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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물가 착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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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메타버스까지 등장한 디지털 시대지만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아날로그 영역에 남아있다. 통계청 조사직원들은 백화점·대형마트·전통시장 등 전국 약 2만5000여개 소매점을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 조사를 통해 가격자료를 수집한다. 모든 소매점을 대상으로 가격을 조사할 수 없기에 표본을 적절히 추린다.

통계청 조사직원이 가격을 조사하는 건 상품과 서비스의 대표 품목이다. 2015년 기준 대표 품목은 460개로 이뤄져 있다. 품목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품목군(品目群)이 맞다. 쌀과 라면처럼 하나의 품목으로 구성된 경우도 있지만 냉동식품이나 즉석식품처럼 여러 품목을 포괄하는 경우도 있어서다.

가격 수집은 매월 한 차례 정해진 기간에 이뤄진다. 농·축·수산물과 석유류는 가격 변동이 심해 매월 3차례 가격을 조사해 평균을 낸다. 가격은 소비자가 실제로 지출한 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부가가치세와 같은 세금도 포함해 물가지수를 산출한다.

조사 품목은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5년마다 개편한다. 통계청은 지난 7월 2020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안을 내놨다. 물가지수 품목에 체리와 마스크·유산균·식기세척기·쌀국수 등 14개 품목이 추가됐다. 마스크가 추가된 건 코로나 때문이다. 반면 연탄·프린터·넥타이·정장제·학교급식비 등은 조사품목에서 탈락했다. 통계청은 다음 달 22일 개편안을 공표할 예정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표본조사이기에 실제 물가와 다르다. 나라마다 조사 품목이 다르기에 국가별 지수 차이도 크다. 지난 10월 국내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2%가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전년 동월 대비 6.2%가 올라 1990년 12월 이후 31년 만에 최대폭으로 급등했다. 3%포인트에 이르는 한·미 물가 착시는 주거비 탓이 크다. 미국은 자가주거비를 조사해 물가지수에 반영하지만 한국은 전세와 월세만 조사 품목에 들어있다. 자가주거비는 대출금 이자와 세금 등 비용을 뜻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가주거비를 조사 품목에 편입할 경우 소비자물가지수가 4~5%대로 뛸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은행 등에선 자가주거비를 조사 품목에 포함시켜 물가지수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물가 착시를 줄이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