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총과 범죄(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레이전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낸시 여사의 회고록을 보면 그녀는 대통령이 백악관을 비우는 날이면 혼자 잠자리에 들 때 항상 머리맡에 권총을 두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불의와 싸우고 또 자신의 방어를 위해 총을 뽑았던 서부 개척시대의 미국 시민정신이 그녀의 몸 어느 구석에 아직도 살아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자유와 풍요의 나라 미국이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범죄다. 그중에서도 총기류에 의한 살인사건은 날로 증가일로에 있다.
작년 한햇동안 뉴욕시에서만 1천3백여명이 총기에 피살되었으며 워싱턴시에서는 올들어 이미 3백50여명이 피살되었다.
최근 뉴욕타임스지의 조사에 따르면 뉴욕시민의 59%가 가능하다면 다른 도시로 이주하기를 원하고,72%는 뉴욕에서 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 더욱 심각성을 드러낸 것은 응답자의 대다수가 『친근해야 할 이웃이 날이 갈수록 더 무서워진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런 미국의 세태를 반영이나 하듯 얼마전 한 외신은 방탄복을 입고 등교하는 한 국민학교 어린이의 사진을 보도하여 눈길을 끌었다.
대충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총을 휴대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해마다 약 2백만 정도의 권총이 팔려나가고 있다.
81년 레이건 대통령이 한 정신이상자의 피격을 받았을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일반의 총기 소지를 반대하는 여론이 있었다.
「미국국민은 무기를 가지고 자신을 방위할 권리가 있다」는 미국 수정헌법 제2조에 정면으로 도전한 반대론자들은 미국의 총기살인은 총기가 엄격히 규제되는 영국의 1백배,일본의 2백배나 높다고 들고 나왔다. 그러나 찬성론자들은 무차별한 총격 속에서 자신을 방어하고 또 자녀들을 보호하려면 오히려 4백50달러는 값이 싼 투자라고 맞섰다. 결국 반대론자들이 물러서고 말았다.
비록 총기류는 안들었지만 요즘 우리 사회의 범죄는 날이 갈수록 흉포화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범죄와 폭력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겠는가.
이에 따라 전 경찰력의 65%에 총기류를 휴대하도록 했다. 물론 거기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으나 그렇게 해서라도 범죄를 없앨 수 있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