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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공기 아닌 독가스…쉼 쉬기도 겁난다 - 스모그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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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을 비롯, 대도시의 대기오염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부산·대구·인천 등 주요도시의 아황산가스와 먼지는 이미 환경기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서울의 경우 문래 동을 포함한 몇 개 지역과 부산시 장전동, 대구시 대명동 등은 사실상 출입을 통제해야 될 만큼 그 오염도가 심각한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89년2월 현재 이들 지역은 52년 런던 대 참서 당시의 아황산가스 농도(0·3PPM)보다 높은 0·358PPM 이상씩을 기록했었다.

<출입도 통제해야>
환경처가 최근 발표한 「6월중 서울시내 대기오염도 현황」에 따르면 광 화학 스모그현상을 일으키는 오존의 측정치가 방이 동과 구로 동 지역에서 각각 여섯 차례와 두 차례씩 단기환경기준을 넘어서 시간당 최고 0·l35PPM과 0·102PPM을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86년 서울에 런던형 스모그현상이 나타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크게 주목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기오염 물질의 대부분이 아황산가스나 분진 등인 것으로만 인식돼 왔으나 오존이 환경기준을 초과할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사실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옥시단트」라는 화학 명을 가진 오존은 대기중의 탄화수소(HC)와 질소산화물이 광 화학 반응을 일으켜 생성되는 2차 오염물질이다.
옥시단트의 1시간 평균농도가 0·03∼0·3PPM일 때 운동선수들의 기록이 저하되며 0·03PPM의 오존농도가 8시간 계속되면 코와 목이 따갑고 lPPM은 견디기 힘든 정도이며 9PPM이상일 땐 중태에 빠진다.
이처럼 대기중의 복잡한 화학반응에 의해 생겨나는 옥시단트가 햇볕이 강하고 바람이 약할 때는 시정을 약화시키는 현상을 일으킨다.
따라서 맑게 갠 날인데도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대기가 뿌옇고 침침하며 탁한 느낌을 준다.
바로 이 같은 현상을 「광 화학적 스모그」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순한 안개와는 달리 습도 60%미만, 시정거리 10㎞미만일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자동차매연이 주범>
연기(Smoke)와 안개(Fog)의 합성어로 1905년 영국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이 스모그현상은 흔히 「런던형」과「LA형」으로 나눠진다.
런던형은 주로 가정용 난방이나 공장· 발전소용 석탄계열 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매연·아황산가스·분진 등의 영향으로 발생한다.
l952년 12월5일부터 9일까지 5일 동안 무려 4천여 명의 사망자를 냈던 런던 스모그 대 참서 대표적이다.
LA형은 자동차 배기가스와 같은 석유연료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과 탄화수소 등이 대기 중에 농축돼 있다가 자외선과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2차 오염물질인 과산화물, 즉 오존을 만들어 줌으로써 대기에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흐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광 화학 스모그」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LA형 스모그에 해당한다.
195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발견된 이 스모그로 1970년4월에는 LA부근 l백30만평 규모의 판다로사 소나무(직경60㎝·높이23m의 l백년 생)가 모두 고사하기에 이르렀다.
86년1월 서울에 런던형 스모그가 나타났다는 국립환경연구원의 발표가 있을 당시만 해도 LA형은 아직 우려할만한 상태가 아니라고 당국은 밝혔다.
광 화학 스모그현상의 주범은 자동차 배기가스. 90년8월말 현재 전국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3백7만6천대. 이 가운데 3분의1 이상인 1백13만2천75대가 서울에 몰려있다.

<측정위치 잘못선정>
자동차 1백만 대가 배출해내는 일산화탄소 배출량은 약 3천t에 달하고 이 같은 양은 2천4백 명을 동시에 사망시킬 수 있는 가공할 수치다.
우리 나라에서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 배기가스가 특히 심각하게 대두 돼 왔던 것은 경유가 휘발유보다 실제 가격 면에서 약 50%가량 싼 바람에 대부분 매연이 심한 경유를 선호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경유 차는 현재 봉고 차를 모함한 버스가 36만대, 화물차 86만대, 지프 3만대, 특수차 l만대 등 l백26만대에 이르러 전체차량의 40%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의 경유 차 비율은 3%이고, 일본이 13%인 점과 비교해 볼 때 자동차 배기가스로 인한 우리 나라의 매연실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질소산화물과 탄화수소 등 자동차 배기가스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키보다 낮은 위치에서 발생, 인체에 직접 영향을 주는 데다 호흡기를 통해 수만 종의 화학물질이 폐 속 깊숙히 침투한다는 점에서 건강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된다.
7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서울을 세계주요수도 가운데 아황산가스 농도가 가장 심한 도시라고 발표한 이후 환경당국은 83년부터 시울의 주요지점에 대기오염 자동측정기를 설치, 가동하기 시작했다.
37억8천여 만원의 예산을 들여 설치한 이 측정기는 그러나 대부분 위치선정이 잘못돼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5월 「환경과 공해연구회」(회장 김정욱 서울대환경대학원 교수)가 발표한 「서울지역 대기오염 자동 측정망의 현황과 문제점에 관한 조사연구」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내 20개 측정소 가운데 8개소의 위치가 「불량」, 7개소가 「양호」, 5개소가 「보통」인 것으로 나타났다.
광화문 측정소는 덕수궁 내 녹지대인 태평로 파출소 바로 뒤편에, 신림동 측정소는 시울대 학군단건물 옥상에, 잠실 측정소는 잠실 야구장내에 각각 설치돼 있다.
특히 광화문 측정소의 경우 86년 설치당시 흡입구를 덕수궁 숲속에 위치해 놓았다가 전문가들의 비판이 일자 88년부터 현재 위치인 태평로 파출소 옥상으로 옮겼었다.
대기오염 자동측정기의 또 다른 문제점은 대기오염현황을 나타내주는 전광판이 유명무실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서울시청 옆 대로변에 설치 돼 있는 전광판에서는 아황산가스·오존·먼지 등의 오염현황이 15초 간격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현황이란 글자 그대로 「현재」의 오염도가 아닌 「24시간 전」의 오염도를 나타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량통행이 가장 빈번한 광화문일대의 대기오염상태를 덕수궁 내 녹지대에서 측정한다는 것도 문제려니와 그나마 측정된 결과치가 24시간 전의 수치이고 보면 환경당국의 대기보전행정이 과연 누구를 위한 행정인가 극히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눈가림 식 행정 탓>
환경전담부처가 생긴지 10년이 넘도록 대기오염문제에 관한 한 이렇다할 개선책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눈가림 식 행정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일본 동경의 경우 환경 법을 제정한 67년에 연평균 아황산가스 오염도가 0·059PPM이었던 것이 10년 후인 76년에는 0·02PPM으로, 89년 말에는 0·008PPM으로 크게 개선됐다.
서울을 비롯한 국내 주요도시의 아황산가스 농도가 동경이나 워싱턴보다 10배 이상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석유와 연탄에서 배출되는 아황산가스를 줄이려면 석유의 경우 정유회사에서 원유 속에 들어있는 유황을 뽑아내는 이른바 탈황시설을 해야한다.
일본은 GNP 1천2백 달러이던 68년에 이미 탈황시설을 마쳤다. 그러나 우리는 GNP 5천 달러인 현재까지도 속수무책이다.
전체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중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86년 28·5%에서 87년 33·2%, 88년 34·5%, 89년 36·5%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환경처가 산출한 88년의 자동차 배기가스 량은 1백55만4천l백36t으로 차량 한대가 연간 lt에 가까운 오염물질을 뿜어낸 셈이다.
환경보전법 제20조에는 환경처장관이 정유공장에 대해 탈황명령을 내릴 수가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환경처가 이 같은 권한을 행사해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업자들 또한 법규준수에 소요되는 비용보다 벌금액이 훨씬 적어 벌금 쪽을 택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다.
서울시는 아황산가스의 오염원인 연탄 사용근절을 위해 올 들어 11만 가구의 가정연료를 LNG로 전환키로 하고 현재까지 4만2천6백가 구의 연료대체를 추진했다.
서울시는 또 2t이상 보일러를 사용하는 대형건물 37개소의 연료도 기존의 벙커C유에서 LNG로 바꿔 놓았으며 공급 배관망도 1백57㎞ 설치했다.
우리 나라의 아황산가스 기준치는 0·05PPM이고 미국과 일본은 0·03PPM이다.
70년대 이후 서울은 인구팽창·공업화정책·차량급증 등으로 광화문을 중심으로 한 반경 10㎞이내의 바위에는 이끼가 살지 못하는 숨막히는 도시로 변해버렸다.

<이끼조차 못살아>
아황산가스가 0·03PPM을 넘어서면 이끼류는 살지 못한다. 남산의 소나무도 아황산가스로 인한 솔잎혹파리의 번식 때문에 고사상태를 면할 수 없게 됐다.
우리 나라 전체인구의 4분의l이 밀집해 있는 수도 서울과 부산·대구·인천등 대도시를 보다 쾌적한 삶의 공간으로 바꾸기 의해서는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우선주의」에서 탈피, 「환경보전 우선주의」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연세대 정용 교수는 또 『저 유황유 공급과 LNG사용을 권장하기에 앞서 이에 대한 세제감면정책이 현실적으로 뒷받침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오염을 개선시킬 수 있는 지름길은 저공해 엔진의 개발과 탈황시설에 달려있다. 두 가지 모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건강을 담보로 「죽음의 독가스」를 언제까지고 무한정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대기중의 공기는「공기」가 아닌 「공기」라는 개념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글 김준범 기자
사진 양영훈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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