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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Ⅱ 오류 알린 베테랑 강사 "학생 모두 피해자, 씁쓸했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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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교육팀장의 픽: 수능 생명과학Ⅱ 출제오류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정답 결정 취소 소송 선고 결과와 관련해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1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정답 결정 취소 소송 선고 결과와 관련해 사퇴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5일 법원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전원 정답 처리가 되면서 생명과학Ⅱ 응시자 6515명의 성적이 재채점돼 뒤늦게 발표됐습니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강태중 원장은 "책임을 절감한다"며 사퇴했습니다.

이번 사태를 되짚어보면, 수능 이후 생명과학Ⅱ 문제에 대한 이의신청이 평가원 게시판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수험생 커뮤니티에도 비슷한 주장이 올라왔고 학원 강사가 오류를 주장하는 영상을 찍어 학원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언론이 생명과학Ⅱ 오류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수능일로부터 3일이 지난 21일이었습니다. 김연섭 종로학원 생명과학 강사(과학팀장)가 오류를 주장하는 자료를 기자들에게 보냈고 출제 오류 가능성이 기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김연섭 강사는 연세대 생물학을 전공하고 25년간 강의를 해온 베테랑 강사입니다. 그에게 이번 출제 오류 사태에 관해 물었습니다.

김연섭 강사. 종로학원 제공

김연섭 강사. 종로학원 제공

출제 오류는 언제 발견했나.
수능 당일 밤에 문제지가 공개됐을 땐 난이도 분석을 빨리 해야 하니까 자세히 풀어보지 못했다. 다음날 해설 강의를 위해 문제를 풀다 보니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오류를 알아채기 어려운 수준의 문제였나.
내가 수험생이었다면 답은 찾았을 거다. 그런데 해설을 하려면 각각의 조건에 관해서도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조건이 불가능한 문제였다. 강사로서 봤을 때 문제가 아주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류는 너무나 명백했다.
왜 공교육 교사가 아닌 사교육 강사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을까.
사실 생명과학Ⅱ는 선택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이번 수능에서 6515명, 전체의 1.5%) 내용이 방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다루기도 어렵다. 대부분 서울대나 의대 희망하는 최상위권 학생 일부가 사교육으로 배우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관심에서 좀 멀었던 게 아닐까.

결국 김 강사는 학원 측에 출제 오류 사실을 알렸습니다. 혹시 잘못 판단했을까 봐 여러번 검토했지만 오류라고 확신했다고 합니다. '우리라도 오류를 알려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종로학원은 21일 오전 수능 출제 오류 보도자료를 냅니다. 이전에도 수능 이의신청 게시판에는 오류 주장이 올라와 있었지만 언론의 관심은 적었습니다.

그런데 평가원은 29일, 생명과학Ⅱ에 이상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불완전하지만 풀이는 가능하다'는 취지였는데.
너무 명백한 오류였기 때문에 당연히 평가원이 수용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결론을 낸 것을 보고 분노가 일었다. 오류를 인정하면 될 일을 너무 키운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개 학원 강사도 알 수 있는 오류를 어째서 인정하지 않나 싶었다.
결국 법원이 수험생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사태 보면서 어떤 생각 들었나.
씁쓸했다. 결국 처음 정답인 5번을 선택해 맞췄던 학생도, 전원 정답으로 점수가 뒤바뀐 학생도, 등급이 떨어진 학생도 모두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2008학년도 수능 물리Ⅱ 복수정답 논란 때 강태중 당시 중앙대 교수는 평가원의 조치를 비판했다. [SBS뉴스 캡처]

2008학년도 수능 물리Ⅱ 복수정답 논란 때 강태중 당시 중앙대 교수는 평가원의 조치를 비판했다. [SBS뉴스 캡처]

강태중 평가원장은 중앙대 교수였던 2007년 12월, 수능 출제 오류에 대해 "채점 전 소수의 학생이 이의제기했을 때, 타당한 증거로 좀 더 일찍 검토했어야 한다"고 평가원을 비판했습니다. 얄궂게도 그는 14년 전 자신이 한 발언을 지키지 못해 평가원장 직에서 불명예 퇴진하게 됐습니다. 평가원은 뒤늦게 "이의신청 심의 제도를 점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태는 공교육 교사와 학계가 아닌 학생이 주도해 평가원을 무너뜨린 사례입니다. 평가원은 교육과정과 평가에 있어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 집단입니다. 하지만 아집을 버리고 작은 목소리도 귀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기존 기사에 '김 강사가 처음 출제오류를 공론화했다'는 표현에 대해 독자 이의가 제기되어 해당 표현을 삭제하고 내용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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