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사에 와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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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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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
하늘이란 하늘이 모두 모여
가장 잘 생긴 햇빛을 고르고 있다.
지난 여름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산들도 나무마다 등을 켜고
한바탕 굿판을 벌이자고 한다.
아무렴 가을은 태평성대
눈물나게 손뼉도 치고 싶고
더덩실 춤 한 자락 깔고 싶다만
이 나라 태평성대 어디 두고
가울만 저 혼자 오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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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력이 있어야 해
저 하늘 한 가운데 솟아있는
백두산 천지가 불을 뿜어야 해
단군 할아버지 버선발로 오신
그날로 다시 돌아가야 해
열성들 모두 잠을 깨우고
줄기줄기 흘려보낸 산과 물
거둬서 새로 나라를 지어야 해
가을이 그냥 왔다 가면 무얼하나
남북 통일 하나 못 시키는데
원력이 있어야 해
내년 가을은 태평성대
나라의 태평성대로 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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