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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위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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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장혁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임장혁 정치부 차장·변호사

“전환적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어 성장을 회복하고 세계 경제를 선도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24일 중앙포럼 기조연설에서 한 말이다. 이 후보는 “위기는 기회다”는 개인적 신조를 지난 7월 1일 출마 선언 때부터 캠페인 메시지의 뼈대로 삼고 있다.

위기 담론은 ‘제왕’을 꿈꾸는 이들의 단골메뉴다. 위기감은 권력 집중의 심리적 전제일 수 있다. 2007년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2012년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도, 2017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도 출마선언에서 나라의 ‘위기’를 거론했다.

이 후보의 출마선언문에는 ‘위기’라는 단어가 16번 나온다. 팬데믹과 그 파생 혼란이라는 객관적 위기와 자신의 스트롱맨 성향이 맞물리는 게 유리하다는 계산에 따른 것일 테지만 이 후보의 위기론은 별나다. 위기 서사가 사회적·정치적 성장사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김회룡기자

김회룡기자

소설가 A씨가 실 저자라고 알려진 『인간 이재명』에는 소년공 시절부터 그가 돌파해 온 위기들이 숨가쁘게 이어진다. 연마기에 손목이 박살나 공장일을 그만둘 위기, 아버지의 반대로 중졸 검정고시를 포기할 위기 등등. 비주류라는 핸디캡과 숱한 구설을 딛고 성남시장과 경기지사에 당선된 그에게 “위기는 기회”라는 말은 수사가 아닌 경험칙에 가깝다. ‘탄소 0 사회’도, 미·중 갈등도, 심지어 팬데믹도 그에게 ‘기회’로 보이는 이유다.

그런 경험칙에 균열이 난 건 최근이다. 후보 경선 중반이후 불거진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나의 성과와 실력을 홍보할 기회”라고 인식한 게 패착이었다. 기회로 반전되기는커녕 위기는 커지고 장기화됐다. 지난 20일에야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도 ‘내가 깨끗하면 됐지’ 하는 생각으로 많은 수익을 시민들께 돌려드렸다는 부분만 강조했지, 부당이득에 대한 국민의 허탈한 마음을 읽는 데 부족했다”는 반성문을 SNS에 올렸다.

이후 열흘째 이어 온 이 후보의 반성이 아직 닿지 못한 지점은 “위기는 기회”라는 경험칙 자체다. 인생에서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마법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위기는 어떤 몸부림에도 실패나 고난으로 이어지곤 한다. 위기에 처한 다수 국민이 “위기는 기회”라고 외치는 후보에게 아직 듬직함보다 불안함을 먼저 느끼는 이유가 어쩌면 ‘모든 위기=기회’라는 등식을 강변하는 모습 자체에 있다. 여기에 공감하기엔 국민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팬데믹 같은 불확실성 가득한 위기들은 단칼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어떤 위기엔 돌파가 아니라 관리가 최선의 응전이라는 것, 어떤 이의 기회는 다른 누군가 겪는 위기의 대가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