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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약당국, 50년 마약과의 전쟁서 밀매조직에 '판정패'

중앙일보

입력

넷플릭스 자체제작 드라마인 '나르코스(NARCOS)'는 1970~80년대 주로 활동한 콜롬비아 마약 조직 '메데인 카르텔'과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인 NARCOS는 마약 밀매자를 뜻하는 스페인어 'Narcotraficante'의 줄임말 NARCO의 복수형이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자체제작 드라마인 '나르코스(NARCOS)'는 1970~80년대 주로 활동한 콜롬비아 마약 조직 '메데인 카르텔'과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목인 NARCOS는 마약 밀매자를 뜻하는 스페인어 'Narcotraficante'의 줄임말 NARCO의 복수형이다. [사진 넷플릭스]

2015년 8월부터 현재까지 방영되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나르코스’는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과 이들을 추적하는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 스티븐 머피, 하비에르 페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극 중 등장하는 마약 조직인 ‘메데인 카르텔’과 그 설립자인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실존 인물로 1970~80년대 마약을 대량으로 생산·가공·판매해 당시 전세계 마약 시장의 약 70%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앨라배마대 등 미 연구진 분석결과 #마약 환승지대 '공급 차단' 효과 없어 #유입루트 저지할수록 우회 '풍선효과' #마약조직 활동범위, 20년새 3.5배로 #"공급 아닌 건강·인권 위주 정책 필요"

미국 정부는 이들 조직이 코카인 등 마약을 국내로 유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DEA 요원을 남미에 파견, 현장에서 마약밀매 조직을 소탕하고 공급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같은 노력은 특히 1971년 닉슨 행정부가 마약 남용을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후 더욱 강화됐다. 이에 따라 1971년 이후 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 매년 50억 달러(약 5조 7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DEA 요원인 스티븐 머피(오른쪽)와 하비에르 페냐는 콜롬비아 현지에서 마약 조직의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암약한다. 국토의 대부분이 밀림인 콜롬비아의 특성상, 마약 조직은 밀림 내에서 마약을 제작ㆍ운송했다. [사진 넷플릭스]

DEA 요원인 스티븐 머피(오른쪽)와 하비에르 페냐는 콜롬비아 현지에서 마약 조직의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암약한다. 국토의 대부분이 밀림인 콜롬비아의 특성상, 마약 조직은 밀림 내에서 마약을 제작ㆍ운송했다. [사진 넷플릭스]

DEA 요원인 머피와 페냐를 비롯한 미국 마약 당국의 노력은 효과가 있었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사이언스 얼러트’를 비롯한 미국 과학전문지는 6일(현지시각) 니콜라스 매글리오카 미국 앨라배마대 지리학과 교수 연구진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지난 50년간 미국 정부는 국제 마약밀매 조직과 벌여온 전쟁에서 ‘판정패’했다고 보도했다. 연구진이 중앙아메리카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 밀수 경로 등을 모델링한 ‘나르코로직(NarcoLogic)’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로, 마약 밀수 루트가 명시적으로 모델링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됐다.

연구를 진행한 니콜라스 교수는 “마약의 공급만을 차단하는 방식의 대응 전략은 사실상 효과가 없으며, 최악의 경우 오히려 마약 밀수를 부추긴다”고 밝혔다. 마약 밀수 경로를 저지할수록 마약 조직은 더 유연하게 움직여 새로운 루트를 찾아내며 이 때문에 이들 조직의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져 ‘풍선 효과’를 유발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실제로 마약 조직의 활동 반경을 지리적으로 분석한 결과, 1996년 약 500만㎢였던 활동 범위는 2017년 약 1800만㎢로 약 3.5배나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 아메리카의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하는 마약 유입경로를 시뮬레이션해 실제와 비교한 것. 미국 마약 당국의 규제와 무관하게 남에서 북으로 주요 거점을 통해 마약 경로가 계속해서 우회됐다. 연구진은 이것이 마약 조직의 적응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그래픽제공=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중앙 아메리카의 남부에서 북부로 이동하는 마약 유입경로를 시뮬레이션해 실제와 비교한 것. 미국 마약 당국의 규제와 무관하게 남에서 북으로 주요 거점을 통해 마약 경로가 계속해서 우회됐다. 연구진은 이것이 마약 조직의 적응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그래픽제공=미국립과학원회보(PNAS)]

마약 공급이 줄어들지 않자 가격 통제도 사실상 효과가 없었다.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한 데이비드 래설 미국 오리건주립대 교수는 “1980년 이후 미국의 코카인 도매가는 오히려 크게 하락했으며, 이에 따라 코카인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카인 수송을 막는 마약 당국의 대응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게 데이비드 교수의 설명이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연구진은 연간 대(對) 마약 핵심 예산인 47억 달러(약 5조 3486억원) 중 18%에 해당하는 약 9600억원을 현지 공급차단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약 유입의 ‘환승 지대’로 불리는 온두라스·과테말라 등 미국 외 국가에서 마약 작물을 재배하지 못하게 하는 등 예방 정책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이같은 연구결과는 무분별한 미국의 마약 소탕전쟁이 수많은 사람을 전과자로 만들어 빈민층을 양산, 오히려 마약 근절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비판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약정책연합(DPA)을 비롯한 미국 내 시민단체는 2016년 국제연합(UN)에 서신을 보내 “마약 정책을 처벌보다 건강과 인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기존 마약 관련 사법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구진 역시 “마약 공급 루트는 저지할수록 네트워크를 키워 남미에서 북반구로 이동할 것”이라며 새로운 마약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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