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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보물선'은 건졌다···"150조 금괴 보물선" 끝나지않은 의문 [e즐펀한토크]

중앙일보

입력

# 지난 14일 전북 군산 고군산군도.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탐사팀이 바닷속을 탐사해 난파선으로 추정되는 물체와 유물 200여 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발견된 유물은 고려청자 125점을 비롯해 분청사기 9점, 백자 49점, 닻돌 3점 등이다.

[e즐펀한토크] 김정석의 경상도 기사의 정석

# 제주 한경면 신창리 해역. 중국 남송(南宋·1127~1279)대 유물이 발견된 곳을 중심으로 올해 3차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신창리 수중 유적은 1983년 금제 유물이 발견되면서 존재가 알려진 후 2019년 첫 발굴 조사때 남송대 도자기와 목제 인장 등이 확인됐다.

이처럼 국내 해역에선 수중 유물이 계속해서 발견된다. 예로부터 특산물·도자기 같은 물품들을 뱃길을 통해 교역해 왔고, 때때로 물품을 실은 선박이 풍랑 등 여러 이유로 침몰했던 탓이다. 이 중 신안 해저유물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가치가 높아진 물품들은 오늘날 ‘수중 보물’로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신일그룹이 홍보영상을 통해 공개한 돈스코이호 모습. 신일 측은 2018년 7월 15일 경북 울릉도 앞바다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 신일그룹

신일그룹이 홍보영상을 통해 공개한 돈스코이호 모습. 신일 측은 2018년 7월 15일 경북 울릉도 앞바다에서 돈스코이호 선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 신일그룹

201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울릉도 앞바다의 ‘러시아 보물선’ 이야기도 대표적인 해저유물 사건 중 하나다. 침몰한 보물선에 150조 원에 달하는 값어치의 금화와 금괴 5000상자가 실려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한낱 영화 속 내용처럼도 들릴 수 있는 보물선 이야기에 전국이 들떴다. 수중 탐사로 침몰된 배의 모습을 담은 영상까지 공개되면서 수많은 투자자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금괴 150조 원어치 실은 ‘러시아 보물선’

울릉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의 정체는 6200t급 순양함 ‘드미트리 돈스코이’호다. 러시아 전쟁영웅 드미트리 돈스코이 대공의 이름을 딴 배는 1905년 5월 29일 울릉도 인근 70㎞ 해상에서 일본 함대에 포위됐다. 당시 함장은 배를 일본 해군에 넘겨줄 수 없다고 판단, 울릉도 쪽으로 최대한 배를 이동한 뒤 선원들에게 해변으로 갈 것을 명령한 뒤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

돈스코이함이 ‘보물선’으로 불리는 이유는 당시 러시아 발트함대가 상당량의 금화·금괴·골동품을 배에 싣고 다닌 사실이 알려져서다. 당시 함대는 기술적 한계 탓에 연료와 식수·보급품 등을 중간중간 항구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원거리 항해를 했다. 여기에 장병들에게 임금도 지급해야 했기에 배에 금화·금괴 등을 실었다고 한다.

신일그룹이 2018년 7월 15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앞 바다 434m지점에서 러시아 군함인 드리트리 돈스코이호(6200t급)를 발견했다고 밝히면서 공개한 침몰 선박 사진. 사진 신일그룹

신일그룹이 2018년 7월 15일 경북 울릉군 울릉읍 앞 바다 434m지점에서 러시아 군함인 드리트리 돈스코이호(6200t급)를 발견했다고 밝히면서 공개한 침몰 선박 사진. 사진 신일그룹

돈스코이함 침몰 추정 위치

돈스코이함 침몰 추정 위치

오래 전부터 그 존재가 확인돼 왔던 돈스코이호는 2018년 7월 갑자기 세간의 화제가 됐다. 신일그룹이라는 업체가 돈스코이함을 최초로 발견했고, 150조원에 달하는 금괴를 배와 함께 인양해 그 수익금을 투자자들과 나누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인양 비용은 ‘코인’으로…투자자들 몰려들어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를 인양하는 데 드는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명목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투자 방식은 ‘암호화폐’였다. 신일그룹이 발행하는 암호화폐에 투자하면 향후 돈스코이호를 인양한 뒤 수십 배 이상 수익을 볼 수 있다고 홍보했다.

언뜻 비현실적인 목표처럼 보였지만 투자자들은 몰려들었다. 침몰한 돈스코이호의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한 사람들은 “코인 1개당 발행 예정 가격은 200원이지만 암호화폐 거래소에 상장되면 가격이 1만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업체 측 말을 믿었다.

신일골드코인 홈페이지에는 2018년 7월 26일 오전 기준 투자자가 12만 여명에 달한다고 명시돼 있다. 신일그룹 홈페이지 화면 캡쳐

신일골드코인 홈페이지에는 2018년 7월 26일 오전 기준 투자자가 12만 여명에 달한다고 명시돼 있다. 신일그룹 홈페이지 화면 캡쳐

하지만 보물선 인양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투자 또한 과열되는 와중에 곳곳에서 의혹이 제기됐다. ‘신일그룹이 한 편의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발굴 보증금 문제였다. 바다에 매장된 물건의 발굴을 승인받기 위해선 작업계획서 등 관련서류와 함께 매장물 추정가액의 10%에 해당하는 발굴보증금을 내야 하는데, 신일그룹이 보증금 15조원을 낼 능력이 과연 있느냐는 의혹이다. 2017년 신일그룹 감사보고에 따르면 2016년 기준 매출액은 약 925억원, 영업이익은 약 17억원, 유동자산은 약 324억원으로 보증금 15조원을 지불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쌓여가는 의혹들…“자본금도 실체도 없는 회사”

신일그룹이 정확히 어떤 회사인지를 둘러싼 논란도 일었다.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 인양 계획을 발표하기 불과 한 달 전 자본금 1억 원으로 설립된 업체여서다. 설립 당시 신일그룹 측은 홈페이지에 ‘1979년 설립된 신일건업을 모태로 한 글로벌 건설·해운·바이오·블록체인그룹’이라고 회사를 소개했지만 2015년 파산한 신일건업과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불분명했다. 계열사라고 소개한 신일건설산업, 신일바이오로직스, 신일골드코인 등도 대부분 법인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여기에 “돈스코이호의 가치가 근거 없이 산출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자 업체 측이 나섰다. 당시 신일그룹은 기자회견을 열어 금괴 가치가 10조 원 수준이라고 낮추는 등 한 발 물러섰고, 해양수산부에 제출한 발굴허가 신청 서류에는 추정가치를 12억 원이라고 적었다. 정부에 제출한 금액(12억 원)을 기준으로 할 경우 보물 값어치를 12만5000배(150조 원)나 부풀린 셈이다.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한 신일그룹의 최용석 대표이사 회장(맨 오른쪽)이 2018년 7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를 발견한 신일그룹의 최용석 대표이사 회장(맨 오른쪽)이 2018년 7월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의혹이 커지자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전담수사팀을 꾸린 뒤 2018년 8월 7일 신일그룹과 신일그룹 돈스코이 국제거래소를 비롯해 총 8곳을 압수수색하고 관계자들을 입건했다. 향후 수사에서 밝혀진 이들의 사기 금액은 115억8000만원에 달했다.

‘보물선 사기’는 진행형?…기획자 행방 오리무중

신일그룹이 돈스코이호 인양 사업을 발표한 지 3년 6개월가량이 지났지만, 여전히 ‘보물선’이 맞는지조차 불분명한 이 배가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 사업을 구상하고 투자자들을 끌어모았던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신일그룹 전 부회장 김모씨는 지난 8월 징역 5년을 확정받고 복역 중이다. 신일그룹 돈스코이호 국제거래소 전 대표이사 허모씨는 징역 4년, 신일그룹 전 대표이사 류모씨는 징역 2년, 돈스코이호 탐사 좌표를 제공한 진모씨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2018년 8월 7일 ‘돈스코이호’ 논란을 일으킨 신일해양기술(전 신일그룹)을 압수수색한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2018년 8월 7일 ‘돈스코이호’ 논란을 일으킨 신일해양기술(전 신일그룹)을 압수수색한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신일그룹 전 회장 류모(46)씨는 여전히 해외 도피 중이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류씨는 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2018년 베트남에 머무르는 것으로 파악됐었다. 국제형사기구(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지만 아직까지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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