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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이상한 나라의 빈대떡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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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 1943년에 나왔다는 유행가 ‘빈대떡신사’의 가사다. 요즘이라면 무전취식으로 경찰을 부를 일이지만 당시는 사적 폭력으로 분풀이를 하던 시대였나보다. 그런데 저 ‘양복’과 ‘신사’는 무엇일까.

18세기 민주주의라는 이상한 제도의 등장 전까지 세상은 왕족과 귀족이 다스렸다. 권력은 세습받은 토지에서 나왔다. 선택된 핏줄의 신분들은 사치와 장식을 통해 하늘이 점지한 자신들의 차별성을 과시했다. 복장과 건물에 화려한 장식이 덮였으니 이런 걸 후대의 사회학이 호칭하는 것이 과시적 소비다.

무채색 양복은 자본주의적 복장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금욕적 풍경
북한 김정은이 입기 시작한 양복
봉쇄완화를 요청하는 시각적 표현

세상이 뒤집혀서 자본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잡았다. 유럽의 이야기다.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버무려진 시기이고 이들은 개신교 정신으로 무장했다. 막스 베버의 이야기대로 돈을 버는 것은 탐욕 추구가 아니고 성실 근면의 결과일 뿐이라는 가치관이다. 그래서 부르주아지, 즉 자본가들은 스스로 청빈함을 표현했다. 무채색의 장식 없는 옷을 입되 넥타이가 유일한 과시적 소비 표현이었다. 양복이 등장한 것이다.

귀족들은 복장 외에 ‘에티켓’이라는 행동규범을 통해 동류 의식을 확보하고 다른 계급과 차별화했다. 자본가들은 ‘문화’라는 단어를 전용해서 자신들을 결속하고 차별화했다. 특히 금욕적이고 추상적인 가치의 대상들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보이지 않는 재료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음악이 정점의 가치였다. 귀족들은 흥겹게 대화하며 궁정악단의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음악당이라는 건물을 만들어 모였다. 청중도 연주자도 무채색 옷을 입었다. 연주회에서 기침도 박수도 억압받았다. 궁정악단 대신 피아노를 집에 들여놓았고 집 크기에 맞춰 업라이트 피아노가 등장했다. 고전음악이 완성되었다. 흰 벽의 미술관도 등장했다. 거기 걸린 캔버스에서 구체적 형상이 탈각되고 물감자국들이 남았다. 추상미술이라 불렀다. 자본가들이 건축주가 되고 개신교 배경의 건축가들이 세운 건물에도 장식이 사라졌다. 흰 상자만 남은 양식을 건축사에서 지칭하는 단어는 모더니즘이다. 분야별 단어는 달라도 깔린 가치관은 같다.

개신교도들이 세운 국가가 미국이다. 가톨릭교도 대통령은 케네디가 처음이고 바이든이 두 번째다. 개국 역사화 등장인물들은 모두 검은 양복의 신사들이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대중화된 자동차도, 미국이 바꿔놓은 악기 피아노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물질적 탐욕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므로 재산의 사회 환원을 위한 재단설립이 시작된 곳도 미국이다. 귀족들은 적선했고 자본가들은 기부했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자발적 청빈을 노동자들의 강요된 궁핍과 차별화했다. 그들은 공장이라는 건물을 만들고 노동자들에게 유니폼을 입혔다. 군대에서 시작된 유니폼은 피아 식별의 도구면서 계급화된 조직표현 방법이었다. 노동자들이 유니폼을 입는 것은 따라야 할 행동규범이 있다는 의미였다. 노동자들은 명찰을 달고 규범복종 여부를 상시 검증받아야 했다. 자본가들의 고상한 ‘문화’와 달리 노동자들이 향유하는 것은 저급하고 쉬운 ‘대중문화’로 호명되었다. 고전음악과 유행가가 차별화되어 ‘빈대떡신사’는 아무나 따라 부르는 대중가요였다.

구단주는 양복을 입지만 연봉 계약한 선수는 유니폼 입고 경기 규범을 따라야 한다. 노골적 귀족놀이인 골프에서 상금 받는 선수는 에티켓 따라 입지만 월급 받는 캐디는 유니폼을 입는다. 비행기가 땅콩 때문에 회항했던 사건의 등장인물은 평상복의 자본가와 유니폼의 노동자였다. 이때 쟁점은 땅콩 제공방법의 규범이었다. 결국 규범해석권은 자본가가 가졌고 비행기는 회항했다. 세월호 선장은 유니폼을 입지 않고 배를 몰았고 침몰하는 배에서 먼저 탈출했다. 그날 부스스한 대통령이 굳이 노란 잠바를 입고 나온 것은 대한민국이 위기 상황에서 규범대로 작동 중이라는 시각적 강변이었다. 코로나시대 내내 보이는 질병관리청장의 노란 잠바도 규범집행을 통한 국가시스템 작동의 시각적 표현이다.

기괴하게 이번에는 ‘조선노동당 총비서동지’가 양복을 입기 시작했다. 신년사에서나 드물게 입던 옷이다. 사회주의 세습왕조국가 북한의 양복은 사실 복식(服飾) 모순이다. “인민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백두혈통의 천출명장”은 그간 인민복으로 권력 정당화를, 두발상태로 혈통 차별화를 동시에 가시화해왔다. 그가 갑자기 꺼내입은 양복은 이제 북한이 정상 국가 대열에 끼고 싶다는 의사표현이겠다. 봉쇄완화 적극 요청의 묵언 메시지로 읽히는 것이다.

영양 부족이 확연한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갱도에서 석탄 캐고 건설장에서 등짐 진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의 현지 지도장에서 그들의 환호도 여전히 열렬하다. 그런데 벌여놓은 “주체적 건축미학의 건설투쟁장” 곳곳이 지체나 중단 상태다. 양복 입은 ‘빈대떡신사’의 나머지 가사가 등장할 때다.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인민들이 빈대떡 부쳐 먹을 여유마저 아쉬운 국가, 그게 북한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