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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딱 보면 척 아는 '남다른 촉'···'그놈' 잡아내는 의외의 '흑기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8월 택시기사 A씨(50)는 인천시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 50대 승객을 태웠다.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하던 승객은 정확한 행선지를 묻자 우물쭈물했다. 쇼핑백에서 돈뭉치를 꺼내 세기도 했다. 수상하다는 생각에 경찰에 신고한 A씨의 직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이 승객은 은행을 사칭해 피해자들의 돈을 뜯어내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현금 전달책이었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최일선에서 ‘촉’을 발휘해 피해를 막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A씨처럼 보이스피싱 현금 전달책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제보해 경찰의 발 빠른 공조로 검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은행 직원이 보이스피싱 의심 사례에 해당하는 고객에게 확인을 요청해 피해를 막는 경우도 있었다. 문제는 이들의 성공 사례를 제도화할 수 있느냐다.

서울 시내 도로를 주행 중인 카카오T블루 택시. 박민제 기자

서울 시내 도로를 주행 중인 카카오T블루 택시. 박민제 기자

현금 수거책 잡는 ‘택시정보시스템’

보이스피싱 범죄가 대면편취형으로 진화하면서 피해자나 현금 전달책이 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택시다. 버스나 지하철보다 이동 경로를 노출하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경찰은 ‘택시운행정보’만 신속하게 공유돼도 현금 전달책·수거책 검거가 쉬워질 거라고 입을 모은다. 한 경찰 관계자는 “승하차 위치로 범인을 추적해야 한다. 현장에선 속도가 생명이다. 그런데, 데이터를 빨리 받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경찰 수사에 필요한 GPS 위치 기반 택시정보 반출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충돌하게 된다. 택시 데이터를 받기 위해선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평균 2~3일이 소요된다. 정보를 요청해서 받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 택시정보시스템(STIS, Seoul Taxi Information System)을 공동 관리하는 서울시 택시정책과와 티머니에 협조 요청을 하면 영장이 없어도 정보를 공유 받을 수 있지만, 번호판이 특정되고 택시 운전자가 동의해야 수집이 가능하다.

서울시도 난색을 보인다. 2012년 구축한 택시정보시스템이 택시 정책 수립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져 수사 공조는 주요 업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시 택시정책과 관계자는 “최대한 협조해주고 있다. 개인정보인 GPS를 경찰 수사에 활용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없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의 택시정보 요청 대응 업무 인원도 한 명뿐이어서 일선 경찰과의 공조는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일선 경찰관들은 “긴급할 경우 택시 정보를 즉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보완과 공조 업무 인원을 늘리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피해 예측하는 ‘금융사기 예방진단표’

보이스피싱 범죄의 최전방인 은행의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지난 9월 이틀에 걸쳐 보이스피싱을 당해 주택 마련에 쓰려던 9870만원을 잃은 주모(40)씨는 “은행이 방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은행은 불이익을 준다든지 해야 책임감을 갖고 은행에서도 그걸 막으려고 적극적으로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에서도 피해 예방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피해금 인출 방지 노력을 많이 한 지점과 직원에게 포상 및 평가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올해 11월까지 은행 창구에서만 788건의 보이스피싱 인출사고를 방지해 최소 206억 이상의 피해액을 예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금융사기 악성 앱을 탐지하는 ‘피싱아이즈’ 앱을 통해 고객이 휴대폰에서 탐지되는 보이스피싱 의심 징후가 즉시 플랫폼에 공유되는 시스템을 갖췄다. 지난 2월 시스템 고도화를 한 지 두 달 만에 147억원 규모의 피해를 예방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보이스피싱 막는 ‘금융사기예방진단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보이스피싱 막는 ‘금융사기예방진단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달 4일 부산은행에서 근무하는 은행원 허모씨는 고액의 현금을 인출하려는 50대 여성 고객을 설득해 2350만원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았다. 최신 범죄사례가 적용된 ‘금융사기예방진단표’를 고객에게 확인해달라고 요청했고, 금융소비자보호부의 전화금융사기모닝터링팀과 협업한 덕분이었다. 허씨는 “보이스피싱 예방의 최전방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부분도 넘기기보단 고객에게 관심을 기울이면 범죄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선 금융사기예방진단표를 보여줘도 고객이 불편해하거나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의심 사례로 판단돼 112에 신고하면 고객이 민원이 제기하기도 한다. 허씨는 “진단표만 잘 확인해도 보이스피싱 피해를 예방하는 경우가 많다.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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