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네거리|여관 수·밀집도 "전국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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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남부순환도로와 서울대진입로인 신림로가 만나는 신림동 네거리.
여느 번화가와 마찬가지로 도로변 3∼4층의 상가건물에는 레스토랑·생맥주집을 비롯, 약국·옷가게·각종 사무실 등이 들어서 있다.
거리풍경도 수년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모습.
그러나 이 일대 도로변건물 안목지역에는 엄청난 변화가 진행돼왔다.
상가건물 뒤쪽과 골목길 양쪽으로 빽빽히 들어선 각종여관이 그것.
『네거리를 중심으로 반경2백m이내에 무려 1백70곳이 몰려 있습니다.』
관악구청 윤상노 위생과장은 『화곡동·봉천동·역삼동 등과 같은 숙박업소 밀집지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효나 밀집도면에서 볼 때 이곳이 단연 최고』라고 단언한다.
여인숙·여관도 10여군데 있지만 대부분이 장급 여관이고 「○○파크」「○○모텔」이라는 간판을 내건 곳도 보인다.
간판에는 저마다 「각종 카드환영」「물침대·비디오있음」등 이곳 성격을 가늠케 하는 문구들.
『평일에는 낮 손님들이 많고 밤손님은 주말에 몰리는 편이죠. 크리스마스·연말 때는 이 일대 4천여개의 방들이 가득 찹니다』
신림5동 국빈장주인 전모씨(37)는 『낮에는 중·장년층, 밤에는 젊은층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 업주들은 이제 포화상태에 이른 탓으로 경쟁이 치열해 올 들어서만도 시설이 낙후한 10곳이 폐업, 스태미나식인 사철탕·보양탕·갈비집 등으로 전업했다.
『80년 초만해도 여관은 30여곳에 불과했죠. 지하철이 뚫리면서 상업지역에 포함된 집들이 모조리 여관으로 변했어요.』
인접 주택가에서 15년째 살아온 신림5동8통장 김상수씨(62)가 털어놓는 이 동네의 역사다.
여관이 가까이 있으니 집값이 자꾸 떨어졌고 그럴 바엔 여관으로 개조해 업자들에게 넘기거나 아예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건축업자에게 파는 것이 당시 주민들의 유일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건축업자로서는 40평정도의 짐을 평당 1백50만원에 사서 4∼5층 높이의 여관을 지으면 최소한 5배 이상의 가격을 받고 여관업자에게 팔게 되니 이 일대 주택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셈.
이 때문에 이 일대 여관은 강남쪽 여관들처럼 주차장도 갖추지 않았고 입구가 으슥한 곳에 위치해있지도 않지만 가격은 강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여관이라는 업종은 원래위치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이지만 방20실을 기준으로 권리금을 포함해 5억5천만원선으로 강남의 역삼동과 맞먹는 다는 것이다. 『여관을 찾는 남녀들은 방 구하러 돌아다니는 것을 제일 싫어하죠. 여관이 많다보니 언제든지 방이 있고 술집·음식점으로 뒤죽박죽이 된 골목길은 그들에겐 안전한 진입로 역할을 합니다. 이곳 S장 여관직원 황모씨(22)의 귀띔.
아무튼 이때문에 서울대생 등 젊은이들이 모이는 낭만의 거리를 회상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낯뜨거운 장면만 보게 된 셈.
고전음악 카페인 「목신의 오후」주인 최영완씨(30)는 『학생들이 자주 찾던 분위기 있는 카페가 수년사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흥음식점으로 모두 바뀌었다』고 한숨을 짓는다.
값싸고 양 많기로 유명했던 신림극장 뒤 「신림동 순대시장」이 재개발로 없어진 것도 학생들의 발길이 끊어진 데 한몫을 했다고 주위사람은 입을 모은다. <이효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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