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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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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7년 전, 다중(多重) 전과 소년범에 대해 취재한 적이 있다. 만18세도 되지 않은 청소년이 어떻게 전과 20범 이상의 다중 전과자가 되는지 알고 싶어 시작한 취재였다. 그 궁금증은 ‘전과 5범 이상 소년범 1만 명 시대’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한 후 어느 정도 풀렸다.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교도소 등 교정시설이 대부분 범죄자를 수용·관리하는 수준에 그치고, 교정·교화라는 원래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서 다중 소년범이 양산됐다.

지난달 26일 전남 순천에서 위치 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훼손한 뒤 도주한 김모(26)씨 사건을 보면서 성범죄자 등 중대 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기 위해 운영하는 전자발찌 제도 또한 비슷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성범죄 등 전과 35범의 ‘고위험 보호관찰 대상자’였다. 이전에도 두 차례나 외출제한을 위반해 도주 12시간 전인 25일 오전 10시쯤 창원보호관찰소에 조사를 받으러 갔다. 하지만 김씨는 변호인을 대동해 조만간 다시 출석하겠다며 되돌아갔다. 이후 외출제한 시간인 25일 오후 10시까지 경남 창녕군 거주지로 복귀하지 않았다.

위치 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발목에 착용한 모습. [뉴스1]

위치 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발목에 착용한 모습. [뉴스1]

법무부는 지난 8월 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강윤성(56)과 마창진(50)이 도주한 사건을 계기로 ‘신속수사팀’을 설치했다. 하지만 대구 달성군과 경북 고령, 경남 합천을 거쳐 전남 순천으로 도망가는 김씨를 붙잡지 못했다.

김씨가 24시간 위치 추적이 가능한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데도 그랬다. 김씨가 전자발찌를 끊고 주로 택시·버스·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사흘간 영·호남을 활개 치며 돌아다닐 때도 신속하게 검거를 못 해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28일 오후 1시 13분쯤 경남 함양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김씨를 검거한 것도 신속수사팀이 아닌 경찰이었다. 법무부의 전자발찌 부착자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또 한 번 의문이 제기됐다.

김씨 같은 일이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건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전자발찌 부착자는 총 4577명. 반면 전자감독 인력은 306명뿐이다. 보호관찰관 1명이 관리해야 할 대상자가 22명이나 된다. 선진국이 1명당 10명 정도를 관리하는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하루빨리 인력을 확충해 전자발찌 부착자를 세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전자발찌가 범죄 예방의 만능이 될 수는 없다. 교정·교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전자발찌 관련 범죄는 언제든 재발할 수밖에 없다. 전자발찌 부착자는 보통 10~20년, 최장 35년까지 법무부의 관리 대상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자발찌를 ‘관리의 발목’이 아니라 ‘교정·교화의 발목’에 옮겨 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