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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곳에서 3차례 난 화재 사고…수상한 붕어빵 공장의 정체 [요지경 보험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지경 보험사기] 

대전 일대 노점상에 붕어빵 반죽 등 재료를 공급하는 A(47)씨의 공장에서는 2018년 이후 3차례 불이 났다. 겨울을 지나 날씨가 풀리는 2월 말에 두 차례 불이 났는데, 이때마다 A씨는 보험금을 받았다.

대전에서 붕어빵 반죽 등을 생산하는 식품회사를 운영하던 A씨는 올해 7월 고의로 자신의 공장에 불을 낸 후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셔터스톡

대전에서 붕어빵 반죽 등을 생산하는 식품회사를 운영하던 A씨는 올해 7월 고의로 자신의 공장에 불을 낸 후 보험금을 청구했다, 보험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셔터스톡

A씨의 공장에서 가장 최근에 불이 난 건 지난 7월이다. 오전 3시 무렵 난 불로 대전시 중구에 위치한 공장 일부와 반죽기 등 생산시설이 탔다. A씨는 그날 낮 12시 원인불명의 불이 났다며 1억6300만원 상당의 보험금을 청구했다. 공장 건물은 A씨가, 창고 건물은 A씨와 사실혼 관계인 B(45)씨 명의로 화재보험에 들어 있는 상태였다.

불이 난 시간에 A씨의 공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A씨가 퇴근하며 보안장치를 작동시켰는데, 침입 흔적이나 공장 내부에서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보험사는 처음부터 보험사기를 의심했다고 한다. A씨는 지난 2월에도 경북 경산시에서 운영하던 붕어빵 재료 공장에서 화재가 났다며 보험금 1억4900만원을 받았다. 방화가 의심되는 화재였지만, 불을 낸 사람이 특정되지 않아 A씨는 보험금을 그대로 받았다. 화재 발생 시간에 A씨가 대전에 있었다는 점 등이 방화 혐의에서 벗어났던 근거였다.

방재시험연구소에서 진행한 화재 재현실험. 양초와 나무젓가락을 이용한 지연발화장치로 화재가 발생하는 지 여부 등을 실험했다. KB손보

방재시험연구소에서 진행한 화재 재현실험. 양초와 나무젓가락을 이용한 지연발화장치로 화재가 발생하는 지 여부 등을 실험했다. KB손보

보험사의 현장조사 때부터 방화가 의심되는 증거가 발견됐다. 불이 나지 않은 창고에 젓가락에 꽂힌 채 타다 남은 양초와 등유가 담긴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젓가락은 플라스틱 통에 수직으로 꽂혀있었다. 발화 지점에서도 플라스틱 통이 눌어붙은 듯한 흔적이 발견됐다. 화재현장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는 반죽기에 반사된 작은 불빛이 확인됐다. KB손해보험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은 촛불이 반사된 걸로 추측했다.

KB손보 안재원 SIU 조사실장은 “지난 2월에도 방화가 의심되는 화재로 보험금을 탔는데 몇 달 안 돼 다시 화재가 난만큼 보험사기 가능성을 의심하고 현장조사 등을 더 꼼꼼하게 진행했다”며 “현장에서 미처 타지 않은 양초 등을 보고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만든 지연 발화 장치라는 의심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방재시험연구소에서 진행한 화재 재현 실험. 실험에서 탄 흔적(왼쪽)과 실제 화재 현장(오른쪽) 비교. KB손보

방재시험연구소에서 진행한 화재 재현 실험. 실험에서 탄 흔적(왼쪽)과 실제 화재 현장(오른쪽) 비교. KB손보

보험사는 화재보험협회 방재시험연구원에서 재현 실험을 진행했다. 양초와 젓가락으로 지연발화가 가능한지를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실험결과 직경 3㎝짜리 중형양초는 1시간당 1㎝씩 연소됐다. 대략 9시간 이상의 지연 발화가 가능했다. 등유가 채워진 플라스틱 용기에 수직으로 꽂힌 나무젓가락에 불을 붙이면 플라스틱 용기와 등유 전체로 불이 옮겨붙는 것도 확인했다.

방재시험연구원에서는 A씨의 공장과 동일한 구조로 플라스틱 패널 구조물을 만든 뒤 화재가 어떻게 발생하는 지도 실험했다. 나무젓가락에는 짧게 자른 중형양초를 사용해 불을 붙였다. 불은 양초 심지에서 나무젓가락으로 옮겨붙었고 정확히 13분 8초 후 등유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에 불이 붙었다.

방재시험연구원 측은 “실험에서 형성된 샌드위치 패널 벽체의 연소 형태는 화재현장의 발화지점 주위에 남아있는 샌드위치 패널 벽체의 연소 형태와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방재시험연구소에서 진행한 화재실험. 실험에서 탄 흔적(왼쪽)과 실제 화재 현장(오른쪽) 비교. KB손보

방재시험연구소에서 진행한 화재실험. 실험에서 탄 흔적(왼쪽)과 실제 화재 현장(오른쪽) 비교. KB손보

보험사 측은 이런 실험 결과를 토대로 대전 중부경찰서에 A씨를 고소했다. 과거 A씨가 보험금을 타냈던 화재들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A씨는 2018년 2월 충남 금산군 공장화재와 2021년 2월 경북 경산시의 공장화재로 보험금을 탔다. 2018년 2월 화재로는 보험금 3억5000만원을 받았다.

A씨가 보험금을 타낸 화재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겨울철 보험에 가입한 뒤, 보험 가입 한 달을 전후에 불이 났다. 금산군과 경산시 공장의 화재의 경우 발생일도 같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겨울철 붕어빵 영업을 한 뒤 붕어빵 수요가 줄어 드는 봄철에 맞춰 불을 낸 것 같다”며 “붕어빵 재료 사업 자체가 영세하다 보니 보험금을 더 받는 게 낫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A씨의 동업자와 함께 일했던 근무자들의 제보도 있었다. 충남 금산군에서 A씨가 공장을 낼 때 투자를 했다는 제보자는 “공장에 중고 기계를 설치한 뒤 보험금을 청구할 때는 새 기계를 설치했다며 허위견적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 끝에 A씨의 방화 사실 등을 확인했지만 A씨는 관련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대전 중부경찰서는 이달 초 A씨를 방화와 보험사기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는 지난 9일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된 상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산군과 경산시에서 발생했던 화재 건도 보험사기 혐의가 있는지 추가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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