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언론 위기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가 수상식장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가 수상식장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1. 지난주말 ‘언론과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각한 세계적 현상임을 환기시키는 두 가지 행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1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식입니다. 올해 수상자가 탄압받는 언론인 2명이었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열린 다른 하나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화상으로 100개국 정상을 소집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입니다.

2. 수상식에선 필리핀 인터넷미디어 ‘래플러’를 만든 마리아 레사의 수상소감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언론의 위기는 정치와 IT의 변화로 초래됐다. 두테르테(필리핀 대통령)와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라는 두 거물을 상대해야 한다. 두테르테는 마약추방캠페인 과정에서 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집권중 22명 언론인 피살)
소셜미디어는 더 위협적이다. 페이스북이 새 게이트키퍼(gatekeeper)가 되었다. 기존 언론생태계를 파괴했다. 증오의 글들이 더 빨리 퍼진다. 여론이 양극화되고 진실은 찾을 수 없다.’

3. 바이든도 화상회의 모두연설에서 언론자유를 강조했습니다.
‘프리덤하우스 2020년 리포트에 따르면 15년 연속으로 전세계 자유도가 퇴보하고 있다. 첫째 원인은 독재자들이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둘째 원인은 양극화를 선동하는 정치세력들이다.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반석이다. 미국이 모범을 보이겠다. 위협받는 각국 독립언론을 지원하는 국제기금(International Fund for Public Interest Media)에 시드머디(3000만달러)를 내겠다..’

4. 국제기금의 공동대표가 바로 노벨평화상 수상자 레사입니다.
실질적으로 모금과 운영을 주도할 공동대표는 마크 톰슨입니다. 영국 BBC방송 사장과 미국 뉴욕타임즈(NYT)사장을 지내면서 두 매체의 성공적인 디지털화를 이끈 유명언론인입니다.

5. 필리핀보다야 낫지만 한국도 언론의 위기라는 점에선 예외가 아닙니다. 그 원인이 정치와 IT라는 점도 같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총선직전 터졌던 ‘검언유착’의혹입니다. 채널A기자와 윤석열 총장의 측근이었던 한동훈 검사장과 짜고 친여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을 비리혐의로 잡아넣으려했다..는 주장입니다. 채널A기자는 무죄였습니다. 친여 정치인들의 무고로 드러났습니다.

6. 최근 인터넷사용자들을 놀라게 한 카카오톡 검열 소동도 마찬가지입니다.
n번방금지법 시행에 따라 10일부터 각종 인터넷사이트에 대한 검열이 시작됐습니다. 불법음란물을 막자는 취지인데..막상 음란물이 유통되는 해외메신저는 필터링할 수 없어 실효성은 없어 보입니다. 통신비밀보호와 표현의 자유침해 논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7. 사실 검열소동은 예상됐던 혼란입니다.
애당초 입법부터 이후 준비과정까지 혼란이 많았던 법안입니다. 사실상 전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충분한 준비, 관련업계와의 협력 없이 밀어붙였습니다. 현실에 맞춰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8. 이에 대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11일 금오공대 학생과의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좋다. 그런데 자유 권리엔 한계가 있다. 헌법이 민주주의체제 보장하라고 언론의 특권을 비호했더니, 그것을 이용해 가짜뉴스를 퍼트려 자기 이익을 도모하고 국민판단을 흐리게하면 민주주의 위협하는 것이다..’

9. 정치인 이재명의 이런 강경한 입장은..레사의 우려처럼..언론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재명은 언론환경이 자신에게 불리한‘기울어진 운동장’이라 생각합니다. 정치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의적으로 언론자유를 제약하면 위험합니다.

〈칼럼니스트〉
2021.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