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둥절 남극 펭귄 3000㎞ 밀려와 ‘미아’된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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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 인근 해변에 나타난 아델리 펭귄. 이 펭귄의 본서식지는 이곳에서 3000km 떨어진 남극 로스해다. [가디언 트위터 캡처]

10일(현지시간)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 인근 해변에 나타난 아델리 펭귄. 이 펭귄의 본서식지는 이곳에서 3000km 떨어진 남극 로스해다. [가디언 트위터 캡처]

뉴질랜드에 사는 해리 싱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아내와 남섬 남동부쪽 바닷가를 걷다 깜짝 놀랐다. 야생 펭귄 한 마리가 모래사장 위를 뒤뚱뒤뚱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펭귄은 환경이 낯선 듯 목을 길게 빼고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이후 서너 시간 더 지켜본 싱은 결국 구조대에 신고했다. 싱은 "펭귄이 좀 지쳐보였고, 웬일인지 바다로 향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그날 밤, 싱의 신고로 수의사와 함께 출동한 구조대원 토마스 스트라크는 펭귄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이 펭귄은 뉴질랜드에서 3000km나 떨어진 남극에 서식지를 둔 아델리(Adélie) 종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라크는 "신고를 받았을 때만 해도 아델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펭귄이 길을 잃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넘게 남섬에서 펭귄의 정착·재활 활동을 지원해 온 전문가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인익스프레시블 섬에서 번식하는 아델리 펭귄. [연합뉴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인익스프레시블 섬에서 번식하는 아델리 펭귄. [연합뉴스]

스터프 등 현지 매체는 뉴질랜드 남섬 크라이스트처치 남동부 캔터베리 버들링스 플랫 비치에서 아델리 펭귄 한 마리가 지역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고 12일 보도했다. 일명 '핑구'라 불리는 아델리 펭귄의 서식지는 남극 로스해다. 작은 펭귄 한 마리가 얼음물로 뒤덮힌 남극해를 건너온 것이다.

스트라크는 "펭귄 나이는 1~2살이고, 성별은 확실하게 알 수 없다"며 "혈액검사 결과 저체중과 탈수증이 있었지만 건강엔 이상이 없고 생선과 물을 섞은 죽을 먹였다"고 밝혔다. 구조대는 이 펭귄을 조만간 남섬의 뱅크스 반도 해변에 방사할 예정이다.

아델리 펭귄 한 마리가 남극 대륙에 도착한 한국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근처에 나타났다. [연합뉴스]

아델리 펭귄 한 마리가 남극 대륙에 도착한 한국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 근처에 나타났다. [연합뉴스]

최근 남극해 수온이 상승해 생존 위기에 처한 어린 펭귄이 뉴질랜드까지 떠밀려온 것으로 가디언은 추정했다. 수온이 높아지면 펭귄들의 먹잇감인 물고기는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간다. 이 때문에 어린 펭귄들은 치열한 식량 경쟁에서 밀려나 서식지에서 더 먼 바다까지 나가야 한다.

필립 세돈 뉴질랜드 오타고대 동물학 교수는 "뉴질랜드에 나타난 이 펭귄은 어린 축인데, 이는 매우 희귀한 사례"라며 "(먹이를 찾아) 서식지에서 멀리 떠내려가다 뉴질랜드 해역으로 들어가는 조류에 휩쓸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델리 펭귄이 뉴질랜드에서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2년 처음 사체로 발견됐고, 1993년엔 살아있는 펭귄을 포착한 후 이번이 세 번째다.

가디언은 지구온난화가 남극 펭귄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남극 해빙이 팽창했다 줄기를 반복하며 펭귄 개체 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따르면 남극 지역의 아델리 펭귄 개체 수는 향후 40년 안에 약 3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99년엔 아델리 펭귄의 60%가 사라진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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