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중립성 논란 자초한 공수처

중앙일보

입력 2021.12.03 00:22

업데이트 2021.12.03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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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디렉터 兼 콘텐트코디네이터 兼 시민사회연구소장
김원배 사회디렉터

김원배 사회디렉터

‘고위공직자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기 위한 독립된 수사기구의 신설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음. 이런 취지로 설치된 홍콩 염정공서, 싱가포르 탐오조사국은 공직자 비위 근절과 함께 국가적 반부패 풍토 조성에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

2019년 4월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 등 12명이 발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제안 이유에 나온 설명이다.

‘고발 사주’ 때 윤석열 바로 입건
권순일 재판거래 의혹은 무관심
반부패기구 아닌 검사감찰처 전락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원래 반부패 수사기구로 설계됐다. 그런데 지금 모양새만 보면 ‘검사감찰처’가 된 것 같다. 의혹이 있는 모든 검사를 엄정하게 수사한다면 모르겠는데, 언제부터인지 특정한 방향성을 드러내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지난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사건의 수사 무마에 연루된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용차를 내주고 조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않았다는 ‘황제 조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달 30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이날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 손준성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손 검사는 2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이날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 손준성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청구했다. 손 검사는 2일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연합뉴스]

공수처는 지난 9월 ‘고발 사주’ 의혹이 제기됐을 때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서둘러 입건해 논란을 일으켰다. 고발 사주 의혹은 2020년 4월 총선 직전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김웅 국민의힘 송파갑 후보에게 범여권 정치인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전달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내용이다. 손준성 검사가 대검 참모였으니, 윤 전 총장에게도 의혹의 시선이 갈 수 있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이 직접 개입했다는 물증은 없었다. 공수처는 손 검사와 김웅 의원 수사에서 증거를 확보한 다음,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한 입건 여부를 발표하는 게 적절했다.

선거 국면에선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치적 논란이 있다면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 이를 잠재워야 한다. 공수처가 손 검사를 상대로 청구한 두 번째 구속영장엔 1차 영장에 있던 ‘상급 검찰 간부와 손 검사가 고발장 작성 지시에 공모했다’는 내용이 빠졌다고 한다. 설령 공수처가 손 검사를 기소하더라도 윤 후보와 관련된 부분을 찾아내지 못하면 윤 후보를 서둘러 입건한 것은 악수가 될 것이다.

공수처는 최근 이성윤 고검장의 공소장 유출을 문제 삼아 수원지검 수사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이 사건은 지난 5월 고발된 사건인데 6개월이 지나서야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수사 후 이첩하라는 공수처의 요구를 거부하고, 이 고검장을 기소한 수원지검 수사팀은 공수처의 보복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허위 사건번호를 기재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불법 출국금지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는 대검 진상조사단 근무 시절 윤중천씨 면담 보고서를 왜곡하고 유출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 5월께 이 사건에 ‘공제3호’의 사건 번호를 부여했음에도 아직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에선 이성윤 고검장(사건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의 재판이 열렸다. 2019년 당시 수원지검 안양지청 소속이던 윤원일 검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검사가 공문서를 위조한 상황이 생겨 수사하겠다고 하자 일선 검사의 말은 믿지 않고 사건 경위서를 써내라 하고, 이를 안양지청 지도부와 대검찰청의 수많은 선배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개탄스럽고 안타깝습니다.”

수사 무마 사건과 관련해 당시 안양지청 고위 간부와 대검 실무진이 공수처에 이첩됐지만 본격적인 수사를 한다는 얘길 듣지 못했다. 검찰 조직에 칼을 대려면 불편부당하게 하라.

대장동 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김만배씨의 회사 화천대유에서 거액의 고문료를 받은 권순일 전 대법관에겐 재판거래 의혹도 있다. 검찰은 권 전 대법관이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고 고문료를 받은 것을 문제 삼아 변호사법 위반으로 기소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이 돈이 대법관 재직 시절 직무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후 수뢰 등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판사의 범죄 행위라면 응당 공수처가 직접 수사해 기소까지 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공수처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수처가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는 검찰이 눈치 보며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는 고위공직자의 금품 관련 범죄, 즉 부패 행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수처 홈페이지엔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 기구’라는 문구가 있다. 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뒤돌아봐야 할 때다.

모비온

Innovation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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