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민 논설실장
“한국 정부의 무능과 위기관리 능력 부족이 원인이다.”
중국 매체들이 쏟아낸 요소수 사태 비판 기사 중 일부다. 자신들이 사태를 촉발해놓고 한국 정부에 뒤집어씌우며 조롱까지 하니 부아가 치민다. 어쩌면 무능한 위정자들이 빚은 ‘정부의 실패’임을 부인할 수 없기에 더 화가 나는 것이리라. “처음엔 비료 문제 정도로 생각했다”니 말해 무엇하랴.
여당후보 공약에 산업·여가부 관여
대통령 “선거 엄정 중립 약속” 위배
여당-기재부 갈등에도 청와대 뒷짐
92년 ‘현승종 중립내각’ 벤치마킹을
최근 한 달 새 국민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또 한 번 겪었다. 정권이 국민 먹고사는 문제에 이토록 둔감하다는 데 새삼 놀랐고, “비싼 수업료 치렀다”더니 수사 (월성원전 사건) 피의자를 사태 수습의 사령탑(경제수석)에 앉히는 걸 보곤 경악했다.
국민이 요소수 사태로 노심초사하던 이 시기, 정부는 엉뚱하게 종전선언에 매달렸다. 우리의 대통령은 세계 정상들을 만나려 유엔으로, 로마로, 글래스고로 뛰었지만 요소수 때문이 아니었다. 외교장관은 심지어 당사국인 중국 외교부장과 단둘이 만나서도 요소수는 입 뻥끗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요소수는 안중에 없고 종전선언 성사가 급했던 거다.
2010년 중국과 희토류 분쟁을 벌였던 일본의 대응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당시 일본은 발빠르게 미국·유럽연합(EU)을 설득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중국의 제재가 ‘협정 위반’ 이란 판결을 끌어내 완승을 거뒀다. 이 바람에 희토류 가격이 폭락하자 중국이 결국 두손을 들고 말았다. 국익과 민생에 봉사하는 외교의 진가를 보여준 사례다. 사실 이런 거 하라고 외교부가 있고, 정부가 있는 것일 텐데 말이다.
물론 종전선언도 중요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영구 평화를 위해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임기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정권의 레거시 축적용으로 덤벼들 일이 아니란 얘기다. 당사자인 북한은 물론 미국·중국도 시큰둥해 결실을 보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야당이 반대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비핵화 조치없는 정치 선언”이 몰고 올 부작용을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밝혔고, 상당수 국민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밀어붙인다면 어떤 의도가 있어서일 테다. 혹여 “누구도 못 벗어날 틀”에 가둬 대못 박기를 하기 위한 거라면 더 위험하다. 소모적인 이념 갈등과 진영 대결을 부추겨 권력 교체기 대선판을 아수라의 블랙홀로 빠뜨릴 수 있어서다. 떠나는 대통령이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이 불공정 선거 시비를 남기는 일이다. 위험한 불장난이 될 수 있다. 그러잖아도 하루가 멀다 하고 관권선거 의혹이 터져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에 이어 얼마 전엔 여성가족부 차관과 관료들이 민주당에 대선 공약 자료를 넘긴 혐의로 고발됐다. 정부가 여당 후보의 공약을 생산해내는 외주업체로 전락한 꼴이다. 그런데도 책임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다. 민주당 출신 의원들이 국무총리, 법무·행안부 장관등 선거 유관 부처를 장악하고 있고, 검찰·경찰·법원에 선관위까지도 여당 2중대 논란에 휩싸였다. 혼탁한 기류와 어둠의 장막 속에서 선거 중립과 공정 선거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재명 후보의 ‘3대 패키지 예산’을 둘러싼 민주당-기재부 갈등을 대하는 청와대의 태도는 이런 의심을 증폭시킨다. 기재부를 향해 “만행에 가깝다” “국정조사 사안”이라며 겁박하는데도 “청와대가 조정할 사안이 아니다”(이철희 정무수석)며 발뺌하기 바쁘다. 여당 후보가 자기 선거를 위해 나랏돈을 쌈짓돈처럼 쓰자고 덤벼드는, 명백한 관권선거 시도를 목격하면서도 뒷짐만 지고 있으니 해괴한 일이다. 숱한 “엄정 중립” 약속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약속은 지불하지 않은 부채”란 말이 있다. 약속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번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선까지 110여일이 남았다. 공정한 대선 관리를 담보하려면 선거중립 내각으로의 교체가 절실하다.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1992년 9월, 노태우 정부는 대선을 3개월 남겨두고 중립 선거내각을 전격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일면식이 없던 교수 출신을 총리(현승종)에 앉히고 법무·내무·정무 장관과 안기부장까지 바꿨다. 당시 정무수석이던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가 그를 천거했는데, 수차례 고사하던 현 전 총리는 “대선을 역사상 가장 공명정대하게 관리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느껴” 마음을 바꿨다고 훗날 회고했다. 현승종 내각은 깜짝 카드였지만 여야 두루 지지를 받았다. 당시 국회의 총리 임명동의안은 96% 라는 압도적 찬성(266명)으로 가결됐다.(반대 9명, 기권 1명, 무효 1명) 자칫 관권 부정선거 시비로 불행해질 뻔한 헌정사가 제 방향을 잡았다. “일절 관여않고 내각에 맡긴”(현 전 총리) 지도자의 결단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권력교체기, 다른 역대 대통령들도 대개 소속 정당을 탈당하거나 비(非)정치 내각을 꾸림으로써 중립 의지를 실천했다. 발걸음은 딴 곳을 향하고 있으면서 “믿어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무사히 건널 수 있는 강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