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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제2 군함도’ 우려되는 일본 사도 문화유산 등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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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이 일본 문화심의회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됐다. 사도 광산 일부인 도유(道遊)갱 내부 모습. [교도=연합뉴스]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佐渡)광산이 일본 문화심의회의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추천 후보로 선정됐다. 사도 광산 일부인 도유(道遊)갱 내부 모습. [교도=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사도(佐渡)광산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을 위한 후보로 선정했다. 내년 2월 1일 이전에 정식으로 신청 자료를 접수시키고 2023년 유네스코의 심사를 통과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일본 정부가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 동원이란 역사적 사실을 끝까지 도외시한다면 6년 전 유사한 갈등을 빚었던 하시마(일명 군함도) 논란이 재연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가뜩이나 사상 최악의 상태인 한·일 관계에 새로운 악재를 보태는 격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일본은 사도광산의 유산 등재 범위가 조선시대 중후반에 해당하는 에도(江戶)시대로 한정되기 때문에 논란이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사도광산은 17세기 세계 최대의 금광이었으며 전통 수공업 방식의 광업 기술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엄정한 판단은 유네스코가 내릴 몫이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를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일본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인증받고 세계적 기념물이자 관광자원으로 삼으려는 바로 그 장소에서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 1000여 명이 가혹한 강제 노역에 시달렸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은 메이지(明治)시대(1867∼1912)의 산업유산으로 인증받았던 군함도 등재 때와 흡사하다. 당시 일본은 유네스코 심사 과정에서 군함도 관련 전시 시설에 조선인 강제 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은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지난해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물에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고 기술했다. 올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강한 유감을 표시한다”며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결의가 채택됐지만 일본은 요지부동이다.

사도 광산 위치

사도 광산 위치

이런 경위를 생각하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등재 추진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인 동시에 일본의 자업자득이다. 홋카이도·규슈 등 일본 곳곳의 광산과 군수시설, 도로·철도 등의 난공사 현장에는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피와 한이 맺혀 있다. 이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는 물론 다시 한번 아픔을 주는 행위를 일본은 자제해야 한다. 그것은 한국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을 둘러싼 법리적·외교적 논쟁에 앞서는 인도적·도의적 차원의 문제다. 만일 일본이 군함도 등재 때 한 약속을 지켰더라면 한·일 양국이 절충점을 찾아내고 갈등을 극복한 선례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일본은 우선 군함도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아울러 한·일 외교 당국은 지혜를 모아 현명한 해결 방안을 찾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