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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후보님들의 젠더 감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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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치열한 경쟁과 깨끗한 승복, 여성적 리더십, 자매애 등을 키워드로 2030 여성 등에게 폭발적 인기를 끈 엠넷 '스트리트 오브 파이터'. 우리 정치에도 '스우파'적 감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 엠넷]

치열한 경쟁과 깨끗한 승복, 여성적 리더십, 자매애 등을 키워드로 2030 여성 등에게 폭발적 인기를 끈 엠넷 '스트리트 오브 파이터'. 우리 정치에도 '스우파'적 감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진 엠넷]

 장안의 화제 ‘스우파(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얘기를 안 하고 갈 수가 없다. 종영 2주 차인데도 인기가 꺾일 줄 모르는, 엠넷의 여성 스트리트 댄스 경연 프로그램이다. 출연했던 여성 댄서들의 인기가 도쿄올림픽 여자배구ㆍ여자양궁팀 수준이다. 특히 2030 여성들이 열광했다. 출연자도 모두 2030 여성이었다.
과거에도 댄스 경연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번엔 팀 경연에 ‘센 언니’들의 배틀이었다. 대중문화 시장의 큰손인 2030 여성 시청자들이 당당하고 멋진 ‘언니’들에게 열광했다. 오빠 아닌 언니를 외치는 ‘자매 팬덤’이다. 소통과 신뢰에 기반한 여성적 리더십, 치열하게 경쟁하되 깔끔하게 승복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빛났다. 경연 프로 특유의 ‘갈등을 과장하는 편집’도 효과가 없었다.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이 보기 좋게 깨졌다. 경연장이 여성 연대의 장으로 뒤바뀌었다.
압권은 마지막 회였다. 시청자 문자투표로 댄스 크루 ‘홀리뱅’이 1위를 하고 리더 허니제이 등에게 꽃다발이 쏟아진 다음이었다. 2등 ‘훅’의 리더 아이키가 소감을 말하자, 허니제이가 냉큼 달려가 자신의 꽃목걸이를 아이키에게 걸어줬다. 이어 훌리뱅의 다른 멤버들도 줄줄이 훅에게 꽃다발을 안겼다. 1등 대신 2등이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진풍경. 누군가 써준 각본도 아닐 텐데 모두가 승자가 되는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허니제이는 이후 한 프로그램에서 라이벌 훅과의 최종 경연에 대해 "훅이 잘하길 바랐다. 그래야 져도 억울하지 않고, 이기면 더 기쁠 테니까"라는 명언을 남겼다.
과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4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도 대한민국 최고 리더를 뽑는 경연이다. 이것도 리더를 정점으로 당과 캠프가 함께 뛰는 팀 미션이다. 시청자 문자투표 같은 국민투표로 승패가 엇갈린다. 그런데 과연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스우파’ 같은 감동을 국민에게 줄 수 있을까. 패자(후보와 지지자)는 승자(후보와 지지자)를 기꺼이 인정하고, 승자는 패자를 감싸 안으며 함께 미래를 열어가는 아름다운 결말이 가능할까. 아직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더구나 ‘스우파’에 열광했던 2030 여성들에겐 이번 선거가 사상 최악으로 다가온다. “거대 양당 후보가 결정됐지만 찍을 사람이 없다”고 푸념한다. 2030 주도로 젠더 이슈가 급부상한 후 치르는 최초의 대선이건만 여성 이슈는 뒷전이고, 양측 후보의 성인지 감수성과 인식이 너무도 실망스러워서다.
한쪽은 깔끔하게 해명되지 않은 여배우 불륜설에 형수를 향한 패륜적 욕설이란 과거가 있다. 최근 웹툰 제작 현장을 찾아서는 ‘오피스 누나 이야기’란 웹툰 제목을 가리키면서 “오피스 누나 확 끄는데”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웹툰의 선정성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납득이 잘 안 되는 얘기다. 앞서 당내 TV토론에서도 여배우 스캔들을 해명하면서 “바지 한 번 더 내릴까요?” 반문했던 그다. 이런 걸 ‘통 큰 사이다’ 대응이라 여기는 모양인데, 그런 게 바로 마초ㆍ꼰대 스타일이다. 정책 이전에 후보의 태도와 말에 밴 젠더 감수성이 너무 낡았다.
 반대쪽은 여성가족부 폐지나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를 성 평등 과제로 내세웠다. 거꾸로 가는 성 평등이다. 앞서 “저출산은 페미니즘 때문”이라든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아져 채용 가산점이 없어지고, 군 지원·복무에 사기가 위축됐다”는 발언도 했다. 2030 남성에 대한 구애는 알겠는데, 남성의 사회적 좌절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원인 진단부터가 잘못됐다. 남성용 젠더 갈등 해소책이 젠더 갈등을 더 키울 우려도 크다.
 여야 공히 2030을 잡겠다지만 2030 여성의 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앞서 ‘스우파’는 공정성(경연)과 '여적여 아닌 자매애'라는 시대정신을 반영해 흥행했다. 가뜩이나 역대급 비호감 대선, 2030과 여성을 잡으려면 후보님들이 젠더 감수성 특훈이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 ‘젠더 감수성=시대정신’이란 기본부터 말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젠더 이슈 부상 후 첫번째 대선 #'2030ㆍ여성 잡아야' 외치면서도 # 여성 이슈 뒷전, 낡은 인식 여전