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승진연한 없애고, 사내 FA 도입한다 “이재용식 ‘인재 초격차’ 전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4일 미국와 캐나다 출장을 마치고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4일 미국와 캐나다 출장을 마치고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스1]

삼성전자가 직급별 승진 연한을 없애고, 인사고과 때 동료평가제를 도입한다. 이러면 30대(代) 나이에 국내 최고 기업에서 ‘별’(임원)을 달 수도 있고, 40대 최고경영자(CEO) 탄생도 가능하다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보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겠다는 ‘이재용식 인사 혁신안’이다.

승진 연한 폐지…30대 임원, 40대 CEO 가능

삼성전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미래지향 인사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29일 밝혔다.〈11월 12일 본지 단독 보도〉 지난 2017년 기존의 승진 단계를 7단계에서 4단계로 단순화하고, 호칭을 ‘프로’ 또는 ‘님’으로 바꾼 지 5년 만의 큰 변화다. 이번 개편안에서 삼성은 승진(승격)부터 양성, 평가 등 모든 인사 프로그램을 확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우선 나이와 상관없이 인재를 중용한다. 현재 CL(커리어레벨)1에서 CL4에 오르기까지 각 8~10년인 직급별 승진 연한과 승급 포인트를 폐지한다. 대신 성과와 전문성을 검증하는 ‘승격 세션’을 도입한다. 이러면 우수한 인재가 근무 연차와 관계없이 발탁되면서 연공서열 문화 파괴가 가능해진다.

부사장·전무를 부사장으로 통합하는 등 임원 직급도 단계를 축소한다. 삼성 관계자는 “상무가 실무 임원에 가깝다면 전무 이상은 의사결정을 하는 ‘CEO 예비군’으로 설정하고, 그 단계를 줄여 더 신속 과감한 승진이 가능한 구도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만 60세인 정년 이후에도 근무할 수 있는 ‘시니어 트랙’ 제도를 도입한다.

유연한 기업문화 확산을 위해 ‘디테일’도 강화했다. 인트라넷에 표시되는 직급과 사번 정보를 없애고, 매해 3월 공개하던 승격자 발표도 따로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호칭할 때는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사내 소통 원칙을 정했다.

이재용의 ‘뉴삼성’ 인사제도 밑그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재용의 ‘뉴삼성’ 인사제도 밑그림.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동료평가제 도입 ‘신선’ vs ‘우려’ 교차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한 젊은 층)의 호응을 얻기 위한 인재양성 방안으로 삼성은 이번에 ‘사내 FA(자유계약) 제도’를 제시했다. 한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직원이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또 국내·해외법인 간 교환 근무를 하는 ‘STEP(Samsung Talent Exchange Program) 제도’를 신설해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키울 계획이다.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에 몰입하도록 주요 거점에 공유 오피스를 설치하고, 카페·도서관형 사내 자율근무존을 마련하는 것 역시 인재양성 방안의 하나다.

인사고과도 완전히 새롭게 개편한다. 현행 상대평가 방식에서 성과에 따라 누구나 상위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로 전환한다. 동기 부여를 위해 꾸준히 고성과를 받는 직원에게 샐러리캡(연봉총액상한제)을 넘어서는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삼성전자 측은 “다만 최상위 평가는 기존처럼 10% 이내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성과관리 개편에서는 ‘동료 리뷰’ 도입이 눈에 띈다. 삼성전자는 자칫 인기투표가 전락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우려해 당분간 등급 부여 없이 서술형으로만 평가하게 하겠다고 밝혔다. 부서장과 업무 진행에 대해 상시로 협의하는 ‘수시 피드백’ 제도도 도입한다.

이재용 ‘뉴삼성 비전’의 이정표 될 듯 

재계는 이번 삼성의 인사 개편에 대해 이 부회장의 제시하는 ‘뉴삼성’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기술뿐 아니라 인재 양성에서 초격차를 지향하는 이 부회장의 고민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며 “선대인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인재제일’ 철학을 이어받은 이 부회장이 ‘뉴삼성’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조직문화와 인사제도 혁신이 필수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신인사제도의 목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식(式)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으로 변화 가속화, 임직원의 몰입과 상호협력 확대, 성과를 통한 더 뛰어난 인재로의 성장 등이다. 이런 목표에 맞게 회사는 개편을 예고하면서부터 노사협의회, 노동조합, 조직문화 담당자 등 1000여 명의 의견을 청취해 개편안에 반영하겠다고 강조해왔다.

다만 사내 반응은 엇갈렸다. 사내게시판에는 “직급과 사번을 삭제하는 것은 좋다” “고과 돌려막기, 진급자 챙겨주기 등이 없어질 것 같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동료평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아니냐” “정해진 연봉으로 동료를 평가하면 거의 ‘오징어게임’이다” 같은 부정적 글이 올라왔다. 삼성전자의 4개 노동조합은 지난 23일 성명을 통해 “무한경쟁과 불공정한 문화를 강화하는 개악안”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에서 면담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지난 22일(현지시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과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에서 면담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혁신 내용보다 변화 의지 중요”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정보기술(IT) 기업으로 인력이 유출되고, MZ세대 직원의 소통 욕구가 커지면서 위기의식이 반영된 듯하다”며 “사내 FA, 절대평가 확대, 패스트 트랙 강화 등은 글로벌 트렌드”라고 평가했다. 이어 “혁신의 내용을 넘어 노사 모두 처절하고 절실한 글로벌 환경에 대해 공감하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임원 직급 단순화, 동료평가 등은 국내 다른 기업에서 먼저 시도한 사례가 있다”며 “삼성은 이제 시작 단계지만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