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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남긴 메르켈, 다음 행보는 "일단, 독서와 낮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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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몇 달 동안은 어떤 약속에도 참석하지 않겠다”.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전 총리는 8일(현지시간) 열린 울라프 숄츠(63) 신임 총리 취임식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당분간은 자신을 찾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당부였다. 그러나 그의 바람이 이뤄질까에 외신들은 물음표를 던진다. ‘무티’(mutti·어머니) 리더십으로 유럽인들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긴 그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날 영국 가디언·텔레그래프·뉴욕타임스(NYT) 등은 숄츠 총리에게 바통을 건넨 메르켈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걷게 될 것인지에 대한 여러 추측을 내놨다.

8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새 총리 선출을 위해 독일 하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새 총리 선출을 위해 독일 하원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공식적으로 이날부터 메르켈은 ‘무직’이다. 이제는 검은 구두를 벗고, 독서와 낮잠을 반복하는 조용한 일상을 누리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1990년대 정계에 입문한 메르켈은 31년을 쉼 없이 달려왔다. 퇴임 후 계획을 물으면 “고민할 시간이 없다”고 답할 정도였다. 지난 9월 한 행사에서는 “정상적인 근무를 한 적이 없어 내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게 뭔지 자문하는 일을 멈췄다”며 “67세에 접어든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올여름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도 “뭔가를 읽으려다가 피곤해서 눈이 감기기 시작할 것 같다. 그렇게 잠시 낮잠을 자고 난 뒤 내가 어디에서 등장할지 지켜보자”며 ‘독서와 낮잠’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를 두고 텔레그래프는 “어쩌면 남편을 위해 매실 케이크와 감자 수프를 만들고, 야채를 가꾸던 취미를 살린 전업주부로의 삶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와 남편 요아힘 자우어. [AF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와 남편 요아힘 자우어. [AFP=연합뉴스]

다만 이 계획은 개인적 ‘다짐’에 그칠 것이라는 게 외신의 공통된 전망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메르켈은 이미 베를린 운터덴리덴 거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지난달에는 사무실 관리자 2명, 비서 2명, 사무원 3명, 운전기사 2명 등 총 9명의 인력을 배치해 달라고 연방 하원위원회에 요청했다고 한다. 아직 사무실 용도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메르켈의 완전한 정계 은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하는 신호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양자화학 전공을 살려 학자의 길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여러 연구소에서 자리를 제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메르켈은 지난달 로이터에 “우리의 번영, 과학 연구 및 혁신에 대해 의견을 내놓긴 하겠지만, 과학 연구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며 선을 그었다. 대신 AFP통신은 “한국 서울에서 이스라엘 텔아비브까지,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 수많은 대학에서 순회강연을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2010년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해 전 세계 19개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8월 독일 제약사 바이오엔테크 공장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 [EPA=연합뉴스]

지난 8월 독일 제약사 바이오엔테크 공장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 [EPA=연합뉴스]

돈을 벌기 위해 기업에 몸담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총리 시절에도 직접 장을 보는 등 검소한 생활이 돋보였다. 퇴임 후 매달 1만5000유로(약 1994만원) 상당의 연금이 지급되는 만큼 돈이 궁하진 않을 전망이다. 더욱이 지난 2015년 독일은 고위급 정치인이 퇴임 후 12~18개월 동안 기업체의 고문이나 이사직으로 이동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했다.

지난 4월 출간된 독일 베스트셀러 작가 다비드 사피어의 추리 소설 『미스 메르켈』. [아마존 캡처]

지난 4월 출간된 독일 베스트셀러 작가 다비드 사피어의 추리 소설 『미스 메르켈』. [아마존 캡처]

이날 주요 외신들은 메르켈의 행보 관련 기사를 보도하며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 다비드 사피어의 추리 소설 『미스 메르켈』을 함께 소개했다. 지난봄 출간된 이 소설은 메르켈 총리가 은퇴 후 남편과 시골 마을로 내려가 한적한 생활을 즐기려고 하지만, 이내 지루함을 느끼고 범죄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이다. 가디언은 이 책을 소개하며 “메르켈 총리는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재치있게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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