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계급장 떼고 배운다…MZ세대 ‘리버스 멘토링’ 공기관도 확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0월 발전 공기업인 한국동서발전에서는 그 전에 볼 수 없던 광경이 펼쳐졌다. 20ㆍ30대 MZ세대 직원 36명이 처ㆍ실장 12명을 가르치는 멘토링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3대1로 짝을 이뤄 카페ㆍ캐주얼레스토랑 등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MZ세대의 트렌드ㆍ관심사ㆍ여가생활ㆍ소통팁 등을 전수했다.

멘티(Mentee, 가르침을 받는 사람)로 참여한 김용기 해외사업실장은 “MZ세대와 함께 관심사와 취미활동을 자유롭게 공유하면서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멘토(Mentorㆍ가르침을 주는 사람)로 참여한 20대 직원은 “대화할 기회가 많이 없었던 처장님과 제가 직접 선정한 주제로 허물없이 이야기하면서 거리감이 줄어드는 걸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동서발전은 이 제도를 정례화하기로 했다.

MZ세대 일반사원이 선배 또는 고위 경영진의 멘토가 되어 조언해주는 ‘리버스 멘토링’이 보수적으로 평가받는 공기관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리버스 멘토링은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는 기존 멘토링의 반대개념으로 후배가 선배의 멘토가 되는 것이다. 후배가 주제와 운영방식ㆍ장소 등을 주도적으로 정하고, 선배는 이를 경청한다. 역할을 바꾸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돕고 생각을 공유하는 소통 방식이다.

세대 격차에 따른 업무 스트레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세대 격차에 따른 업무 스트레스.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29일 주요 경제부처에 따르면 중앙부처 가운데선 인사혁신처가 처음으로 리버스 멘토링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우호 인사혁신처장은 물론 국ㆍ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정기적으로 MZ세대 공무원과 소통한다. 과거와 다른 야근ㆍ회식문화, 자유로운 휴가 사용 분위기, 편한 회사 옷차림, 회의ㆍ보고 시스템의 변화 필요성 등 MZ세대의 달라진 인식을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게 인사혁신처의 설명이다.

김 처장은 “일며들다(일에 스며들다), 부캐(부(副)캐릭터. 본래 성격과 다른 또 다른 제2의 자아), 칼퇴근각(정시 퇴근을 예상) 등 MZ세대의 신조어를 배우는 게 낯설기는 했다”면서도 “그러나 이들이 느끼는 공직생활의과 직업관 등을 이해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이어 “공직사회의 수직적ㆍ권위적 조직문화를 수평적ㆍ우호적 소통문화로 혁신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국가보훈처, 전북 완주군청, 군산소방서, 충남 보령 해경, 코레일네트웍스, 캠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여러 공기관이 리버스 멘토링을 시행하고 있다.

리버스 멘토링에 참여하려는 이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리버스 멘토링에 참여하려는 이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리버스 멘토링이란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고(故) 잭 웰치 GE 회장이 1999년 창안한 조직혁신 방법이다. 20년이 지난 요즘 한국에서 리버스 멘토링이 주목 받는 것은 MZ세대 때문이다. 기성세대와 MZ세대는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이 다르다. 그러다보니 MZ세대는 기성세대의 상명하복 문화나 경험담 이야기 등을 ‘꼰대’라고 폄하하고, 기성세대는 MZ세대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자유분방함 등에 대해 ‘개인주의’라고 비판한다. 이는 세대간 반목ㆍ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도 이들을 이해하려는 기성세대의 노력이 시작됐다. 리버스 멘토링은 그 중 한 방법이다. 기업 입장에선 주요 소비자인 젊은 세대를 알아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수 있을뿐만 아니라, MZ세대는 머잖아 해당 조직의 주역이 된다.

인크루트가 직장인 10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리버스 멘토링에 대한 반응은 긍정적(매우 긍정적 12.4%, 대체로 긍정적 60.5%)인 반응이 4분의 3 정도를 차지했다. 긍정적이라는 답변은 M세대(1980~1994년생)가 67.0%, 베이비붐(1955~1963년생)ㆍX세대(1964~1979년생)가 85.1%로 기성세대에서의 긍정 반응이 더 높았다. 정연우 인크루트 홍보팀장은 “설문을 분석하면 M세대는 리버스 멘토링을 세대 간 소통할 기회와 수단으로, 기성세대는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보생명의 ‘리버스 멘토링’에서 허금주(가운데) 전무는 3년차 사원들로 부터 BTS의 ‘다이너마이트’ 안무를 배웠다.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시작한 이 제도는 이제 보수적으로 평가받는 공기관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사진 교보생명]

교보생명의 ‘리버스 멘토링’에서 허금주(가운데) 전무는 3년차 사원들로 부터 BTS의 ‘다이너마이트’ 안무를 배웠다.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시작한 이 제도는 이제 보수적으로 평가받는 공기관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사진 교보생명]

국내에서 주요 대기업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제도는 경영계 전반으로 확산해, 이젠 공기관으로까지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MZ세대가 주요 구성원으로 자리잡으면서 위계질서가 뚜렷한 공기관도 이들 신세대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리버스 멘토링은 전반적인 기업문화를 젊게 하고, 조직에 혁신성과 역동성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다”면서도 “다만 빡빡한 인력구조와 막중한 업무 부담이라는 현실적인 개선 없이, 기성세대에게 ‘젊은 세대를 이해하라’는 식으로 강요하게 된다면 조직문화 개선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