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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해장국 헌장 우리는 대한민국 속풀이를 위해이 땅에 태어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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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배기에 담겨야 제 맛이 나는 음식. 이왕이면 귀가 살짝 떨어진 질그릇이 더 어울리는 음식.뜨거운 김이 올라와야 제멋인 음식. 그래서 새벽 공기를 마시고 먹어야 더 맛있는 음식.별 반찬 없이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 잘 익은 깍두기가 있다면 바닥까지 보고 마는 음식.혼자 먹어도 눈치 주는 사람 없는 음식. 그래도 여럿이 함께 먹으면 더 맛난 음식.술 마실 때 안주로도 먹을 수 있는 음식. 그러곤 다음날 속풀이한다고 또 먹는 음식.

바로 대한민국 어딜 가도 만날 수 있는 해장국입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해 그런지 잘난 점이 더 돋보이네요. 그렇다고 못난 점이 있나요. 서양식 레스토랑처럼 깔끔하지 못한 식당 분위기?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요. 그 정도는 인간미가 넘치는 공간으로 이해해 주면 안 될까요? 그것이 어렵다면 5000원짜리 한 장으로 빵빵한 배를 만들어 주는 걸 감안해 애교로 봐주자고요. 이것저것 잘난 점을 나열하다 보니 한때 짝 찾아 헤매는 젊은 남자들의 애창곡이었던 변진섭의 '희망사항'이란 노래가 떠오르네요. 만약 그 노래의 주제가 여성이 아닌 음식이었다면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랑 사랑을 나누며 먹고 싶은 해장국'이 됐을 겁니다.

이런 해장국을 우리가 흔히 '술 마신 다음날 먹는 속풀이 음식'으로만 받아들이는 건 슬픈 일입니다. "해장국은 한국 외식 문화의 첫걸음이 된 음식입니다."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정혜경 교수(아래 사진 맨 왼쪽)의 얘기입니다.

외식이란 개념이 따로 없던 고려.조선 시대에는 주로 술을 만들어 병에 담아 파는 병술집이 있었고, 그것이 식사 겸 안주가 되는 해장국을 끓여 파는 주막(주점)으로 변화하면서 우리나라 음식점의 효시가 된 것이라네요.

사실 해장국이란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리지만 재료에 따라 종류가 참 많습니다. 청진동 해장국 골목엔 선지국, 양반 마을인 전주엔 콩나물국, 피난민이 많이 살던 부산엔 돼지국밥, 화개장터로 유명한 섬진강변엔 재첩국, 충청도 내륙지방엔 올갱이국, 추운 강원도 산간지방에선 북어 대가리를 두들겨 끓인 북엇국이 각각 왕초 노릇을 하고 있지요. 지방마다 지역특산물을 이용해 독특한 해장국 문화를 만들어 온 것입니다. 이 가운데는 영양적으로 부족함이 없어 완전음식에 가까운 것도 있고, 체내 생리 활성을 돕는 기능성 음식도 있답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다이어트식도 있어요. 해장국 한 그릇에 담은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지요.

술안주로 먹고 술독 푸는 데도 먹다 보니 이런 저런 애환으로 가득한 대한민국 해장국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가이드는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이은경.최상희.홍지남 학생(사진 오른쪽부터)들입니다. 정혜경 교수와 함께 가칭 '대한민국 해장국 열전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전국 각지의 해장국 현장을 두루 돌아봤습니다.

<부산.전주.하동>글=유지상 기자<yjsa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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