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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직격인터뷰

“의회주의 발전에 관심·계획 있는 후보가 안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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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1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 대통령이 어떤 쪽에서 되든 헌법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며 국무회의 중심의 국정 운영을 강조했다. 김성룡 기자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1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새 대통령이 어떤 쪽에서 되든 헌법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며 국무회의 중심의 국정 운영을 강조했다. 김성룡 기자

정치학자 출신으로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두 차례 통일부 장관, 국무총리, 여당 대표, 주미·주영 대사 등 쟁쟁한 자리를 거쳤는데도 여전히 ‘선생님’으로 불리는 이가 있다. 사회단체를 이끌며 다방면의 중재 역할도 한다.

[이홍구 전 총리가 본 한국정치 과제] #1노3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노 "3김이 중심"…3김도 신뢰해 #지금은 청와대 비서진이 정책 결정 #여당에도 지시… 군인문화 가까워 #국무회의가 중심인 헌법대로 해야

각박해진 진영 대결과 동원 속에서 원로가 사라진 시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원로인 이홍구 전 총리다. “이홍구 선생님은 평화다”(김진국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란 단언엔 그의 행로가 담겼다. 최근 미수(米壽) 기념 문집엔 진보·보수를 넘나드는 33명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기고했다. 관련 심포지엄도 열렸다.

10일 그를 만났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선출로 대선 레이스가 거칠어지는 국면에서 한발 비켜, 지금의 한국 정치에 대한 조망을 위해서였다. 그는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까 계획이 있는 사람도,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안 보인다”며 “청와대에 가서 비서관들하고 움직이면 되지 않겠냐는 식”이라고 우려했다.

대화는 얼마 전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 얘기부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에겐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이란 과(過) 못지않게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 등 공(功)도 있었다. 별다른 인연이 없던 이 전 총리를 통일부 장관으로 기용해 남북 관계를 조율토록 한 게 노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가 논의됐지만, 현실에선 훨씬 분열적 역사 인식으로 인한 갈등이 크다.
“지금 한국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역사에 대한 정확한 기억이 없다. 주변국가, 특히 북한·중국 이런 데에 대한 기본인식이 모자란다. 대표적으로 종전선언이 그런데,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얘기하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고교 1학년 때 전쟁이 났다. 공산군과 탱크가 들어오는 걸 봤다. 중국 등은 자꾸 미국 침략을 말하는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하자마자 미군은 철수했다. 역사 지식을 왜곡하거나 공백을 만들어서 얘기하는 건 상당히 문제다. 우리 대통령도 종전을 말하면서 기본 팩트에 확실하지 않은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은 완전히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이 무식해서 난 전쟁이다. 세 지도자는, 특히 김일성은 서울에 들어왔을 때도 자기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하게 될 거라는 걸 몰랐다.”

-집권세력에선 미군을 두고 점령군이라고 하거나 “부역자들이 정부의 주축이 됐다”고도 주장한다.
“좋게 말해 무지한 거고 나쁘게 얘기하면 군사정권을 없애자고 국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군사정권에 대해 만들어낸 얘기를 민주화 이후의 정부 입장으로 밀고가려는 것이다. 사실 전두환·노태우에 의한 민주화 과정이란 게 세계적으로 보면 유일하게 성공하다시피 한, 군사정권의 자진후퇴다. 다른 데선 군사정권이 돌아오곤 했다. 일각에선 무작정 노태우는 괜찮고 전두환은 나쁘다고 얘기하는데 말이 안 된다. 같이 한 거다. 군사정권의 끝내겠다는 결심은 상당히 큰 것이다. 민주화 외치는 사람들 중에서 그걸 냉정하게 평가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역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건 아이러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갈 거냐에 대한 상당히, 그럴듯한 다수의 의견이 성립돼 있냐면 그렇지 않다. 선거만 해놓고 보자는 정도다. 선거가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

-한국 민주주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나.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어느 하나도 결정적으로 이렇다고 말하긴 쉽지 않다. 다만 이승만 대통령이 의회민주주의 경험이 없어 청와대 중심으로 하는 전통이 처음부터 있었다. 하나 잘한 건 내각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 전문가를 기용했다. 대표적인 게 초대 내각에 이른바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혀있던 조봉암 선생을 농림부 장관으로 입각해 농지개혁을 한 것이다. 대한민국 군사정부가 자유 선거를 결심한 것과 비슷하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게 바탕이 돼 한국 민주주의가 오게 됐는데 의회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고비를 넘지 못했다. 그럴 가능성이 있던 게 13대 국회였는데, (1990년) 3당 합당으로 여당이 독식하는 걸로 되면서 별 결과가 없었다.”

노태우 정부 때 4당 체제 하에서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영수회담. 왼쪽부터 김종필 공화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민주당 총재 [중앙포토]

노태우 정부 때 4당 체제 하에서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영수회담. 왼쪽부터 김종필 공화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민주당 총재 [중앙포토]

의회민주주의로의 안착 ‘가능성’의 순간이 88년 총선부터 20개월여의 여소야대 경험이었다. 민주정의당(125석·총재 노태우)·평화민주당(70석·김대중·DJ)·통일민주당(59석·김영삼·YS)·신민주공화당(35석·김종필·JP)의 4분점 체제였다. 오로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초당적 합의를 끌어내곤 했는데 대표적인 결과물의 하나가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었다.

-당시 경험을 얘기해 달라.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이 센터포워드(최전방공격수)가 아니고 세 분 야당 총재들이 센터포워드다. 4당이 같이 해야 한다. 다른 민주적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봐도 합리적 생각이었다. 국회 통일특위에 크지 않은 통일단체들도 다 와서 의견을 얘기했다. 그런 절차를 밟은 게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청와대와 정부가 안 나섰다는 것도 중요했다. 대통령이 나한테 어떤 쪽으로 가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도 없다. 내가 3김 총재와 만나 충분히 논의하고 상의했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게 노태우 대통령의 입장을 3김 총재가 믿었다. 또 그 지도자들이 자기 당에 대한 절대적인 컨트롤이 있었다.”

당시 만들어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여섯 정권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온다. DJ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돌아와서 이 전 총리에게 “아무튼 나는 우리가 다 합의한 통일방안, 그대로 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초당적 합의의 내구성을 보여준다.

-그때는 됐는데 왜 지금 안 된다고 보나.
“3김 총재는 정치로 컸다. 자기와 함께 일하는 사람과 충분히 얘기하고 그 사람이 가서 합의했으면 ‘내가 한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엔 청와대 비서관이 나타나는 일이 없었다. 바람이라면 사람도 다르고 세대가 다르지만 그래도 그런 정신들을 다시 좀 만들어내면 좋겠는데, 지금 그런 식으로 안 되는 모양이다. 특히 여당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다시피 하는 것 아니냐. 지금 청와대가 하는 걸 보면 더 군인 문화에 가깝다고 보인다.”

이 전 총리는 백악관과 청와대 풍경을 비교했다. 백악관에선 대통령 주변 가까이 참모들이 서거나 앉은 채로 얘기하지만 청와대에선 거대한 회의실에서 마이크를 앞에 놓고 회의하는 장면이다. 그는 “지시를 받는 게 비서지,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게 비서가 아니다”라며 “근래엔 청와대가 관료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개인적 관계로 가까운 사람들인데, 이건 비정상적인 운영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 대통령이 어떤 쪽에서 되든 헌법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며 “헌법상 중요한 일은 국무회의에서 결정하는 건데 지금은 청와대에서 하고 국무회의에선 공식화해달라는 역 (방향) 루트가 생겼다. 이번에 고쳐야 한다. 그것만 돼도 훨씬 낫다고 본다”고 했다.

-제1, 2당 후보들이 다 0선에 여의도 경험이 없다.
“문제는 문제인데, 의회정치에 밝은 사람들을 많이 보좌관으로나 후원자로 데리고 있어야 하는데 리스트(주변 인물)를 보면 도대체 확실치가 않다. 걱정이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보나.
“다시 헌법정치, 헌정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도 헌법을 읽어보면 다 돼 있다.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인데,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한국 정치의 지도자로 부상하느냐가 더 힘든 문제다.”

-지금은 정치력보단 여야 투쟁을 잘하는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면 한 자리 차지하는 구조인 듯하다.
“인재 부족도 사실이다. 국회에 국민들이 아는, 정치인으로서 우수하다는 사람이 (정치력 또한)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 우수한 정치력·협상력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의 요체가 타협인데.
“그렇다. 그런 정치문화가 완전히 퇴화했다. 정치가 발전하는 게 아니라 지난 20년 한국정치가 약간 좀 퇴화한 것이다. DJ나 JP나 YS 비슷한, 젊은 스타일로라도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나타나야지, 희망이 있다.”

-사실 지금 13대 국회 때 못지않은 국내외적 전환기인데 국제 문제를 두곤 미·중 누굴 하나 선택할 거냐 이 정도 문제로 축소해서 바라보는 것 같다.
“외교란 국제정세를 잘 파악해야 하고 우리가 살아날 길, 원하고 바라는 게 확실해야 하는데 그 두 가지 능력이 다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집단이 국가를 움직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론은 다시 그런 정치력 있는 지도자들을 행정부나 입법부, 정당에 많이들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노태우 대통령이 군사정부를 해체하는 결심을 하고 선거로 이겼으니 이를 비롯한 국민의 힘으로 한 것이고, 나머지 3김 총재는 우리나라 정치사로 볼 때 정치의 정도를 걸어가는 수퍼 정치인들이었다. 지금은 그와 비슷한 반열의 사람들이 안 보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