝가리ㆍ폴란드 사태를 시발로 체코슬로바키아ㆍ루마니아ㆍ동독이 혼란과 개혁의 와중에서 탈공산화와 국가의 소멸에까지도 이르렀지만 그는 이러한 격변의 기간동안에도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틀 안에서 일관되게 군축협상을 실시해 오는 11월 재래식무기 감축협정체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의 노벨상 수상소식에 『역대 수상자중 최고의 적격자』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고 노벨평화상의 수상이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정책의 중요성을 반영한 것』이라는 소감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벨상위원회의 견해대로 고르바초프의 공헌은 이전까지의 수상자들의 업적이 주로 개인의 양심과 인류의 자존심 고양 등에 있었다면 그의 공헌은 이데올로기ㆍ역사ㆍ문화적 갈등으로 점철된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하려는 세계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은 소련인으로서는 1975년 물리학자 사하로프박사가 인권운동으로 수상한 데 이어 두번째이며 공산권 국가 지도자로서는 처음이며 강대국 국가지도자로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우드로 윌슨 대통령에 이어 세번째다.
1931년 3월 러시아 남부의 농업도시 스타브로폴에서 태어나 79년 소련공산당 농업담당서기,80년 정치국원,85년 당서기장을 거쳐 89년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현재 부인 라이사여사와의 사이에 세딸을 두고 있으며 취미는 독서,영화 및 음악감상 등으로 알려져 있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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