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개편부터 투자 낙점까지…‘이재용 시계’가 빨라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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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북미 출장을 위해 14일 오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먼저 캐나다에 있는 삼성전자 인공지능(AI) 연구센터를 방문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파운드리 공장 부지 등에 대해 최종 조율할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북미 출장을 위해 14일 오전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먼저 캐나다에 있는 삼성전자 인공지능(AI) 연구센터를 방문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파운드리 공장 부지 등에 대해 최종 조율할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

삼성의 ‘경영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외부 활동을 자제하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조금씩 보폭을 넓히면서다. 그는 지난달 25일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1주기 때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함께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지난 11일엔 삼성전자가 대대적 인사제도 개편을 예고했다.

글로벌 현장 행보 재개  

해외 현장경영 행보도 재개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14일 오전 8시 김포공항에서 전세기를 이용해 출국했다. 행선지는 캐나다·미국 등 북미 지역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매주 목요일 삼성물산 합병 의혹 재판에 출석 중인 가운데, 마침 수능시험일(18일)에 휴정이 예고돼 출장 기간은 열흘 안팎이 될 전망이다. 조만간 투자 현안이나 신성장 동력 확보 관련해 ‘뉴스’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삼성전자 인공지능(AI) 연구센터를 거쳐 미국 보스턴 등을 찾을 예정이다. 미국 방문 중에는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부지를 최종 낙점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뉴삼성의 당면 과제.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이재용 뉴삼성의 당면 과제.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5년 만에 美 출장…현안 수두룩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지난해 10월 네덜란드·스위스·베트남 방문 이후 13개월 만이다. 미국행(行)은 2016년 선밸리 컨퍼런스 참석 이후 5년 만이다. 삼성에 따르면 그는 2018년 유럽·북미·중국·일본·인도·베트남, 2019년에는 중국·아랍에미리트·인도·일본·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활발하게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하지만 지난 8월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엔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지난 9월 김부겸 국무총리와 청년 일자리 창출 논의 참석이 유일한 공식 행사였다.

그는 지난 3개월간 주로 코로나19 백신 확보, 반도체 투자 검토 등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위탁생산하는 코로나19 백신의 조기 국내 도입을 위해 백신 개발업체인 미국 모더나 최고경영진과 협상 등 ‘물밑경영’이 지난달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모친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과 경남 양산의 통도사 등을 방문한 사실이 일반인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이번 북미 출장 중 핵심 현안으로는 미국에 지을 예정인 파운드리 공장 부지 결정이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 17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증설 계획을 밝혔다.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모습.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모습. [사진 삼성전자]

최종 후보지로 텍사스주 테일러시와 오스틴시가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가운데 뉴욕주, 애리조나주 등지의 총 5개 도시가 물망에 오른다. 삼성은 아직 최종 결정을 발표하지 않은 사태다.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은 이날 김포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여러 파트너를 만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전문가들은 전망은 엇갈린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데다 경쟁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상태라 (최종 후보지가) 이미 어느 정도 결정했을 것 같다”고 관측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수십 조원 규모의 투자라 단번에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여러 파트너 만날 예정”  

자국 내 투자를 압박하고, 반도체 판매·재고 등 민감한 정보 제출을 요구했던 조 바이든 정부의 핵심 인사와 면담 여부도 관심거리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미국 정부에) 협력 의사를 밝히면서도 추가 지원을 요청하는 의견도 내놓지 않겠느냐”며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한국 정부와 사전에 소통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미국의 반도체 관계자를 만나느냐는 질문에 “(기자들이) 휴일에 많이 나오셨다”고만 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둘째)이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반도체 장비업체 ASML를 방문해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ASML은 반도체 노광장비 전문 업체로 극자외선(EUV) 장비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곳이다. 이 부회장은 이곳에서 피터 버닝크 CEO 등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둘째)이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있는 반도체 장비업체 ASML를 방문해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ASML은 반도체 노광장비 전문 업체로 극자외선(EUV) 장비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곳이다. 이 부회장은 이곳에서 피터 버닝크 CEO 등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 삼성전자]

코로나19 백신 관련한 ‘후속 성과’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모더나 관계자 면담 여부를 묻자 이 부회장은 “(모더나 본사가 있는) 보스턴에도 갈 것 같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서는 모더나와 기술협력 강화, 생산 규모 확대 등이 논의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캐나다 AI센터 찾아 신사업 챙길 듯

미래 사업도 챙길 예정이다.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AI다.

이 부회장은 2018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재판 때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첫 해외 행보로 AI 역량 확보를 위한 유럽·북미 출장길에 올랐다. 그해 AI와 5세대(5G) 이동통신, 전장부품 등을 미래사업을 선정하며 18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출장에서 AI 경쟁력 확보를 위한 파트너 탐색, 인수합병(M&A) 검토 등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모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지난 1일 경남 합천군 해인사를 찾아 방장 스님 퇴설당에서 차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해인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모친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지난 1일 경남 합천군 해인사를 찾아 방장 스님 퇴설당에서 차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 해인사]

삼성전자의 ‘변화’는 앞서 인사제도 혁신 방안에서도 감지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일 사내 게시판에 내년 도입 예정인 ‘인사제도 개편 사전 안내’를 공지했다.

내부에서는 2017년 기존 7단계에서 4단계로 단순화한 직급을 하나로 통합하고, 발탁 승진이나 고과평가 혁신 등을 담은 내용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임직원 수가 11만 명 이르는 ‘항공모함’ 같은 조직을 다독이면서, 수평적 조직문화 조성을 위한 혁신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로 삼성전기는 올해 초부터 삼성 계열사 중 가장 먼저 사내메신저·이메일·녹스(인트라넷)·명함 등에서 직급 표시를 모두 없애고 ‘프로’로 통일한 바 있다.

인사, 제도 개편 앞두고 긴장감 고조 

청년 고용이나 준법경영 확대 같은 사회적 책임 프로그램도 늘릴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지난달 앞으로 3년간 청년 일자리 3만 개를 창출하고, 4만 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1주기 때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새로운 삼성을 만들기 위해, 이웃과 사회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라며 “이제 적극적 M&A 등을 통해 정체 위기에 놓인 삼성에 변화를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삼성은 이 부회장의 본격적 컴백으로 세대교체와 조직 개편 등을 통해 조직의 활력과 긴장도를 불어넣는 게 급선무”라며 “특히 AI·파운드리 등 미래 사업에서 과감한 행보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편 오는 19일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34주기다. 일부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날 경기도 용인 선영에서 추도식을 주재할 것으로 보고 귀국 시기를 이즈음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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