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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쉼] 벌떼? 새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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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아아아아'.

가을바람에 대숲이 일렁이는 소리가 들린다. 가창오리의 군무를 촬영하기 위해 뷰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는데 갑자기 수만 마리의 새떼가 머리 위를 덮친다. 검은 도포 자락이 하늘을 덮는 듯,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새떼에 입이 벌어지고 고개가 목 뒤로 넘어간다. '저게 다 새일까?' "생물학과에 입학했지만 영 정을 못 붙이다, 저 소리를 듣고 철새 연구에 빠져들었습니다." 금강호에서 철새를 관찰하는 군산시청 '철새 학예사' 한성우(35)씨의 말이다.

올 겨울도 여지없이 가창오리떼가 한반도를 찾아들었다. 11월 5일 현재 천수만과 금강 유역에 각 10만여 마리가 날아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때맞춰 가창오리를 테마로 한 철새축제도 풍성하다. 충남 서천에서는 이미 10월 말부터 철새기행전이 열리고 있으며, 금강 남쪽 군산시에서는 17일부터 4일 동안 철새축제를 연다. 또 가창오리의 최남단 행선지인 땅끝 해남에서도 가창오리의 날갯짓을 감상하는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겨울 동안 한반도에서 살다가 봄이 오면 시베리아로 날아가 번식하는 가창오리는 길이 약 49cm(부리에서 꼬리 끝까지 길이)의 작은 철새다. 수만 단위로 무리를 짓는 것도 맹금류로부터 작은 몸뚱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바로 이런 습성 때문에 군무(群舞)가 연출되는 것인데, 한반도는 그 장관을 관찰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번식기에는 제각각 흩어지기 때문이다.

가창오리는 낮엔 물 위에서 잠을 자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조류다. 해질녘 떼지어 비행하는 것도 먹이 활동을 나가기 전, 일종의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수가 운집해 있어도 우두머리새가 있게 마련인데, 군무의 연출 또한 대장이 앞장선다. 일단 대장 새가 속한 무리부터 일렬로 사열하듯 하늘로 날아오른다. 이어 또 한 무리의 새가 솟구쳐 오르고, 먼저 비상한 새들은 '토네이도'를 일으키듯 공중에서 빙빙 돌며 나머지 무리가 떠오를 때를 기다린다. 수면에 떠 있던 새가 모두 비상하면 사위는 이제부터 새의 세상이다. 보자기를 덮은 듯 검은 군단이 하늘을 점령하나 싶더니, 이내 하늘에 벌 모양, 물고기 모양 등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 이런 가창오리의 군무는 짧게는 3분, 길게는 20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군무가 진행되는 동안 새떼가 머리 위로 바짝 지나갈 때는 '두두두두' 탱크 소리가 나기도 한다. 이 때 깃털에 묻은 물방울이 일제히 떨어져 아래 있던 사람은 물폭탄을 맞기도 한다. 가창오리 군무에 익숙한 이들은 이때를 "자연이 주는 오르가슴"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장관을 구경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일껏 현장을 찾았다가 뚝방에서 낮잠 자는 새만 보고 가는 일이 흔하다. 신비한 자연의 조화를 목도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수다. 가창오리는 해가 떨어지기 전엔 날지 않기 때문이다. 비상 시간도 들쭉날쭉하다. 보통 추운 날은 일찍 날고 따뜻한 날은 좀 늦게 난다. 날이 따뜻하면 전날 먹이를 배불리 먹어 일정이 느긋한 것이다. 시간과 방향을 잘 예측했다 해도 철새가 머리 위로 날지 않으면 멀찍이서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때는 준비한 망원렌즈로 군무 촬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충남 서천군과 전북 군산시의 경계를 이루는 금강 하구 남쪽은 가창오리 군무를 100m 안팎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특히 군산시 철새조망대에서 동쪽으로 6km 떨어진 '나포십자들' 둑방 부근이 최적지다.

금강 하구 탐조 지역은 일정한 가이드 라인이 없다. 마음껏 새를 쫓아다닐 수 있는 탐조객에게는 행운이지만, 이 새가 희귀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한 새의 수면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든든한 옷차림도 필수다.

◆여행정보

가창오리는 천수만과 금강 유역, 해남에 각각 퍼져 있지만 먹이가 많은 금강 유역에 가장 오래 머무른다. 군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200~300㎜ 망원렌즈가 꼭 필요하다. 해가 진 뒤라 노출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감도(ISO)를 최대한 높여 주고 삼각대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군산 나포십자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군산IC에서 차로 5분 거리, 아주 가깝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금강하구둑' 이정표가 보인다. 군산시청 063-453-7213.

글=김영주 프라이데이 기자 <humanest@joins.com>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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