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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돈 버니 中 중시해야" 외교차관 이 말, 철 지났다 비판 왜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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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박람회. 연합뉴스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관련 박람회. 연합뉴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중국 시장의 변화

국민의힘은 지난 17일 ‘미국의 안방에서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한 대한민국의 외교 차관은 깊이 성찰하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포럼에서 중국과 관련해서 한 발언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논평은 “최 차관은 미ㆍ중 경쟁에 대한 한국의 입장에 있어 ‘중국과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미 고위당국자들과 대놓고 엇박자를 내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최 차관이 한ㆍ중의 무역 규모가 한국과 미국, 한국과 일본의 무역량을 합친 것보다 크다고 강조한 것은 본인의 신분을 잊은 ‘비외교적’ 언사의 극치”라고 밝혔다.

동맹에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비판의 지점이 다소 빗나갔다. 중국이 한국에 중요한 외교적 상대임은 엄연한 사실이고, 아무리 한ㆍ미 동맹이 중요해도 미국 안방이라고 그 사실조차 꺼내지 못할 정도로 말을 삼갈 필요는 없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5일(현지시간)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함께 워싱턴에서 한미전략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15일(현지시간) 한국국제교류재단(KF)이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함께 워싱턴에서 한미전략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사실 최 차관의 발언에서 의아했던 건 중국이 중요한 파트너라고 역설하는 이유였다. 그의 정확한 발언은 이랬다.
“다른 국내적 정책과 마찬가지로 외교정책 역시 한국 시민, 즉 중산층의 수요와 이해를 충족해야 한다. 한ㆍ중 간 무역 규모는 미국,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다. 우리는 그로부터 돈을 벌어들인다. 큰 흑자를 낸다. 그리고 우리의 시민들,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이를 통해 시장에서 이익을 본다. 이를 무시해선 안 된다.

중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기회가 이유라는 건데, 이미 철 지난 안미경중(安美經中ㆍ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식 사고인 데다 급변하는 중국 시장에 대해 정부가 과연 어떤 분석과 접근을 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었다.

최 차관은 또 “동시에 우리는 공급망 회복력 문제, 대중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에 대해 우려한다. 상호의존도가 높아지는 데 따라 발생하는, 우리뿐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상황은 훨씬 복잡하고, 진단 역시 더 정교해야 한다.

우선 수치를 보자. 대중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무역 수지는 최근 들어 꾸준히 줄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3년 약 628억1662만 달러였던 중국 무역 수지는 지난해 236억8080만 달러로 뚝 떨어졌다. 올 1~10월 무역 수지는 211억6930만 달러다. 사드 보복이 이뤄졌던 2016년(약 374억 5278만 달러)과 2017년(약 442억 5988만 달러)보다도 악화했다.

또 한국은행에 따르면 대중국 경상수지 흑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11년 사이 최저치를 기록했다. 대중국 경상수지 흑자는 2019년 259억6000만 달러에서 2020년 169억7000만 달러로 줄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여기엔 미ㆍ중 간 무역분쟁 등 국제적인 환경도 영향을 미쳤지만, 중국 시장 자체가 변화 중이라는 점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국이 ‘제조 2025’를 목표로 제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제조 2025는 양에 치중했던 기존의 노동ㆍ자원 집약형 제조업을 기술집약형의 질 높은 제조업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게 목표다. 중국은 이를 위해 정보통신(IT)기술에 집중하고, 기술과 부품의 대외 의존도도 줄이고 있다.

미ㆍ중 간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과학기술의 자립ㆍ자강을 선언한 것이나, 내수 성장에 집중해 국제 교역에서도 경쟁력 우위를 점하는 쌍순환(이중순환)을 추진하는 것도 우리에 큰 경제적 기회를 제공했던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성격이 달라질 것이란 예고다.

실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올해 펴낸 ‘중국의 통상환경 변화와 국가별 상품 간 수출 대체 가능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경제ㆍ산업 측면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에서 산업 고도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던 품목들이 중국산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갈수록 커진다는 뜻이다.

이런 변화가 한국산 제품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 결과 이는 기술 수준이 낮은 수출품에만 타격을 주는 게 아니었다. 중국이 전략적 신흥산업이나 과학기술 혁신에 주력하며, 한국의 주된 대중 수출품인 신재생에너지ㆍ배터리ㆍ반도체ㆍ전기차 관련 제품까지 중국산이 대체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중국의 한 자동차 제조 공장. 연합뉴스

중국의 한 자동차 제조 공장. 연합뉴스

 게다가 우리에겐 사드 보복이란 아픈 경험까지 있다. 정치적 이유로 중국 시장이 얼마든 닫힐 수 있고,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목격했다. 그런데도 중국만 믿고 있다가 요소 대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정부가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많은 돈을 번다” “흑자가 크다”며 우리 중산층을 위해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최 차관의 발언이 다소 단선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중국은 이제 한국의 수출 경쟁국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15일 니어재단이 주최한 ‘새로 그리는 다음 10년, 한국의 외교ㆍ안보 전략 지도’ 정책 세미나에 참여한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이런 포인트를 정확히 짚었다.
중국은 이제 4차 산업혁명에 집중하는데, 우리의 접근법은 여전히 1992년 수교 당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그때처럼 중국 시장은 지속적 발전을 위해 절대 잃어선 안 된다는 생각만 하니 소극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시장은 크게 변했는데, 우리의 중국 진출 전략은 30년간 바뀌지 않았다.”

정부가 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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