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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3개 잘린 생선장수···월 114만원씩 내고 돈커녕 옥살이 왜 [요지경 보험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지경 보험사기] 

대구시의 한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했던 A(56)씨는 2016년 11월 왼손 손가락 3개를 스스로 잘랐다. 중지·약지·새끼손가락을 잘라 보험금을 타낼 요량이었다. A씨는 생 손가락 3개를 자른 대가로 보험금 4억2000만원을 청구했지만, 보험금은 끝내 받지 못했다. 대신 A씨를 기다린 건 1년 6개월의 감옥살이였다.

대구의 한 시장에서는 친구 관계인 50대 남성이 2년의 차이를 두고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들의 보험사기는 절단부위 등을 분석한 보험사에 의해 덜미가 잡혔다. 셔터스톡

대구의 한 시장에서는 친구 관계인 50대 남성이 2년의 차이를 두고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들의 보험사기는 절단부위 등을 분석한 보험사에 의해 덜미가 잡혔다. 셔터스톡

A씨가 보험사기를 계획한 건 친구인 B(57)씨의 영향이 컸다. B씨는 보험금을 노리고 2015년 1월 손가락 4개를 잘라냈다. B씨의 보험사기 행각은 여느 보험사기처럼 경제력에 맞지 않게 많은 보험에 드는 것부터 시작됐다.

B씨는 2014년 12월 무렵 손가락이 잘렸을 때 손가락 개당 1억원씩 최대 10억원까지 지급되는 보험 등 상해보험 3개에 가입했다. 벌금을 납부하지 못해 지명수배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매달 보험료 40만원씩을 냈다.

B씨는 보험사뿐만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금도 노렸다. B씨는 A씨에게 “보험사기에 성공하면 보험금 1억원을 주겠다”며 “네 가게 명의로 산재보험에 가입해 달라”고 한 뒤 생선가게 종업원으로 취업했다.

이후 B씨는 2015년 1월 생선가게 가판대에서 생선 절단용 칼로 명태를 손질하다 손가락 4개가 잘렸다며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증인으로는 A씨가 나서줬다. 그렇게 B씨는 보험금으로 총 3억4715만원을 받아냈고, 근로복지공단에서도 매달 연금 31만원 등을 받았다.

KNK공학기술이 KB손보로부터 의뢰 받아 작성한 사고 분석 보고서. B씨가 주장한 사고 정황을 토대로 손가락 절단 부위 등을 분석했다. 절단 부위가 일직선 상에 있지 않는 등 고의로 손가락을 절단 한 각종 정황이 확인됐다. KB손보

KNK공학기술이 KB손보로부터 의뢰 받아 작성한 사고 분석 보고서. B씨가 주장한 사고 정황을 토대로 손가락 절단 부위 등을 분석했다. 절단 부위가 일직선 상에 있지 않는 등 고의로 손가락을 절단 한 각종 정황이 확인됐다. KB손보

B씨의 보험사기가 성공한 2년 뒤 A씨도 같은 수법으로 보험사기에 도전했다. A씨도 B씨처럼 형편이 어려웠다. A씨의 부인이 2014년부터 카드론과 대부업체 대출 등을 받아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갔다. A씨는 빌린 냉동 창고의 임대료도 내지 못했고 2016년 6월에는 생선가게도 접었다. 대출을 받아 구한 돈도 인터넷 도박으로 탕진했다.

A씨의 보험사기는 B씨의 판박이였다. A씨도 B씨처럼 손가락 절단 시 최대 10억원을 주는 보험 등 9개의 보험에 가입했다. 월 보험료만 114만원이었는데, 주변 지인에게까지 돈을 빌려 보험료만은 꼬박꼬박 냈다.

2016년 11월 냉동창고에서 전기 절단기를 이용해 왼쪽 손가락 3개를 고의로 잘라냈다. 보험사에는 “얼린 생선을 손질하다 손가락이 잘렸다”며 보험금 4억2000만원을 청구했다.

A씨의 보험사기를 의심한 건 KB손해보험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이었다. 이미 일부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시작할 때였다. A씨의 보험 가입이 사고 몇 년 전에 급격하게 늘어난 게 의심의 시작이었다. 조사를 하던 중 B씨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유로 보험금을 타낸 사실을 확인했다.

KNK공학기술이 KB손보로부터 의뢰 받아 작성한 사고 분석 보고서. A씨가 주장한 사고 정황을 토대로 손가락 절단 부위 등을 분석했다. 절단 부위가 일직선 상에 있지 않는 등 고의로 손가락을 절단 한 각종 정황이 확인됐다. KB손보

KNK공학기술이 KB손보로부터 의뢰 받아 작성한 사고 분석 보고서. A씨가 주장한 사고 정황을 토대로 손가락 절단 부위 등을 분석했다. 절단 부위가 일직선 상에 있지 않는 등 고의로 손가락을 절단 한 각종 정황이 확인됐다. KB손보

KB손보 SIU는 법의학교실과 공학연구소 등에 A씨의 의료기록과 사고 상황 등을 보내 감정을 받았다. 경북대 법의학교실 이상한 교수는 “손가락의 절단면이 일직선 상에 있지 않기 때문에 손가락마다 따로따로 잘렸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일종의 주저손상도 발견된 만큼 A씨가 고의로 절단했다고 봐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A씨의 보험사기가 적발되며 B씨도 보험사기까지 들통났다. A씨와 마찬가지로 손가락 절단 부위가 일직선 상에 있지 않다는 게 근거가 됐다. 잘못된 칼질 한 번에 손가락이 잘렸다면 절단면이 일직선상이어야 하는 데 길이가 다른 건 몇 차례에 걸쳐 절단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KNK공학기술이 작성한 ‘응용역학 해석 및 공학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칼의 무게가 가벼운 데다 동태 대가리와 몸통 부위가 압축·변형되며 손등에 가해지는 상당량의 충격에너지를 흡수하기 때문에 동태를 자르는 과정에서 손가락 4개가 모두 절단되지는 않는다”며 “손가락이 동일 선상에 위치하지 않아 한 번의 사고로 손가락 4개가 모두 절단된 건 아니다”는 결론을 냈다.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환수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보험사기 적발금액 및 환수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꼬리가 잡힌 A씨와 B씨는 결국 2018년 보험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이들은 재판에서 “고의가 아닌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고 관련 KB손보 측이 진행한 각종 분석 보고서 등이 증거로 그대로 인용되면서다. 해당 사고를 분석한 공학박사가 법정에 생선을 들고 가 해당 사고로는 손가락 절단이 힘들다는 점을 직접 재연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지난해 6월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1년 2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이 계획적이고 범행 동기나 수단 및 규모보다 죄질이 좋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지난 1월 이들의 상고가 기각되며 형이 최종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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