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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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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김현예 P팀장

말뿐이라고 치부하기엔 요즘 ‘이 단어’의 등판이 너무 잦다. 대란(大亂)이다. 국어사전 뜻풀이는 이렇게 돼 있다. 1. 크게 일어난 난리. 2. 크게 어지러움. 지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란’은 역시 교통대란이다. 전국에서 동시에 대입시험을 치르는데, 딱 하루에 하다 보니 대입 날엔 교통전쟁이 벌어졌다. 수험장에 무사히 잘 도착하기 위해선 새벽 5시 이전부터 나가야 할 정도였는데, 하필 까치 한 마리 때문에 전철이 2시간 동안 멈춘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아예 “대입을 일요일에 치르자”는 주장까지 나올 지경에 이르렀다(1991년 12월 18일 자 중앙일보 3면). 졸업식도 입학식도 비슷한 시기에 이뤄지니, 교통대란이 지면을 장식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뿐만인가. 설날과 추석엔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행렬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26시간이 걸리는 일도 허다했다.

대란의 양상이 급격히 다양하게 변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지난 2019년엔 일본에서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자재 수출을 막으면서 반도체 대란이 일었다. 코로나19도 한몫을 했다.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의 습격에 마스크가 거덜이 나면서 지난해 초 마스크 대란을 겪었다.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려면 신분증을 지참하고 한 번에 딱 2개만, 그것도 출생연도 끝자리 수에 맞게 지정된 요일에 살 수 있었다. 그 뒤엔 코로나 환자 병상 대란이 일어 이송을 기다리던 환자가 사망했다. 또 그 뒤엔 코로나 백신이, 그리고 이번엔 디젤 차량에 필요한 요소수가 대란 행렬에 동참했다. 중국이 틀어잠근 요소수 거래 탓이라고만 하기엔 여파가 크다. 버스·화물차와 같은 대형 차량에 많이 쓰이는 탓에 이 요소수 대란은 물류대란에 건설 대란, 교통대란이라는 연쇄 대란 불씨마저 뿌리는 중이다.

요소수 대란에 군 수송기를 띄워 호주에서 요소수를 들여오고, 뒤늦게 범부처 회의까지 여는 법석이 일어났다. 정부는 ‘3개월분이 있다’고 발표했지만, 이 난리통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중국의 수출 제한 3주 뒤에서야 정부가 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퍼지는 것을 못 막았다고, 이웃 나라의 수출 규제를 못 풀었다고 이 정부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겠다”는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 말마따나, 그 ‘비싼 수업료’를 자꾸 반복해서 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