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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왕의 전속 사진사 "날 고용한 백만장자, 만나보니 동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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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침대에서 자는 모습. 에드가 히메네즈가 찍은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끝에 앉아 있는 여인은 파블로의 형 로베르토 에스코바르의 아내다. [유튜브 캡처]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침대에서 자는 모습. 에드가 히메네즈가 찍은 가장 유명한 사진으로, 끝에 앉아 있는 여인은 파블로의 형 로베르토 에스코바르의 아내다. [유튜브 캡처]

콜롬비아 메데인의 사진작가 에드가 히메네즈(72)는 41년 전 어느 날 전속 사진사를 찾는 고객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랐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인공호수 30개와 전 세계의 동물들이 있는 약 3만㎡ 부동산을 소유한 백만장자’라는 그 고객이 바로 고등학교 동창 파블로 에스코바르였기 때문이다. 지난 1993년 사망하기 전까지 마약왕으로 이름을 떨친 그는 15년 만에 만난 친구를 바로 알아보고는 “너무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했다. 히메네즈는 그렇게 마약왕의 전속 사진사가 됐다.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전속 사진사였던 에드가 히메네즈(72). 다음달 에스코바르의 사진을 담은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유튜브 캡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전속 사진사였던 에드가 히메네즈(72). 다음달 에스코바르의 사진을 담은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유튜브 캡처]

히메네즈는 10년 넘게 마약왕의 전속 사진사로, 그의 결혼식이나 생일잔치 같은 특별한 날과 평범한 일상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에스코바르가 세상을 떠난 지 28년이 지났지만, 메데인에선 콜롬비아를 공포에 빠뜨렸던 마약왕의 평가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히메네즈는 ‘메데인이 배출한 거물’ 에스코바르의 양면성을 입체적으로 말해주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전속 사진사 에드가 히메네즈(72)가 찍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운데). [유튜브 캡처]

전속 사진사 에드가 히메네즈(72)가 찍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운데). [유튜브 캡처]

메데인은 80~90년대 세계 최악의 범죄 도시였다. 1991년에만 살인 사건이 6000건에 달했다. 최근 범죄율은 많이 낮아졌지만, 에스코바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정교한 조직범죄의 창시자로 여전히 악명을 남기고 있다. 히메네즈는 WP에 “에스코바르가 남긴 유산은 재앙”이면서도 “메데인 카르텔의 역사를 지우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범죄도 그 역사의 일부”라면서다. 그의 기억엔 총격과 폭력의 두려움에 떨던 이들과 에스코바르의 도움으로 가난에서 탈출한 빈민들이 혼재한다.

“에스코바르는 시대의 기록”

히메네즈는 에스코바르 전속 사진가로서의 삶과 사진을 담은 책을 다음 달 출간할 예정이다. 언론인 알폰소 부이트라고는 “(히메네즈가 찍은 사진은) 마치 에스코바르가 쓴 일기 같다”고 했다. 에스코바르는 왜 전속 사진사를 고용했을까. 히메네즈는 “그의 허영심과 그가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번 책에 대해선 “시대의 기록”이라고 했다. “에스코바르의 일상은 코카인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수익화되고 폭력적인 산업이 됐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다.

둘이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다. 히메네즈의 부모는 택시운전사와 재봉사였고, 에스코바르의 부모는 농부와 교사였다. 형제도 각각 6명씩 있었다. 학창 시절 에스코바르는 강렬하진 않았다고 한다. 당시 친구들 몇몇은 에스코바르와 친구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만, 에스코바르는 히메네즈를 사진사 이상으로 대했다. 그가 지불한 촬영비는 일반 수준의 3배가 넘었고, 가족 모임에 히메네즈를 초대해 메인 테이블에서 함께 파티를 즐겼다. 종종 축구 시합도 했다. 히메네즈는 “나는 에스코바르를 감히 쓰러뜨릴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었다”고 했다.

지역에선 이미 유명인사인 히메네즈에겐 늘 단골처럼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에스코바르는 좋은 사람인가요, 나쁜 사람인가요?” 그는 “메데인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남자의 더 완벽한 초상화를 보여주기 위해 사진을 공개했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 했다. 그는 마약왕을 찍었던 그 시절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에스코바르가 똑같은 요청을 다시 해도 그는 응할 것이라고 했다. “저는 사진작가입니다. 나를 고용한다면 (누구에게든지)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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