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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암호화폐 비과세 포퓰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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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주정완 경제에디터

주정완 경제에디터

버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일부 종목은 가격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 배나 뛰어오른다. 그러다 순식간에 반 토막, 반의 반 토막으로 쪼그라들기도 한다. 국내 암호화폐 투자의 현주소다. 법적 용어로는 가상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마찬가지다.

원래 정부는 암호화폐 투자 소득에 대해 내년부터 세금을 걷으려고 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이 지난해 말 합의한 사항이다. 국회에서 관련 법률도 통과시켰다. 그런데 정치권은 1년도 안 돼 암호화폐 과세 방침을 뒤집기로 했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내년까지 세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30일 이런 내용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선거를 의식한 여야 정치권의 포퓰리즘 합작품이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세금은 0원
내년 선거 의식해 과세 1년 유예
정치 논리가 조세 형평성 흔들어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줄곧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답변에서 “가상자산(암호화폐) 과세를 다시 조정·유예하는 건 법적 안정성이나 정책 신뢰성 차원에서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제 와서 암호화폐 과세를 미루는 건 조세 정책의 관점에서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합세해 홍 부총리의 항변을 눌러버렸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정치권에선 금융투자소득세 도입과 암호화폐 과세를 연결하기도 한다. 금융투자소득세는 2023년 1월부터 적용할 세금이다. 주식 투자 등에서 번 돈에 소득세를 매기는 것이다. 주식 투자나, 암호화폐 투자나 어차피 비슷한 성격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맹점이 있다. 홍 부총리는 “가상자산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단순 무형자산이고 금융투자소득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 금융자금”이라며 “두 자산은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요 20개국(G20) 등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건 궁극적으로 기업의 자금조달로 이어진다. 국가가 나서 자본시장을 육성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암호화폐 투자는 기업의 생산활동과 별로 관계가 없다. 암호화폐 거래로 돈이 몰릴수록 결국 암호화폐 거래소의 수수료 수입만 늘어난다. 이런 암호화폐 거래소는 모두 사설 업체다. 코스피·코스닥 시장을 운영하는 한국거래소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금융투자소득세와 암호화폐 과세를 연결짓는 주장이 간과하는 점은 또 있다. 주식 투자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금을 잘 내고 있다. 투자자가 증시에서 주식을 팔 때마다 증권사가 꼬박꼬박 떼가는 증권거래세다. 납세자가 직접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고 원천징수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주의 깊게 의식하지 않을 뿐이다.

2023년이 되면 주식 투자자들은 두 종류의 세금을 내야 한다. 주식을 거래할 때는 증권거래세, 주식에서 투자 소득이 발생하면 금융투자소득세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연간 5000만원까지 공제를 해주기 때문에 소액 투자자에게 유리한 방식이다.

그런데 암호화폐를 사고팔 때는 거래세를 내지 않는다. 오직 소득세만 부과한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단순히 주식 투자와 형평성을 말한다면 암호화폐에도 거래세를 부과하는 게 맞다. 이런 점을 외면하고 금융투자소득세와 암호화폐 과세를 연결짓는다면 반쪽짜리 주장이다.

지난달 한국조세정책학회 세미나에선 암호화폐 과세 방식을 둘러싸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동건 한밭대 회계학과 교수는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가 암호화폐 차익에 양도소득 과세를 하고 있다. 우리도 금융투자소득으로 분류하고 과세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반면 김갑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충분히 검증을 거친 (암호화폐) 소득세 과세 방안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목적세에 해당하는 낮은 수준의 거래세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다만 김 교수는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20~30대를 배려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주장에는 일침을 가했다. 그는 “가상자산(암호화폐) 과세 유예의 필요성으로 2030세대의 시장 참여 비중을 꼽는 것은 변동성 위험이 월등히 큰 가상자산 시장으로 청년의 투자를 유인하는 효과가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투자이익을 보장해 줄 수 없으며 손실을 보전해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 형평성을 위한 대원칙이다. 누군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세금을 깎아준다면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의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암호화폐 거래에서 소득이 발생한다면 당연히 세금을 걷어야 한다. 무슨 종류의 세금을 걷느냐는 둘째 문제다. 이제라도 정치 논리로 조세 형평성을 뒤집는 시도를 중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