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준석 ‘후보’께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9일 심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맞짱토론을 했다. 두 사람이 ‘대장동 특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방을 벌일 땐 긴장감도 꽤 흘렀다. 이 대표가 “윤석열 검사의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의혹’까지 얹어서 (대장동·고발사주) 특검을 하면 어떤가”라고 공세를 펴면 송 대표는 “나중에 토론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며 예봉을 피했다. 송 대표의 말실수에서 빚어진 익살스러운 장면도 나왔다.
▶이 대표=“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정치적 입장이) 너무 급전환을 한다. 민주당의 철학에 맞는 후보인가.”
▶송 대표=“우리 이준석 ‘후보’께서….”
▶이 대표=“(손을 내밀며) 대표, 대표.”
▶송 대표=“아니, 아니(웃음) 죄송합니다. 이준석 대표께서 이재명 후보에 대해 신문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깊게 공부를 해보세요.”
송 대표는 이날 토론회서 이 대표를 향해 “이 후보”라는 말을 한번 더 했다. 이에 사회자가 송 대표에게 “일부러 (이 대표에게 이 후보라고) 하신 것 아닌가”라고 농담을 건네자 송 대표는 멋쩍은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날 토론회는 수도권에서 2.0%의 시청률(조사기관 TNMS)을 기록했다. 유튜브 채널에서도 약 24만명(누적 기준)이 시청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토론회를 주관한 방송사에선 ‘웬만한 드라마보다 시청률이 괜찮다’는 말을 들었다”며 “여건이 되면 TV토론을 더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싱하이밍 만난 宋, 크라켄 띄우는 李…“광폭행보”
지난 9일 토론회는 지난 7월 21일 시작된 이후 네 번째였다. 이에 “당 대표들이 대선을 앞두고 연이어 토론회에 나가는 건 이례적이다. 차차기 대선을 노리는 이들이 전례 없는 행보를 보이는 것”(박동원 폴리컴 대표)이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달 10일 이재명 후보로 민주당 본선 후보가 확정된 뒤 송 대표의 보폭은 이 후보만큼 넓다. 최근 꾸려진 민주당 중앙선대위에서 홀로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아 인선을 주도했다. ‘요소수 부족’ 사태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지난 7일 만나 도움도 청했다. 매번 이 대표에게 토론회를 제안한 것도 송 대표였다고 한다.
이 대표의 움직임 역시 송 대표만큼이나 활발하다. 윤석열 후보에게 지난 8일 대선 승리의 비책이 담긴 비단 주머니를 선물하는가 하면 2030 당원 탈당 사태를 두곤 윤 후보측에 맞선 입장을 여러 차례 페이스북에 올렸다. 오는 14일에는 포털·SNS 댓글 조작 감시 프로그램인 ‘크라켄’ 가동식을 연다. 그런 와중에 송 대표의 토론회 제안은 거절하는 법이 없다.
대선 후보 선출 뒤 관리모드로 전환하던 과거 당 대표와는 다른 두 사람의 움직임에 대해선 양당에선 ‘불가피론’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서울권 재선 의원은 “경선 초반 이 후보가 주춤하는 상황을 뚫을 사람은 경륜·능력 면에서 송 대표밖에는 없을 것”이라며 “차기 대선 승리에 자신의 명운이 걸린 송 대표 본인도 ‘어떻게 뒤에서 장기 말 놓듯이 앉아만 있을 수 있겠느냐’는 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도 “2030을 이해하고 공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대표가 유일하다. 그를 앞세워 대선에서 청년표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선 “이 대표가 토론회에서 송 대표에 공세를 펴며 당의 사기를 올리고 있다”(한 당직자)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컨설턴트인 박해성 티브릿지 대표는 “이 대표의 강점인 토론 능력을 극대화하는 건 유효한 대선 전략”이라고 말했다.
“대표가 후보의 정치적 공간을 잠식한다” 우려도
그러나 대선 후보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거란 걱정도 양당에서 공히 나오는 목소리다. 민주당 선대위의 한 본부장급 의원은 “자기 색깔이 강한 송 대표가 공개 행보를 반복하면서 이재명 후보로 모여야 할 시선이 분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송 대표의 한발 앞서나간 메시지에 대한 당혹감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송 대표가 지난달 중순 ‘이재명 당선은 정권교체’라고 하자 친문 지지층 반발이 커지며 ‘원팀’ 분위기가 더 흐려졌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윤 후보 측 관계자도 “이 대표가 (선거에) 부정적인 말들을 하면서 (SNS 등에서) 재양산되고 있다. 향후 후보에겐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대선은 후보 위주로 돌아가는 판인데 이 대표가 이를 망각한 것 같다”(당 관계자)는 날선 반응도 나온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는 “‘이재명도 정권교체’라는 인식이나 ‘20대도 윤석열’이란 흐름을 만드는 게 대선 승리를 위한 양당의 주요 과제라는 점은 분명하다”면서도 “지금과 같은 양당 대표의 적극 행보가 후보에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