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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 주름 폈는데 "암치료"…이래서 실손보험료 16% 올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요지경 보험사기]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50대 A씨가 광주광역시에 있는 병원에 2주간 입원해 각종 치료를 받았다. 항암 치료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A씨는 실손보험에서 치료비를, 암 보험에서 입원 일당으로 실손보험금 160만원을 포함해 400만원 가량을 받았다.

그런데 A씨는 이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A씨가 병원에서 받은 치료는 암 치료와 무관한 얼굴 주름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는 슈링크 시술이었다. 실손보험금을 이용한 보험사기의 대표적 사례다.

광주에 있는 한 병원은 피부과 치료를 한 후 이를 도수치료 등으로 둔갑해 보험금을 청구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광주에 있는 한 병원은 피부과 치료를 한 후 이를 도수치료 등으로 둔갑해 보험금을 청구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보험사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과 경찰 수사에 의하면 A씨가 피부과 시술을 받은 이 병원에서만 2019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환자 208명이 실손보험금 6억3000만원을 허위로 타냈다. 허위 입원 등이 명확히 확인된 보험 청구건수만 추린 액수다.

A씨가 입원했다고 한 병원은 피부과 진료로 입소문을 탄 곳으로 알려져 있다. 병실은 60개가 있지만 실제로 입원 환자는 드물었다고 한다. 입원을 시키지 않고, 2주간 입원한 것처럼 서류만 꾸며 입원 일당을 챙겨줬다.

2주 입원 환자에게는 160만원 짜리 피부 미용 패키지를 시술했다. 주로 얼굴 주름제거와 탄력 개선을 하는 슈링크 시술과 피부 색소 침착 제거용인 레이저 토닝 시술 등을 주로 했다고 한다. 이들 환자가 보험금을 청구할 때는 염좌나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을 치료한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실손의료보험 상품 비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위원회, 손해보험협회]

실손의료보험 상품 비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위원회, 손해보험협회]

미용을 목적으로 한 치료의 경우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만큼, 치료 항목에는 주로 도수치료나 체외충격파치료 등을 넣었다. 이런 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라 병원이 임의로 치료비를 책정할 수 있다.

보험 상품에 따라 보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설계도 해줬다. 질병보다 상해로 보험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환자에게는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을 다쳤다’ 등으로 상해 원인부터 증상까지 정해 보험금을 청구하게 했다. 보험사 SIU 관계자는 “근골격계 질환 외에 암 관련 치료를 받았다며 청구를 한 환자도 3명 있었다”고 말했다.

환자 모집은 병원에 상담실장으로 근무하던 브로커가 전담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거나 본인이 이미 확보한 고객 리스트를 이용해 환자를 모았다. 환자들에게는 실손보험금을 이용해 공짜로 미용 시술을 해주고, 입원 일당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환자들도 보험사기인 줄 알고 있었지만 “우리 병원에 한 시술은 보험사기로 절대 적발되지 않는다”는 말에 안심하고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보험사 관계자는 “이런 유형의 병원들은 환자를 많이 보유한 유명한 브로커를 먼저 확보한 뒤 개원한다”고 말했다.

실손의료보험 손해율 및 손실액 전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보험연구원]

실손의료보험 손해율 및 손실액 전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보험연구원]

이들의 보험사기는 피부과 전문 병원도 아닌데 피부 관련 치료만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보험사 SIU에 덜미가 잡혔다. 염좌 등으로 보험금을 청구한 환자들이 입원 기간 중 자신의 SNS에 ‘미용시술을 받았다’ 등의 글을 올린 것이 사실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보험금을 받은 환자로부터 허위 청구를 했다는 자백도 받았다.

이런 조사를 바탕으로 보험사 SIU는 2020년 10월 광주 북부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지난해 8월까지 1년에 걸쳐 의사와 환자 등 219명을 조사한 끝에 보험사기를 밝혀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병원 소유주인 B씨 등 의사 2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브로커와 환자 등 219명을 기소의견을 송치했다.

병원 소유주인 B씨는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다른 의사를 병원 원장으로 내세우고, 본인은 급여를 받는 페이닥터로 등록한 B씨는 이 병원 개원 전 한방병원에서 양방 협진의로 일하며 보험사기 방조로 처벌받은 전력도 있다. 보험사기에 가담한 환자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보험사에서 타낸 보험금은 대부분 반환했다.

보험사기 등으로 새어나간 보험금은 고스란히 실손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진다. 보험사들의 손해가 커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실손보험으로 3조6000억원의 손해를 본 보험사는 올해 실손보험금을 평균 14.2%씩 올린다. 2017년 3월 이전 보험에 가입한 2700만명은 해당 상품들의 적자가 더 많다는 이유로 인상률이 16%로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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