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심화한 ‘문송합니다’…문과 전공 취업만 더 힘들어졌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04 15:15

업데이트 2022.01.04 15:44

수도권 4년제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3년째 입사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B(30)씨. 벌써 수십차례 입사 시험에서 낙방한 그는 최근 취업 공고를 볼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다. 정보기술(IT) 개발자 등 이공계 전공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해서다. 그렇다고 그동안 준비해 온 문과 직무 관련 자격증과 경력을 이제 와서 이공계로 바꿀 수도 없다. 그는 “국비 지원 교육이나 취업 연계 프로그램에는 ITㆍ프로그래밍 등 이공계 직무가 많아 문과 직무에 맞는 경력을 쌓을 기회도 적다”며 “고교 시절 나를 다시 만난다면 이과로 가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문과계열 전공자의 취업 절벽이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업 한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열린 채용시장에선 이공계열 전공자에게 주로 자리가 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4일 통계청의 ‘전공계열별 경제활동인구’ 자료에 따르면 12개 주요 전공 가운데, 지난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2019년 상반기 대비 취업자 수가 줄어든 전공은  ▶인문학 ▶사회과학ㆍ언론정보학 ▶경영ㆍ행정ㆍ법학 등 3개였다. 대표적인 문과계열로 분류되는 전공들이다. 구체적으로 인문학 전공 취업자는 지난해 1분기 2년 새 2.4%(2만7700명) 줄었고, 사회과학ㆍ언론ㆍ정보학은 1.5%(8600명), 경영ㆍ행정ㆍ법학은 0.1%(1600명) 각각 감소했다.

전공계열별 취업자 증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공계열별 취업자 증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반면 ▶교육 ▶예술 ▶자연과학ㆍ수학ㆍ통계학 ▶정보통신기술 ▶공학ㆍ제조ㆍ건설 ▶농림어업ㆍ수의학 ▶보건 ▶복지 ▶서비스 등 나머지 9개 전공은 모두 취업자 수가 늘었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경제활동 확산으로 IT 인력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 정보통신기술 전공 취업자가 2년 새 24%(9만800명)나 늘었다. 고령화 등에 따른 복지 확대로 복지 전공 취업자도 19.1%(8만6200명) 증가했다. 공학ㆍ제조ㆍ건설 전공 취업자는 0.4%(1만32200명) 늘어 상대적으로 증가 폭이 작았지만, 고용률은 81.9%로 12개 전공 가운데 가장 높았다.

전반적으로 이공계열보다는 문과계열 전공자의 취업문이 좁아지는 현상은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표한 ‘2020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취업통계’에서도 나타난다. 2020년 말 기준으로 대학ㆍ일반대학원 졸업자(2019년 8월, 2020년 2월 졸업)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년 대비 취업률 변화를 보면 자연계열(-1.5%포인트), 공학계열(-2.2%포인트)에 비해 인문 계열(-2.7%포인트), 사회 계열(-2.5%포인트)의 하락 폭이 더 컸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대학생ㆍ구직자 총 725명을 대상으로 ‘전공별 구직 체감률’에 대해 설문 조사에서도 ‘취업하기 매우 어렵다’는 응답은 문과 출신(53.2%)이 이과 출신(38.1%)보다 많았다. 정연우 인크루트 홍보팀장은 “취업준비생의 선호도가 높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이젠 디지털 역량이 필수 스펙으로 자리 잡았다”며 “그러다 보니 문과 전공자들은 이젠 토익학원뿐만 아니라 IT 자격증이나 코딩을 가르치는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전공계열별 취업 난이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전공계열별 취업 난이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문과-이공계 간의 고용 격차는 취업시장에서 ITㆍ소프트웨어(SW) 중심의 이공계 선호가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회 전반적으로는 구직난이 여전하지만, 기업의 IT 인재 찾기는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고, 비대면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IT에 대한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존 전통 산업에서 IT 활용이 늘고, 플랫폼을 개발ㆍ운영할 인력이 많이 필요해진 점도 문과 전공자의 설 자리를 좁히고 있다. 문과 전공자의 보루로 여겨졌던 은행권 공채가 줄어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ㆍNH농협은행)의 지난해 정기공채 규모는 1382명으로 2018년(2584명)과 2019년(2158명)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대신 디지털ㆍITㆍ데이터 부문을 뽑는 수시 채용은 늘었다. 신한은행이 채용 인재상을 ‘디지털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로 정의하는 등 공채를 진행하더라도 디지털 역량을 갖춘 이들을 우대한다.

기존 전통산업서도 문과는 홀대 분위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기술 분야 제조 대기업의 마케팅ㆍ영업 인력도 이공계 출신이 많아지는 추세다. 첨단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이해가 필수적인 데다, 이왕이면 웹 개발 등이 가능한 인재를 뽑으려고 해서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인사ㆍ마케팅 분야에서 데이터를 활용하고, 회계ㆍ재무분야에선 SW 사용이 일반화하는 등 인문계 전공의 전유물이었던 분야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이공계 인력의 활용 폭이 예전보다 넓어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주요 취업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사막에서 바늘 찾는 심정으로 일자리를 구하려는 문과 전공자들의 하소연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네이버의 한 취업 정보 카페에 “문과 출신에 자격증도 따고 취업을 준비했는데 경쟁률이 하늘을 뚫을 정도라 정말 어려웠다. 결국 경력과 학력 다 버리고 이공계 현장직으로 취업했다”는 내용의 게시글에는 ‘역시 이과가 답이다’,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를 줄인 말)하면 희망이 없나요’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일자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대학 입학생이 이공계로 쏠리고 있어서, 문과-이공계 간의 고용 격차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 교수는 “단순히 공공부문 취업을 늘리는 식으로는 이런 격차를 해소하지 못한다”며 “대학 교육에서 학생들이 전공을 넘나들면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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